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도'''(孫錫度, 일본식 이름: 孫田宗明, [[1910년]] [[1월 14일]] ~ ?)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경찰 간부이며,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 생애 ==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광주]] 출신으로 법과를 졸업했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조선총독부]] 경부에 임명되어 경찰 간부로 근무했다.
전라남도 경찰부 경무과에서 근무하면서 전남경찰교습소 교관을 겸하다가, 전남 [[함평군]] 군수가 되어 관계로 잠시 이동했다. 이후 [[1940년대]]에 다시 경찰로 돌아와 도경시로 승진하여 경찰부 보안과장을 지냈다. [[1943년]]을 기준으로 종6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 종전 시점에 경시 계급에 있던 조선인 8명 중 한 명이었다.[{{서적 인용
|저자=서중석
|제목=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날짜=1996-09-01
|출판사= 역사비평사
|출판위치=서울
|id={{ISBN|89-7696-113-7}}
|장=제2장 정부수립 초기 민족주의와 반공주의의 갈등 - '소장파 전성시기' 소장파 의원들의 공세와 반공주의}}] 종전을 1주일 앞두고 [[경기도]] 경찰부 회의실에서 간부 회의가 열렸을 때, 조선인 경찰로는 형사과장 [[최연 (1897년)|최연]], 보안과장 [[전봉덕]], 성동서장 손석도 등 최고 간부만이 참석했다.[{{서적 인용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제목=청산하지 못한 역사 3
|날짜=1994-03-01
|출판사=청년사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7278-314-5}}
|장=최연 - 친일경찰의 대부 (안소영)}}] 이 자리에서는 [[일본 제국]]의 항복이 멀지 않았다는 고급 정보가 공유되었다.
[[미군정]] 지역에 남아 서울중부경찰서장을 지냈고, 이후 [[변호사]]를 개업하고 법조인으로 활동했다. [[1965년]]에 [[성곡언론문화재단]]이 설립될 때 《[[조선일보]]》 주필인 [[최석채]]와 함께 준비 작업을 맡았다.[{{서적 인용
|저자=정진석
|제목=언론과 한국 현대사
|날짜=2001-06-25
|출판사=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위치=서울
|id={{ISBN|89-8499-048-5}}
|쪽=558쪽}}]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경시 부문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와 경찰 부문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7_20184|손석도|孫錫度}}
== 각주 ==
[[분류:1910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대한민국의 경찰]][[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밀양 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