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 정보
|작위 = [[조선의 역대 왕세자빈|세자빈]]
|재위 = [[1627년]] ~ [[1645년]]
|전임자 = (실제) [[폐빈 박씨]]
(법적) [[폐비 유씨|빈궁 류씨]](문성군부인)
|후임자 = [[인선왕후|빈궁 장씨]](인선왕후)
|그림 =
|그림제목 =
|아명 =
|출생일 = [[1611년]] [[4월 18일]]([[음력 3월 6일]])
|출생지 = [[한양]]
|사망지 = [[한양]]
|사망일 = [[1646년]] [[4월 30일]]([[음력 3월 15일]])
|매장지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영회원(永懷園)
|거주지 =
|국적 = [[조선]]
|본관 = [[금천 강씨|금천]](衿川)
|별칭 =
|직위 =
|종교 =
|배우자 = [[소현세자]]
|자녀 = [[경선군]] 석철(慶善君 石鐵)
[[경숙군주]](慶淑郡主)
[[경완군]] 석린(慶完君 石磷)
[[경녕군주]](慶寧郡主)
[[경순군주]](慶順郡主)
[[경안군]] 석견(慶安君 石堅)
|부모 = 중추부영사 강석기(中樞府領事 姜碩期)
|친척 = [[송준길]](진외당숙)
|서명 =
|웹사이트 =
|각주 = 복위 1718년(숙종 44년)
}}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 [[1611년]] ~ [[1646년]] [[4월 30일]]/[[음력 3월 15일]])는 [[조선]] [[소현세자]]의 부인이다. 본관은 [[금천 강씨|금천]](衿川)이며,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딸이다.
[[병자호란]]으로 남편 [[소현세자]]와 함께 [[도르곤]]에 의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귀환했다. 민회빈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상소를 처음 올린 김홍욱은 국문을 받던 중 장살되었는데, 이는 민회빈의 무죄가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조선 인조|인조]]에 의해 법살당했으나 당대에도 [[김집 (1574년)|신독재, 김집]], [[송시열]], [[김홍욱]], [[송준길]] 등은 그녀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여러 번 억울함을 신원하는 상소가 올려졌으나 거절되었고, 숙종 때 송시열이 다시 그녀의 억울함을 주장하여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뒤 [[조선 숙종|숙종]] 때 [[송시열]], [[김수항]] 등의 신원 상소로 복관되었다.
== 생애 ==
=== 가례 ===
본관은 [[금천 강씨|금천]]이고, [[1611년]] [[서울|한성]]에서 [[우의정]]이었던 [[강석기]]의 딸로 태어났다. [[1627년]], 만 16세의 나이로 세자빈이 되어 [[소현세자]]와 결혼하였다.
=== 인질과 석방 ===
[[1636년]] [[병자호란]]을 발발 후 이듬 해 [[1637년]]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게 되고, 강화조약에 따라서 [[소현세자]]와 19세의 [[봉림대군]](효종)과 그의 부인 장씨(인선왕후)와 함께 [[청나라]] [[선양 시|선양]]에 볼모로 잡혀간다. [[1644년]]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자살]]하고 명이 멸망하자, [[1645년]] 정월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는 8년간의 억류생활을 끝마치고 조선에 귀국하게 된다.
그러나 인조는 자신의 반청노선에 반기를 드는 소현세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불화는 계속된다. 결국 귀국한 지 두 달 뒤인 [[4월 23일]] 인조의 어의 이형익의 시침을 받고, 3일 후 소현세자가 34세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인조는 진상조사를 바라는 강빈과 대신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장례일을 앞당겨 입관을 서둘렀고 세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평민의 장례절차를 밟게 했다. 참관 인원도 일부 종실로 제한하고, 어의를 처벌하라는 논의 자체를 금했다.
=== 소용 조씨과의 갈등과 법살 ===
그해 [[봉림대군]]이 귀국하여 세자가 되었고, 강빈과 대립관계에 있던 조소용(훗날의 [[귀인 조씨 (인조)|귀인 조씨]])이 인조를 저주했다고 강빈을 무고하여 그의 형제들을 모두 유배시키자, 강빈은 인조에게 조석문안도 거부한다.
[[1646년]] 정월 강빈 궁 소속의 궁녀들이 인조의 수라에 독을 넣은 혐의로 가혹한 고문을 당했는데, 강빈은 이 혐의로 별당에 유치되고, [[1646년]] 4월 30일(음력 3월 15일)에 사약을 내려 죽게 한다. 강빈의 노모와 4형제는 모두 처형 당한다.[{{웹 인용
|url = http://people.aks.ac.kr/view.jsp?id=PPL_6JOb_A9999_2_0004163
|제목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 시스템-민회빈 강씨
|확인날짜 = 2008-11-18
|저자 =
|날짜 =
|출판사 = 한국학중앙연구원
|원본일자 =
|인용 =
}}] 그가 인조를 독살하려 했을리 없다고 확신한 [[이경석]]과 [[최명길]] 등은 강씨의 처형 독촉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거나 거절했고, 강씨 사형을 주장하는 상소문이나 상언이 올라와도 답변이나 결재를 회피하였다.
[[1646년]] 강빈의 죽음 이후 세 아들도 [[제주도]]로 귀양을 보내진다. 그곳에서 [[1648년]] 첫째 석철은 장독으로 죽고, 둘째 석린은 병으로 죽게 되며, 셋째 석견([[경안군]])은 작은 아버지인 [[조선 효종|효종]] 때에 귀양에서 벗어났다.
=== 사후 ===
강빈과 그녀의 아들들의 옥사는 [[김자점]]과 [[조선 인조|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 (인조)|귀인 조씨]] 일파의 정치공세성 성격이 짙었으므로 [[김집 (1574년)|김집]] 등은 [[조선 효종|효종]] 때 경안군(강빈의 셋째 아들)의 석방을 탄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이덕일,《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1997, 석필) 250쪽.] 이후 [[서인]] 산림 계열은 그녀가 억울하게 죽었다 보고 [[김집 (1574년)|김집]], [[송시열]], [[송준길]]은 [[소현세자]]와 강빈의 명예 회복과 복권을 여러번 건의하였다. 이 때문에 [[남인]]으로부터 [[조선 효종|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기도 했다.
효종 즉위후 5년째 되던 해에 구언에 의해 [[황해]][[감사]] [[김홍욱 (문정)|김홍욱]]은 강빈 옥사의 조작을 탄원하며 억울하게 옥사로 죽은 강빈의 신원회복과 [[소현세자]]의 살아있는 셋째 아들 석견([[경안군]])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조선 효종|효종]]은 [[김홍욱 (문정)|김홍욱]]을 국문 끝에 장살로 죽였다.[이덕일,《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1997, 석필) 249~251쪽.][이덕일,《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1997, 석필) 163쪽.] 숙종 때 [[송시열]]이 다시 그녀의 억울함을 주장하여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뒤 [[김수항]]의 신원 상소로 복관되었다. [[조선 숙종]]은 [[1718년]] 그녀의 무혐의를 인정하고, 민회(愍懷)라는 시호를 내려 복권시켰다. 억울하게 죽은 지 80년 만이었다.
== 가족 관계 ==
'''친정 [[금천 강씨]](衿川 姜氏)'''
* '''아버지''' : [[강석기]](姜碩期, 1580~1643)
* '''어머니''' : 신식(申湜, 1551~1623)의 딸 [[고령 신씨]](高靈 申氏, ?~1646)
'''왕가(王家 : [[전주 이씨]])'''
* 시조부 : 추존 [[조선 원종|원종대왕]](元宗大王, 1580~1619)
* 시조모 : 추존 [[인헌왕후 구씨]](仁獻王后 具氏, 1578~1626)
** 시아버지 : 제16대 [[조선 인조|인조대왕]](仁祖大王, 1595~1649, 재위 1623~1649)
** 생시어머니 : [[인렬왕후]] [[청주 한씨]](仁烈王后 淸州 韓氏, 1594~1636)
*** '''남편''' :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
**** 1녀 : 군주(郡主, 1629~1631)
**** 2녀 : 군주(郡主, 1631~1640)
**** 1남 : 경선군 석철(慶善君 石鐵, 1636~1648)
**** 3녀 : 경숙군주(慶淑郡主, 1637~1655)
**** 부마 : 증 능창부위 구봉장(贈 綾昌副尉 具鳳章)
**** 2남 : 경완군 석린(慶完君 石磷, 1640~1648)
**** 4녀 : 경녕군주(慶寧郡主, 1642~1682)
**** 부마 : 행 금창부위 박태정(行 錦昌副尉 朴泰定)
**** 5녀 : 경순군주 정온(慶順郡主 正溫, 1643~1654)
**** 부마 : 황창부위 변광보(黃昌副尉 邊光輔)
**** 3남 : 경안군 석견(慶安君 石堅, 1644~1665)
** 시어머니 : [[장렬왕후]] [[양주 조씨]](莊烈王后 楊州 趙氏, 1624~1688)
== 민회빈 강씨를 다룬 작품 ==
* 《[[대명 (드라마)|대명]]》 ([[KBS]], 1981년, 배우:[[이문희]])
* 《[[역사극장]]》 ([[EBS]], 2005년, 배우:[[김예령]])
* 《[[최강칠우]]》 ([[KBS]], 2008년, 배우:양소민)
* 《[[추노]]》 ([[KBS]], 2010년, 배우:김하윤)
* 《[[마의 (드라마)|마의]]》 ([[MBC]], 2012년, 배우:[[경수진]])
*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 ([[JTBC]], 2013년, 배우:[[송선미]])
* 《[[삼총사 (2014년 드라마)|삼총사]]》 ([[tvN]], 2014년, 배우:[[서현진 (배우)|서현진]])
* 《[[화정 (드라마)|화정]]》 ([[MBC]], 2015년, 배우:[[김희정 (1992년)|김희정]])
== 평가 ==
당대에 이미 법살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라 동정되었다. 그의 억울한 죽음을 주장했던 [[황해도]][[관찰사]] [[김홍욱]]은 장살로 고문치사하기도 했다. 이후 그녀의 죽음은 금기사항이었지만 [[김집 (1574년)|김집]], [[송시열]], [[송준길]] 등은 계속 그가 억울하게 죽었음을 주장하여 결국 [[조선 숙종|숙종]] 때에 가서 명예회복을 하게 된다.
=== 소설 ===
* 《소현세자》 박안식, 창작과 비평사, 1996, {{ISBN|8936430424}}
* 《강빈》 박정애, 예담, 2006, {{ISBN|8959131865}}
* 《별궁의 노래》 김용상, 순, 2009, {{ISBN|9788996417026}}
* 《소현세자빈 강빈》 김혜경, 문학스케치, 2010, {{ISBN|9788993176421}}
* 《민회빈 강씨》 김용상, 멜론, 2011, {{ISBN|9788994175232}}
* 《소현세자 독살 사건》 이수광, 산호와진주, 2011, {{ISBN|9788997213122}}
* 《소현세자》 이정근, 책으로보는세상, 2009, {{ISBN|9788996152033}}
== 같이 보기 ==
*[[소현세자]]
*[[조선 인조|인조]]
*[[경안군]]
== 관련 서적 ==
* <강빈(새로운 조선을 꿈꾼 여인)> 박정애, 예담, 2006. 12. 07, {{ISBN|8959131865}}
* <조선 왕 독살사건> 이덕일, 다산초당, 2005. 07. 08, {{ISBN|8991147305}}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이수광, 다산초당, 2006.09.15 {{ISBN|8991147763}}
*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신동준, 살림, 2007.11.09 {{ISBN|9788952207395}}
* <한국사전2> KBS한국사제작팀, 한겨레출판, 2008. 05. 26 ISBN 97888984312814
== 각주 ==
== 외부 링크 ==
*[http://people.aks.ac.kr/view.jsp?id=PPL_6JOb_A9999_2_0004163 역대인물종합정보 시스템-민회빈강씨]
[[분류:1611년 태어남]][[분류:1646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인질]][[분류:운현궁]][[분류:병자호란 관련자]][[분류:정묘호란 관련자]][[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독살된 사람]][[분류:금천 강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 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