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뜻|[[변수 (14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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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9월 미국에 파견된 조선의 보빙사절단원, 앞줄 왼쪽부터 부사 홍영식, 정사 민영익, 종사관 서광범, 미국인 로웰, 뒷줄 왼쪽부터 무관 현흥택 최경석, 수행원 유길준, 고영철, 변수
'''변수'''(邉燧, Byun Soo, [[1861년]] ~ [[1891년]] [[10월 22일]])는 [[조선]] 말의 개화파 관료, 정치가, 개화운동가이자 외교관이며 [[미국]]의 공무원이다. 본관은 [[원주 변씨|원주]](原州)이고, 다른 이름은 수(樹)이며, 자는 한명(漢明), 호는 소천(小泉)이다. [[박규수]], [[오경석]], [[강위]](姜瑋)의 문인이다.
[[1882년]] [[일본]] 유학을 갔다가 [[임오군란]]으로 귀국하였으나, [[제물포 조약]] 답례 수신사로 파견되는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1883년]]에는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답례로 전권대신 [[민영익]]이 [[미국]]에 파견될 때 수행원으로 다녀왔다. 귀국 후 [[1884년]] [[7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주사]]로 임용되어 [[8월]] [[우정국]] [[주사]], [[군국사무아문]] [[주사]]로 발령되었다. 그해 [[갑신정변]]에 참여하여, 정변 전후로 궁궐 내부 정보를 입수, 파악하였으며 거사 당시 1개의 행동대를 지휘하였다.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886년]] [[1월]] [[미국]]으로 유학, [[베어리츠 언어학교]]를 마치고 [[1887년]] [[9월]]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890년]]부터는 [[미국 농무성]]의 직원으로 근무하였으나 [[1891년]] 모교 입구 정거장에서 열차 사고로 사망하였다. 사후 [[1895년]] 복권되었다가 [[김홍집 내각]] 붕괴로 추탈, [[1908년]] 최종 복권된 뒤 [[1910년]] [[증직|증]] 종2품 [[가선대부]] [[규장각]][[부제학]]에 [[추증]]되었다.
== 생애 ==
=== 초기 활동 ===
할아버지는 변준(邊準)이고 아버지는 역관 변진환(邊晉桓), 어머니는 강릉 최씨이다. [[고려]] 말기의 무신 [[변안열]]의 아들 희정도총제부총제(喜靖都摠制府摠制) 변이(邉頤)의 후손으로, 변이의 아들 호군공 상근(尙覲)이 그의 선조이다. 상관의 동생 상회(尙會)의 아들로 그와 이름이 비슷한 원천군[[변수 (1447년)|변수]]는 그의 방계 선조가 된다.
어려서 아버지의 친구인 [[강위]]에게 배웠다. 아버지 [[변진환]]이 [[강위]]를 초빙하여 가문의 자제들을 가르칠 때 5년을 수학하고, 나중에 [[강위]]의 거처를 따라가 5년을 더 수학하였다.
스승 [[강위]]가 [[김옥균]]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고, 그는 [[박규수]]·[[오경석]]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김옥균을 알게 되었다. 1882년 1월 김옥균이 일본을 시찰할 때 수행하였다. 이때 그의 스승 중 한 사람인 [[강위]]도 사행길에 같이 가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를 동행시켰다. 사절단이 일본에 있을 동안 그는 [[일본]] [[교토]]로 건너가 양잠술과 화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다 그 해 [[7월]] [[임오군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그러나 [[임오군란]]이 진압되고 [[일본]]과의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자, 그해 [[8월]] 조선 조정에서 [[일본]]측에 답례로 수신사를 파견할 때 수신사로 임명된 [[박영효]]의 수행원이 되어 서장관 [[서광범]]·[[김옥균]]·[[민영익]]·[[유혁로]] 등과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옥균]] 등이 차관교섭을 벌여 국채위임장에 대한 보장을 받는 동안 다시 양잠술과 화학 공부를 마치고, [[1883년]] [[3월]] 귀국하였다.
=== 일본, 미국 견학 ===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그 결과로 1883년 5월 주[[조선]][[미국]]공사 [[존 루시우스 푸트]](John L. Foote)가 방문하자 답례사절을 선발하였다. 그는 자청하여 답례 사절단의 수행원을 지원하였다.
[[1883년]] [[6월 11일]] 조선의 친선사절단인 [[보빙사]]가 미국에 파견될 때,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홍영식]]·[[유길준]]·[[서광범]] 등과 함께 사절단의 한 사람으로 임명돼 [[1883년]] 7월 인천항을 출발, 같은해 [[9월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기차편으로 뉴욕에 도착한 후 40여 일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미 대통령을 만나 면담하고 각 기관을 두루 시찰하고 귀국했다.[[https://archive.is/20130426215657/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854588 〈키워드로푸는역시〉 유길준 한국인 최초 미국 유학] 중앙일보 2007-08-17] [[1884년]] 봄 [[일본]]을 경유하여, 귀국하였다.
=== 갑신정변 ===
[[1884년]] [[김옥균]] 등 개화파와 함께 [[갑신정변]]을 주도하였으나 정변 실패로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88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6&no=246277 美 메릴랜드大, 피오리나ㆍ매코맥ㆍ슈왑 등 美 실력자 배출] 매일경제 2006-07-03] [[1884년]] [[7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로 임용되었으며, [[8월]]에는 [[우정국]] [[주사]]가 되었다가 며칠 뒤 바로 [[군국사무아문]]의 [[주사]]로 재발령되었다. 이때 그는 [[일본]]에 파견된 사관생도들이 귀국함에 따라 [[김옥균]]·[[박영효]]·[[서재필]] 등과 함께 갑신정변 거사에 가담하고, 행동대의 하나를 이끌게 되었다.
이후 [[갑신정변]] 직전 대궐 안의 정보를 정탐하고, 정변 직전 사정을 신속하게 알아내 [[김옥균]] 등의 개화당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는 주[[조선]][[일본]]영사관 영사 [[다케조에 신이치로]]({{lang|ja|竹添進一郎}})와 교섭하여, 일본 영사관군과 낭인들을 지원받았다. [[12월 4일]] 저녁 [[우정국]] 낙성식을 계기로 정변이 발생하자 일본영사관군과 낭인들을 바로 동원하여 연경당(演慶堂) 경비를 맡게 되었다. [[12월 5일]] [[갑신정변]]이 성공하면서 바로 [[통정대부]] [[외무아문]][[참의]]로 승진했다. 그러나 [[청나라]]군의 개입으로 정변이 3일 만에 무너지자 일본공사 다케조에를 따라 일본 영사관에 숨었다가, 영사관 직원 기노시타의 집에서 일본인으로 변장하고 인천항에 도착, 센자이마루를 타고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 피신 과정 ===
[[12월 12일]], 다케조에 공사가 이들의 피신을 주선하였다. [[김옥균]]·[[박영효]]·[[이규완]]·[[정란교]]·[[서광범]]·변수 등 일행 9명은 [[창덕궁]] 북문으로 빠져나가 옷을 변복하고 인천주재 주[[조선]] 일본 영사관 직원 고바야시의 주선으로 제일은행지점장 기노시타의 집에 은신하였다. 그러나 묄렌도르프가 추격대대를 이끌고 오자, 기노시타의 배려로 일본인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제물포항]]에 정박중이던 쓰지 가쓰사부로({{lang|ja|辻勝三郞}})의 일본 상선 '센자이마루'({{lang|ja|千歳丸}})에 승선했다.
[[12월 13일]] [[인천광역시|인천]] [[제물포항]]에 있던 일본 상선 센자이마루에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과 함께 숨어있던 중 [[묄렌도르프]]가 병사들을 이끌고 추격, 외무독판 조병호(趙秉鎬)와 인천감리 홍순학(洪淳學)을 대동하고 다케조에에게 '국적(國敵) 김옥균 일행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배안에서 이를 지켜보던 일행은 수중에 든 비상으로 자살까지 결심하였다. 우물쭈물대던 다케조에는 배로 올라와 일행에게 내렸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그러나 [[제물포항]]에 있던 [[일본인]] 교민들은 자국 공사의 비열함에 혀를 차며 질타했고, 선박의 선장 쓰지 가쓰사부로 역시 다케조에의 무책임함을 지적, 공사를 신뢰해서 이들을 태웠는데 이제와서 내리라 하면 이들을 죽이는 것밖에 더 되느냐며 다케조에의 신뢰 없음을 질타하였다.
{{인용문2|내가 이 배에 [[조선]] [[개화당]] 인사들을 승선시킨 것은 공사의 체면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다케조에 신이치로 공사의 말을 믿고 모종의 일을 도모하다가 잘못되어 쫓기는 모양인데,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이들더러 배에서 내리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도리인가? 이 배에 탄 이상 모든 것은 선장인 내 책임이니 인간의 도리로는 도저히 이들을 배에서 내리게 할 수 없다.|쓰지 가쓰사부로}}
쓰지는 [[묄렌도르프]]에게 그런 사람은 없으며, [[일본]]의 선박을 함부로 수색할수는 없다, 임의로 수색했다가는 본국에 통보하여 외교 문제로 삼겠다며 [[묄렌도르프]] 일행을 되돌려보냈다. 쓰지의 배려로 박영효와 일행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들의 망명 사건은 [[1942년]] [[7월]] [[조용만]]의 단편 소설 [[배 안에서]]의 소재가 되었다.
=== 미국 생활 ===
[[1886년]] [[1월]] [[민주호]](閔周鎬)·[[윤정식]](尹定植) 등과 [[미국]]으로 건너가 [[베어리츠 언어학교]]에 입학하였다. [[1887년]] [[8월]] [[베리언츠 언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887년]] [[9월]]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농과에 입학해 농학을 전공하고 1891년 졸업하여 한국인 최초의 미국대학 졸업생이다. 정확히 6월에 이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 시절인 [[1890년]]부터 [[미국 농무성]] 직원으로 근무했으며, [[1891년]] [[6월]] [[메릴랜드 대학교]] 농과 졸업과 동시에 이학사(理學士) 학위를 취득하였다. 1891년 9월에는 농무성통계국 월보 제89호에 '일본의 농업'이란 글을 싣기도 게재하였다. 그러나 그해 [[10월]] 모교 [[메릴랜드 대학교]]를 방문했다가 돌아가던 길에 대학 정거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열차 사고로 사망하였다.
=== 사후 ===
그의 시신은 [[메릴랜드 대학]] 근처에 있는 [[아멘데일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며, 묘비에는 한글로 '벤수'라고 쓰여 있다.
[[1895년]] [[3월 1일]] 당시 법무대신 [[서광범]]의 상주로 복권되었다가 [[김홍집 내각]]이 실각하면서 취소되었다. [[1908년]](융희 1년) [[3월 25일]] 최종 사면 복권되고, [[1910년]](융희 4년) [[7월 18일]] 정변으로 희생된 자들을 복권할 때 [[증직|증]] 종2품 [[가선대부]] [[규장각]]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1994년]] [[메릴랜드 대학]]에서는 그의 생애가 상징하는 한 세기를 기념하여 '변수장학금'을 설립키로 하였다.
== 가족 관계 ==
* 증조부 : 변준(邉準)
** 아버지 : 변진환(邉晉桓)
** 어머니 : 강릉최씨
== 각주 ==
== 같이 보기 ==
* [[서재필]]
* [[유길준]]
* [[박영효]]
* [[김옥균]]
* [[신복모]]
* [[이규완]]
* [[정난교]]
* [[유혁로]]
* [[유성준 (1860년)|유성준]]
* [[윤경순]]
== 외부 링크 ==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1105023002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5) 세계일주 나선 역관들] 서울신문 2007년 11월 05일자, 23면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131011210220/http://umdarchives.wordpress.com/2012/11/06/pyon-su-americas-first-korean-college-student/ 메릴랜드 대학교의 편수에 관한 기사 (2012)]
[[분류:1861년 태어남]][[분류:1891년 죽음]][[분류:혁명가]][[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외교관]][[분류:통역사]][[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급진개화파]][[분류:서재필]][[분류:윤치호]][[분류:유길준]][[분류:갑신정변]][[분류:미국의 공무원]][[분류:한국의 혁명가]][[분류:메릴랜드 대학교 동문]][[분류:원주 변씨]][[분류:교통 사고로 죽은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