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국'''(徐廷國, 일본식 이름: 吉永圭佑, [[1896년]] [[7월 16일]]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 생애 == [[한성부]] 출신으로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었다. 광주지방법원에서 서기 겸 통역생으로 근무하다가 [[1929년]]에 [[조선총독부]] 판사에 임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공주지방법원 홍성지청,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과 신의주지방법원 판사를 차례로 지냈다. 신의주지방법원 판사이던 [[1942년]]을 기준으로 종6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도 [[미군정]] 하에서 청주지방법원 법원장에 임명되어 그대로 판사로 재직하였다. 대전지방법원 법원장을 거쳐 [[1949년]]에는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이 되면서 검사로 전직하였다. 부산지검장을 지내는 동안 [[국민보도연맹]] 결성 작업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 일이 있다.{{서적 인용 |저자=김기진 |제목=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 |날짜=2002-05-15 |출판사=역사비평사 |출판위치=서울 |id={{ISBN|8976962583}} |장=제1장 국민보도연맹 결성과 조직 - 2. 중앙본부 및 전국의 조직 }} [[1950년]]에 서울지방검찰청 제3대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제2대 검사장{{뉴스 인용 |제목 = [최영호기자의 법조이야기 .18] 대구를 거쳐간 검사들 |저자 = 최영호 |url=http://www.yeongnam.com/yeongnam/html/yeongnamdaily/society/article.shtml?id=20060630.010080655430001 |출판사 = 영남일보 |날짜 = 2006-06-30 |확인날짜 = 2008-07-20 }} 을 지냈고, [[1954년]]에 서울고등검찰청 제3대 검사장에 올랐다. [[1957년]]부터 광주고등검찰청 제2대 검사장으로 재직하던 중, [[1960년]]에 [[4·19 혁명]]이 성공하여 검찰 숙정이 단행되면서 사퇴했다.{{뉴스 인용 |제목 =鄭暢雲·徐廷國 양검사도 사퇴. 검찰도 숙정 |쪽 = 3면 |출판사 = 조선일보 |날짜 = 1960-05-15}}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 참고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7_20075|서정국|徐廷國}} == 각주 ==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경성법학전문학교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