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방철용 |
예명 | 미르 |
소속 | 엠블랙 |
포지션 | 메인래퍼 |
생년월일 | 1991년 3월 10일 |
국적 | 대한민국width=30 |
출생지 | 전라남도 장성군 |
가족 | 고모 방민자[1], 누나 고은아 |
신체 | 175.5cm, 63kg, A형 |
SNS | 트위터 |
종교 | 불교 |
목차
소개 ¶
다만 군필자를 중심으로는 오히려 비호감 이미지가 쌓였다. 일단 군대 예능을 찍기에는 두발상태가... 예비군 훈련 가면 저보다 더 충격적인 머리도 많이 볼 수 있지만 미르는 미필이라는 것이 악재였다. 반면 박형식은 의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화 ¶
드디어 우리 학교도 농번기를 시작했다. 시골은 일손은 적고 일은 많기 때문이다. 올해는 일요일이랑 현충일, 그리고 농번기가 겹쳐서 무려 4일이나 쉴 수 있다는 마음에 농번기를 한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려왔다. 하지만 우리집은 과수원을 하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조금은 싫기도 했다. 하지만 모처럼 부모님을 도와 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니 이번만큼은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농번기 첫째 날 아침 10시에 일어나고 말았다. 그 전날 아빠와 할머니께서 고사리를 끊으러 가자고 했는데 늦게 일어난 것이다. 나는 황급히 씻고 밥도 빨리 먹고 산으로 급히 달려갔다. 하지만 아빠와 할머니께서는 아침 7시부터 끊기 시작하셔서 내가 왔을 때는 일 할 게 별로 없었다. 할머니와 아빠의 눈이 무서운 눈으로 변해 있었다. 아빠는 나를 부르더니 염소 밥 좀 주고 오라고 하셨다. 우리집은 염소를 많이 기르기 때문에 밥 주는 일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막상 염소들 앞에 가니 무섭기도 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뭐하러 염소는 이렇게 많이 키우나 싶다. 염소 밥까지 다 주고 나니깐 시간은 어느새 11시가 되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11시라니 집에 돌아와서 제대로 씻고 옷도 단정히 입고 컴퓨터를 한 시간 동안 했다. 주위를 보니 왜 이렇게 심란한지 조금씩 조금씩 치워갔다. 치우기만 했는데 30분이나 걸렸다. 먼지가 많아서 조금 쓸고 나니깐 옆이 또 더러웠다. 거기를 쓸고 나면 또 그 옆이 더러웠다. 할 수 없이 온 집안을 쓸고 다녔다. 쓸고 나서 어쩔 수 없이 걸레를 가져와 온 집안을 다 닦았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1시가 돼 있었다. 오늘 점심밥도 당연히 라면이었다. 할 수 없이 라면을 먹고 밖에 나가서 조금 놀다가 들어왔다. 나는 조금 논다고 논 건데 시간은 5시가 되었다. 나도 양심은 있어서 저녁을 먹고 내가 오랜만에 설거지를 했다. 둘째날은 다행히 7시에 일어나서 여유 있게 씻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사과밭으로 향했다. 아빠가 농약을 할 테니깐 나는 밧줄만 풀면 된다고 했다. 쉬울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어렵기도 하고 팔도 아프기 시작했다. 이런 걸 매일매일 하는 아빠는 얼마나 힘드실까 상상이 갔다. 한편으로는 너무 죄송했다. 12시가 돼서야 겨우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 왜 이렇게 밥이 맛있는지 너무 감동적이었다. 아빠가 이제 할 게 없다고 놀고 와도 된다고 하셨다. 영장이, 영권이, 성현이, 경수를 불러 성암에 가서 수영을 했다. 겨우 이틀밖에 일을 못했지만 일주일동안 학교를 다닌 피곤함과 거의 다를 바 없었다. 일은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너무너무 힘든 거 보니 부모님이 매일매일 아프시다는 말이 이제는 이해가 갔다.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날이 올텐데 조금은 막막하기도 하다. |
나에게 있어 최고의 가수 god 이번에 국어 숙제로 재밌는 숙제가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에 대해서 쓰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god란 가수는 어떤 가수인가? god의 뜻은 다 알고 있듯이 신이란 뜻이다. god는 5인조 그룹으로 나에게 있어서는 어떤 가수들보다 뛰어나 보이는 나의 우상이다. god는 1999년에 데뷔했으며 어떤 소속사에서도 데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가수였다. god는 얼굴도 못 생겨서 데뷔했을 때 혹평을 받았다. "저 가수는 뭐야?","한국 가수계의 창피다" 이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맨 처음에 데려갔던 소속사에서는 방송으로 내보낸 다음 한달 뒤에 그 소속사에서 god가 쫓겨날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박진영이라는 가수가 키우게 됐고 처음으로 god한테 들어온 방송이 god의 육아일기라는 방송이었다. god 다섯 명이 아기 재민이를 키우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 방송이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god는 잘 사는 편이 아니라서 하루에 한 끼 먹을까 말까 했다고 한다. 하지만 god 다섯 명은 재민이를 먹이고 잘 키우기 위해 다른 집에 가서 우유를 얻어 오는 모습을 많이 봤다. 아무래도 내가 그런 모습에 god를 좋아한 것 같다. 자기도 못 챙기는 판에 피도 안 섞인 재민이를 어떻게든 먹이려고 자존심 가릴 것도 없이 애원하는 모습이 나한테는 큰 인상을 심어 주었다. 네티즌들의 비평도 점차 줄어들면서 2집 때는 국민가수라는 호칭이 붙게 됐다. "애수"라는 노래로 많은 인기를 모으고 그 당시 최고 음반 판매량을 차지할 정도로, god라는 가수는 조금씩 정상의 자리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god의 육아일기는 2집이 나오고 끝날 때까지 계속 됐고, 3집이 나왔다. 3집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음반이라고 하여 우리들 곁으로 왔다. "촛불하나"라는 노래를 처음 듣고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3집때도 god의 육아일기는 계속 됐고, god음반판매량 210만장을 시작해 god는 KBS대상까지 타는 큰 가수로 떠올랐다. 그리고 god의 첫 번째 콘서트가 시작됐고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나도 그 콘서트를 갔었는데 god의 김태우가 노래를 부르는 도중 목이 찢어져서 잠시 중단하고 다시 나왔다. 목에 붕대를 감고 나왔는데 god는 그 전보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불렀다. 그 때 생각했다. "god의 힘의 원천은 바로 이거구나..." 내 눈에는 저런 모습이 정말 멋있게 보였던 것이다. 콘서트가 끝나고 2달 정도 후에 god의 4집이 나왔다. 4집이 나오는 동시에 god의 육아일기는 끝이 났다. 이 때까지 열심히 키워서인지 재민이는 정말 귀엽고 튼튼하게 큰 것 같았다. god는 4집이 나오고 1주만에 100만장이 팔렸고, 그 때 SBS, KBS대상들을 모두 휩쓸 정도로 국민그룹 god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god의 100회 콘서트가 시작됐고, 1 년 후, 그러니깐 4집이 끝나고 2 년 후에 god의 5집이 나왔다. 그리고 몇 달 후, god의 윤계상이 군대에 들어갔다. 항상 5명이였던 god의 윤계상이 빠져서 그 자리는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1년 정도 후에 god의 6집이 나오고 그 때도 god는 활동을 별로 못하고 다시 콘서트 하러 들어 가 버렸다. 콘서트 3주 후 손호영과 김태우가 군대에 들어가게 됐다. 윤계상도 없는 판에 두 명이나 더 빠지니 너무나도 충격적이였다. 하지만 "god에 3명이 빠져도 god는 영원한 god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god라는 가수는 나에게 "희망을 잃지마라,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큰 교훈을 남겨주었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god라는 가수는 다른 가수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존경해 온 가수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그리고 4년 뒤 김태우, 손호영, 윤계상은 아는 형이 된다. 인생의 승리자 간지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