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규'''(孫貞圭, 일본식 이름: 伊原圭[{{서적 인용
|저자=백기완, 송건호, 임헌영
|제목=해방전후사의 인식 (1)
|날짜=2004-05-20
|출판사=한길사
|출판위치=서울
|id={{ISBN|8935655422}}
|페이지=287
}}
] 또는 伊原貞圭, [[1896년]] ~ [[1950년]]?)는 [[한국]]의 교육자이다. 본관은 [[밀양 손씨|밀양]]이다.
== 생애 ==
[[창덕궁]]에서 관리로 근무하던 손용우의 딸로 태어났다. 제1회 졸업생으로, [[일본]]으로 유학하여 에서 수학했다. 귀국한 뒤에는 모교의 교사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1939년]] 교사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그때까지 여러 궁에 흩어져 살고 있던 황족과 상궁 등을 통해 궁중 요리 등을 전수 받았다. 손정규는 유년기에 아버지를 따라 궁에 드나들면서부터 궁중의 풍습과 의전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미군정]] 하에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과의 초대 학장을 거쳐 서울대학교 초대 여학생처장을 맡았으며, 가사(家事) 과목의 중등 교과서도 저술했다.
[[한국 전쟁]] 발발 후 [[1950년]] [[8월]] 중순 경에 [[조선인민군]]에게 체포되어 간 후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신으로 지내 후손은 없다.
저서로 일본어로 발행된 《조선요리》(1940)와 전통 궁중 요리 분야의 고전인 《궁중요리(宮中料理)》(1950)가 있다.
손정규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전쟁 지원을 위해 조직된 친일 단체인 [[방송선전협의회]]와 [[애국금차회]],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등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학병 지원을 격려하고 《[[매일신보]]》에 일제의 논리를 선전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같이 보기 ==
* [[조선임전보국단]]
== 참고자료 ==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HIL_A1896_2_0005894|손정규|孫貞圭}}
* 양미강, 〈일제말기 기독교여성들의 친일논리와 행태 - 1937년~1945년을 중심으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월례포럼, 2003년
== 각주 ==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50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총살형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밀양 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