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계영'''(白桂英, ? ~ ?)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청도 지역의 향리(鄕吏)다. 호는 운암(雲菴), 본관은 [[청도 백씨|청도]](淸道)다
== 생애 ==
백계영은 고려 후기 청도 [[호장]](戶長) 출신[『연조귀감(掾曹龜鑑)』]으로 청도 5대 토성 중의 하나였던 [[청도 백씨]](淸道白氏) 가문 사람이다.[『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270년(원종 11) 고려 정부가 원나라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하고 삼별초를 해산하려 하자 [[배중손]]을 필두로 한 [[삼별초]]가 저항하였는데, 이때 몽고군에 항복을 원치 않던 군사들과 백성들이 [[진도]]의 [[삼별초]]에 가담하여 그 세력이 켜졌다. [[1271년]]([[고려 원종|원종]] 12) 1월 [[경상도]] [[밀성]](密城), [[금주]](金州) 등지의 농민들도 [[삼별초]] 군에 호응하여 폭동을 일으켰고, [[밀성]] 출신의 동정(同正) [[박경순]](朴慶純) 등 항쟁군들이 [[청도]]로 쳐들어와 병마사를 참칭하며 [[청도]] 감무(監務) [[임종]](林宗)을 죽이고 거병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였다. 이에 [[청도]] 호장 백계영은 투항하는 척 이들을 환대하고 주연을 베풀어 안심시킨 뒤 아우인 급제 [[백이장]](白利章)과 함께 청도 군민을 동원하여 적수 [[박경순]]과 급제 [[조홍기]](趙弘祺), 진사(進士) [[박정서]](朴貞瑞)를 비롯한 일당 200여 명을 주살하고 폭동을 진압하였다.[『동국통감』 권 36 고려기] [《청도군지》]
== 평가 ==
백계영의 지략으로 [[밀양|밀성]].[[청도]] 지역의 민란은 진압되었다. 이 공적으로 백계영은 영직{{#tag:ref|혹은 오산군(鰲山君)에 봉해졌다 하나 려사(麗史)에 기록이 없어 고증할 길이 없다. 오산은 청도의 옛 이름이다.|group="주"}}되었고, [[청도]]는 현치에서 지군사로 승격되었으며, [[밀성]]은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동경(경주)에 편입되었다.
== 가족관계 ==
* 부인 : [[밀양 손씨]](密陽孫氏)
* 동모제 : [[백이장]](白利章) 급제
== 참고문헌 ==
* 『연조귀감(掾曹龜鑑)』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동국통감(東國通鑑)』권(卷)36 고려기(高麗紀)
* 《[[탁영집]]》(濯纓集), [[김일손]](金馹孫)
* 《[[청도군지]]》(淸道郡誌)
== 주해 ==
== 각주 ==
{{각주}}
[[분류:생몰년 미상]][[분류:고려 사람]][[분류:13세기 한국 사람]][[분류:백씨]][[분류:청도 백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고려 백씨]][[분류:무신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