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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옥


개요

박정희의 첫번째 부인 김호남과의 사이에서 얻은 첫딸.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에게는 이복언니/이복누나가 되고, 육영수에게는 의붓딸이 된다.

생애

박정희와 김호남이 결혼한 이듬해인 1937년에 경상북도 구미에서 태어났다. 현재 age(1937-01-01)살.

박정희가 쿠데타를 하기 이전에 딸 박재옥은 이미 결혼하여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청와대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청와대 내 박정희의 가족들에 대해 많은 취재를 하던 시절에도 주목 받은 적이 없었다. 당시 청와대 측에서도 영부인인 육영수가 낳지 않은 자식이 주목받는 일을 막기 위해, 박재옥에 대해 홍보하는 일을 최대한 안 했다는 설이 많았다. 지금도 대선주자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후보마저도 이혼 경력이 있으면 사생활에 대한 보도로 대중 이미지에서 마이너스 되는 일이 많고, 혼외자 논란 같은 일들과 별개로 공식적인 이혼경력이 있는 대통령마저 하나도 없는 곳이 한국 정계이다.

물론 박재옥의 친모인 김호남은 이혼을 했더라도 엄연히 박정희와 정식 결혼한 아내였고 박재옥도 사생아가 아니라 박정희의 적녀가 맞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당시는 21세기 현대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보수적이어서 대통령이 이미 한참 전에 이혼했다는 사실이 주목되는 것을 죽어도 막으려고 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당시 대중들도 어느 정도 다 눈치를 챘었다. 20대 중반에 결혼 안 하면 노총각 노처녀 소리 듣던 당시 기준으로, 부모-자식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

어쨋든 박재옥은 이복동생들보다 훨씬 덜 알려졌기 때문에, 박근혜박정희의 장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실례로 탄핵 직후 박근혜의 인생을 재조명한 조선일보, 뉴데일리 등의 기사에서도 박정희의 첫딸이라고 했다. 이는 명백한 오보로, 박재옥은 혼외자식도 아닌 공식적인 결혼 관계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즉 법적으로든 실제로든 박재옥이 장녀이고 박근혜가 차녀이다.

박재옥은 이복동생들보다 넘사벽으로 많은 시간을 살아왔음에도[1] 불구하고 큰 말썽없이 무난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년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공주, 왕자처럼 생활하였던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등 이복동생들과 달리, 박재옥은 남편 한병기와 결혼하기 전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김호남의 이혼으로 인해 가정해체를 겪고 유년 시절부터 여러 친척 집들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가정생활을 거쳐오며 성장했던 인물이라, 이복동생들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상세

1937년 일제강점기 태생이며, 1952년생인 이복 여동생 박근혜보다 15살 위다.

남편은 한병기(1931~2017)이다. 한병기는 대한민국 육군영어 통역장교대한민국 육군 제5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가, 당시 사단장이던 박정희 장군전속부관이 되었다. 군 전역 후에는 제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과 캐나다, UN 대사로 근무했다. 이외에도 박재옥의 사촌언니 박영옥의 남편인 김종필 곁에서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병기와 박재옥의 자녀들로는 아들 태준·태현, 그리고 딸 유진이 있다.

박정희는 1936년에 김호남과 결혼했는데, 스스로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으로 억지로 결혼한 탓에 아내에게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래서 1940년대 후반에는 이현란과 불륜관계로 동거하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가 김호남과 이혼하면서, 박재옥은 한병기와 결혼하기 전까지 여러 친적집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한다. 친가, 외가는 물론이고 사촌오빠 박재석,[2] 사촌언니 박영옥[3]과 사촌형부 김종필 등. 계모인 육영수와도 같이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대중에게 후처인 육영수, 박근혜&박근령&박지만 3남매만 알려져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김호남과 박재옥 모녀는 남의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살았다. 그리고 박재옥 본인은 어떤 감투나 일체의 공직에도 나서지도 않았다. 아버지 사후 정치계에 들어갔던 이복 여동생 박근혜와 달리 정치와도 거리를 뒀다.

다만 어쨌거나 박정희의 장녀라서 박재옥도 나름대로 경제적 혜택은 받고 살았다. 박정희가 1969년 사위 한병기 전 의원에게 케이블카에 대한 국가 사업권을 준 뒤, 1971년 이후부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계속 독점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경제적인 면에서는 불편함 없이 살았다고.

참고로 드라마 제3공화국에는 증인으로 직접 출연했다.

사실 박재옥-한병기 부부도 굳이 파헤쳐보면 위에 언급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등에 대한 특혜 의혹이 있지만, 그 외에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구설수는 특별히 없다. 언론에서도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박재옥에 대해선 박근혜 친인척들의 행적을 파헤치면서 위의 케이블카 사업 특혜의 의혹 등에 대해 몇 차례 가볍게 다룬 것 외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다. 그 외에 박재옥의 사위인 박영우 회장의 대유그룹의 성장세가 굉장히 빨라서 김어준이명박다스 논란비교한 사례가 있었으나 다스 논란과는 달리 이 역시 흐지부지 묻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도 박재옥의 발언이나 행적이 언론에 포착된 적은 없었으며, 2017년 4월 남편 한병기가 사망했을 때도 대부분의 언론에서 단신으로 '전직 관료 겸 사업가인 한병기 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라고 언급한게 전부였다. 박근혜와의 연관성도 언론에선 '한병기 씨는 박근혜의 이복 형부이자 박정희의 맏사위이다'라고 간단한 이력을 설명했을 뿐이다. 이복동생 박근혜가 구속 수감되고 재판을 받을 때도 박재옥은 이렇다 할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한편 박재옥은 다른 공식 행사는 물론이고 박정희 일가와 직접 관련된 대외 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이복 남동생인 박지만의 결혼식에 참석한 게 전부다. 심지어 박정희, 육영수의 추모 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혜와 박근령, 박지만의 관계도 앙숙이지만 이런 추모 행사에는 함께 참석하던 것을 감안하면, 박재옥은 박근혜를 비롯한 아버지와 후처이자 계모 육영수 소생의 이복 남매들과는 교류를 거의 끊고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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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육영수의 장녀인 박근혜보다 15년 연상이다.
  • [2]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아들.
  • [3] 아버지 박정희의 셋째 형 박상희의 큰딸.이 여인 역시 박재옥과 더불어 박정희의 일가족들중 비판을 덜 받는 사람들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