이름 | 송광수(宋光洙) |
출생일 | 1950년 1월 4일 (age(1950-01-04)세)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합포구 [1] |
종교 | 가톨릭 (세례명: 토마스 아퀴나스) |
최종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
현직 | 변호사 |
임기 | 2003년 4월 3일 ~ 2005년 4월 2일 |
경력 | 33대 검찰총장br33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br대한민국 법무부 검찰국장br44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br43대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br제 3기 사법연수원 [2] |
목차
개요 ¶
제33대 검찰총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법조인 (사법시험 13회. 사법연수원 3기).
생애 ¶
1977년 검찰 임관 이후 검찰과 법무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서울지검 형사3부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엔 입시 부정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이후 대구지검장, 부산지검장, 대구고검장을 역임했다. 2003년 3월 김각영 검찰총장이 참여정부와의 갈등으로 물러나자 후임으로 임명됐다. 인사청문회를 받은 최초의 검찰총장이기도 하다. [3]
그러나 송광수 역시 강금실 법무부장관 등과 갈등을 겪었다. 인사 문제가 도화선이 됐다. 송광수의 측근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검찰의 갈등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과 맞물려 더욱 증폭됐다. 이때 송광수는 "차라리 내 목을 쳐라"며 개혁에 맞섰다. 때마침 대선자금 문제가 터진 것은 송광수에게 행운이었다. 송광수와 중수부장 안대희가 이끄는 검찰 수사팀은 안희정, 이광재 등 정권 실세까지 성역 없이 수사하여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검찰 개혁은 힘을 잃었다. 검찰 개혁 문제 외에도 송광수가 이끄는 탄핵 반대 촛불집회 주동자들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한총련 주동자 수배 해제, 송도율 교수 처벌 문제 등으로 정권과 각을 세웠다. 싸움은 2004년 7월 강금실이 취임 1년 만에 경질됨으로써 끝났다. 송광수는 그 1년 후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한다.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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