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요 == 조선전기에 [[도교]] 식 재초를 거행했던 관청이다. 도교의 신에 대한 초제를 주관하였고, 가뭄이나 홍수 등이 났을 때 기우제, 기청제를 지냈다. == 구조 == * 태일전(太一殿) : [[칠성]](七星)을 제사지냈다. 화상이 모두 모두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의 모습이었다. * 삼청전(三淸殿) : 옥황상제(玉皇上帝), 태상노군(太上老君), 보화천존(普化天尊), 재동제군(梓潼帝君) 등 10여 위를 제사하였다. 남자의 화상으로 모셨다. * 사해(四海)의 용왕(龍王) * 신장(神將) * 명부(冥府)의 시왕(十王) * 수부(水府)의 제신(諸神) * 자수궁(慈壽宮) : 여도사가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도사를 뽑을 때는 《영보경(靈寶經)》ㆍ《과의(科義)》ㆍ《연생경(延生經)》ㆍ《태일경(太一經)》ㆍ《옥추경(玉樞經)》ㆍ《진무경(眞武經)》ㆍ《용왕경(龍王經)》 등을 교제로 사용하였다. == 역사 == === 개창 === [[고려]] 시절에 복원궁(福源宮), 소격전(昭格殿) 등의 도교 관청이 있었다. 조선 건국 이후 1392년 11월에 복원궁 등을 없애고 소격전만 남게 된다. 한양 천도 이후 1396년에 종로구 삼청동에 소격전이 건립된다. 1466년(세조12년)에는 소격서로 개칭된다. === 혁파 논란 === 연산군 때, 소격서는 형식적으로 혁파되었다. 하지만 형식적일 뿐이었고 초제는 그대로 거행하였다. [[중종]] 재위 시기, 1518년에 [[조광조]] 등의 요청으로 소격서를 일시적으로 혁파하였다. 하지만 중종은 조상 때부터 내려온 제도라면서 소격서 혁파 주장에 거부감을 보였고, [[기묘사화]] 이후 대비의 간청이라는 이유로 다시 부활시켰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폐지하였다. 소격서의 근거가 되는 [[도교]]가 [[노자]]를 숭상하는 이단이라는 점, 제후국인 조선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명분에 어긋난다는 점, 초제를 지내는 비용이 낭비되며, 소격서는 쓸데없는 관리라는 점 등의 이유이다. == 참조 == 임하필기(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K&url=/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h018&gunchaId=av016&muncheId=01&finId=052&NodeId=&setid=3143222&Pos=85&TotalCount=103&searchUrl=ok 오주문연전상고(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K&url=/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h010&gunchaId=av007&muncheId=01&finId=001&NodeId=&setid=3143222&Pos=60&TotalCount=103&searchUrl=ok 문화 컨텐츠 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10&cp_code=cp1012&index_id=cp10120039&content_id=cp101200390001&search_left_menu= [[분류: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