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대식'''(閔大植, [[1882년]] ~ ?)은 [[일제 강점기]]의 은행가이다. == 생애 == 유명한 갑부이며 [[조선귀족]]인 [[민영휘]]의 소생 중 맏아들로 [[경성부]] 출신이다. 본래 군인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1920년]] 민영휘의 뒤를 이어 은행업에 뛰어든 뒤 조선 실업계의 거물로 활동했다. 민대식은 [[1931년]]에 호서은행을 합병하여 [[동일은행]]을 창설하고 은행장격인 두취가 되었다.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뉴스 인용 |저자 = 성강현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url = 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1.html |출판사 = 일요시사 |날짜 = 2004-03-18 |확인날짜 = 2008-06-16 |확인날짜 = 2008-03-06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627191258/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1.html |보존날짜 = 2008-06-27 |깨진링크 = 예 }}{{뉴스 인용 |저자 = 성강현 |제목 =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url = 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2.html |출판사 = 일요시사 |날짜 = 2004-03-18 |확인날짜 = 2008-06-16 |확인날짜 = 2008-03-06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627191303/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2.html |보존날짜 = 2008-06-27 |깨진링크 = 예 }} 이 책자에 따르면 "재계의 동향을 살펴 실무를 통제하는 일은 그의 독무대"였으며 "재계에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그가 나서서 조정역을 맡아 힘쓰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하여 민대식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 조선신탁회사, 조선맥주주식회사 취체역과 경성전기사회 감사역을 지냈고, 조선금융제도조사위원회 촉탁으로도 활동했다. [[1930년]]에는 [[경기도]] 에 관선 평의회원으로 들어갔고, 상공회의소 부대표로도 선출되었다. 1920년대부터 [[동민회]], [[조선불교단]] 등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서적 인용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날짜=2004-12-27 |출판사=민족문제연구소 |출판위치=서울 |id={{ISBN|8995330724}} |페이지=237,570쪽}} 《조선공로자명감》에 실린 인물평에 따르면 소극적인 은행가가 아닌 용맹심을 갖춘 분투가, 정력가로 묘사되어 있어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아버지의 재산을 많이 물려받고도 장례를 초라하게 치러 손가락질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서적 인용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제목=친일파 99인 1 |날짜=1993-02-01 |출판사=돌베개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71990117}} |장=민영휘 : 가렴주구로 이룬 조선 최고의 재산가 (서영희)}} 광복 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발효되었을 때 생존해 있어 반민특위의 조사 대상자였으나, 반민특위 활동이 방해를 받으면서 무혐의 판정이 내려져 처벌은 받지 않았다. == 사후 ==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경제 부문에 선정되었고, 곧이어 최종명단에도 등재되었다. 다만 요절한 동생인 민천식 및 민천식의 양자 [[민병도 (1916년)|민병도]]는 무혐의로 등재에서 제외되었다. 민병도는 가업을 이어 은행업에 종사하여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저널 인용 |저자=박미숙 |제목= “군사정권에 저항한 한은 총재” - 5일 타계한 故 민병도 전 한국은행 총재 |저널 =이코노미스트 |날짜 = 2006-03-21 |issue=제829호}} 한편, [[1937년]]에 [[강원도]] [[춘천시|춘천부]] 에서는 면민들이 성금을 모아 [[민형식 (1875년)|민형식]]과 민대식, [[민규식]] 형제의 송덕비를 세웠으며, 2008년에 친일 행적 논란으로 비석이 철거되었다.{{저널 인용 |제목=초등학교에 서 있던 친일인사 송덕비 기증 받아 |저자=민족문제연구소 |저널=민족사랑 |연도=2008 |작성월=8 |쪽=7~8쪽}} == 같이 보기 == * [[동일은행]] * [[민영휘]] * [[민병도 (1916년)|민병도]] == 참고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5_10049|민대식|閔大植}} == 각주 == [[분류:188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여흥 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