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정보
| 이름 = 민철훈
| 출생일 = {{출생일|1856|9|9}}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25|7|1|1856|9|9}}
| 사망지 =
| 국적 =
| 별칭 =
| 학력 =
| 경력 =
| 직업 =
| 작위 = [[남작]]
| 전임자 = [[민종묵]]
| 후임자 = [[민규현]]
| 종교 =
| 배우자 =
| 상훈 =
| 웹사이트 =
}}
'''민철훈'''(閔哲勳, [[1856년]] [[9월 9일]] ~ [[1925년]] [[7월 1일]])은 [[조선]] 시대의 관료로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자는 성약(聖若), 호는 만향(晩香)이며 본관은 [[여흥 민씨|여흥]], 본적은 [[경성부]] 입정정(笠井町)이다.
== 생애 ==
[[한성부]] 출신으로 [[명성황후]]의 친족이자 고위 관료인 [[민종묵]]의 장남이다. 민종묵은 [[민승세]]의 아들이나 [[민명세]]에게 입적되어 민철훈은 민명세의 손자가 된다.
[[1895년]] [[조선의 과거 제도|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다. [[궁내부]] 등에서 일했으며 [[1901년]]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영국을 겸임하는 특명전권공사로 발령 받아 외교관으로 근무했다.[{{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7030200099201010&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7-03-02&officeId=00009&pageNo=1&printNo=292&publishType=00020|제목= 韓獨修交82年略史 |출판사 = 매일경제 | 날짜 = 1967-03-02 }}] [[1905년]] [[독일 황태자 빌헬름]]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뒤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아버지 민종묵이 [[1916년]] 사망하자 그의 작위를 물려받았고, [[1920년]] [[윤덕영]] 등이 [[해동은행]]을 설립할 때 설립위원장을 맡았다.
[[1897년]] [[충청남도]] [[천안시|천안]]에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근대식 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이 학교는 [[직산초등학교]]의 전신이다.[{{뉴스 인용
|제목=천안지역 학교역사 바로잡자!
|url=http://www.chonannews.co.kr/bbs/board.php?bo_table=news05&wr_id=1576
|출판사=천안신문
|저자=유창림
|날짜=2007-09-09
|확인날짜=2008-08-31
}}] 그의 작위는 양손 [[민규현]]이 습작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아버지 민종묵과 함께 선정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6JOc_A1856_1_0004134|민철훈|閔哲勳}}
== 각주 ==
{{각주}}
[[분류:1856년 태어남]][[분류:1925년 죽음]][[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조선남작]][[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여흥 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