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치은'''(孫致殷, [[1892년]] ~ ?)은 [[일제 강점기]]의 법조인이다. == 생애 == 본관은 [[밀양 손씨|밀양]]이며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변호사]]를 개업해 일제 강점기 동안 대구 지역에서 활동했다. 손치은은 [[김용무]], [[김병로]] 등과 함께 무료 변호로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뉴스 인용 |제목=金用茂 金炳魯 孫致殷 韓圭鏞 四氏 또 無料辯護 |출판사=동아일보 |날짜=1925-04-22 |쪽=1면 }} 존경을 받았으며, [[김창숙]]이 항일 운동 중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압송되었을 때도 김용무와 함께 변론을 자처하였다.{{서적 인용 |저자=김경재 |제목=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 |날짜=1998-12-01 |출판사=삼인 |출판위치=서울 |ISBN= 89-87519-14-7 |장=김창숙 - 한국의 '마지막 선비', 그 저항의 한평생 }} [[1932년]]에 [[경상북도]] 안동경찰서에서 순사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일본인 경찰관이 살해되고 조선인 청년 5명이 용의자로 체포된 일이 발생했다. 이때 손치은이 무료로 변호를 맡아 이들이 무죄임을 밝혀냈다.{{저널 인용 |저널=신동아 |제목=[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⑫] 안동 가와카미(川上) 순사 살해사건 |저자=전봉관 |url=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6/06/12/200606120500001/200606120500001_1.html |날짜=2006-06 |호=제561호 |쪽=476~491 }} 그러나 [[1934년]]에 [[최린]]이 결성한 [[시중회]]에서 평의원을 지냈으며{{서적 인용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날짜=2004-12-27 |출판사=민족문제연구소 |출판위치=서울 |ISBN=89-953307-2-4 |쪽=578 }},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일본 제국]]의 사상통제 정책에 협조한 행적도 있다.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에 따라 사상범 감시를 위한 보호관찰 제도가 신설되고 지역마다 보호관찰심사회가 출범했을 때 대구보호관찰심사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 같이 보기 == * [[시중회]] == 각주 == {{각주}} [[분류:189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