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https://search.pstatic.net/common?type=a&size=120x150&quality=95&direct=true&src=http%3A%2F%2Fpeople.phinf.naver.net%2F20181026_151%2F15405384905778quPr_JPEG%2Fyonhapnews_33676584.jpg 文鐘斗 1916년 12월 25일 ~ 1987년 8월 29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6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상업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일본]] [[주오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이후 경상북[[도청(행정)|도청]] 이사관, 경상북도 교육위원, 김천시보 [[사장]], 김천[[상공회의소]] [[회장]], 김천신문기자단 단장 등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금릉[[군(행정구역)|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여영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김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7월 30일 오전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나온 구황실재산특별회계에 대해 [[정낙훈]]([[자유당]]), [[서범석(1902)|서범석]]([[민주당(1955년)|민주당]]), [[민관식]](민주당) 국회의원과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의 윤우경 사무국장에게 [[순정효황후 윤씨]]가 [[창덕궁]] 낙선재로 되돌아가겠다고 요구하였는데 어떻게 하였는가라고 질문하여 생활비로 매월 46만 환을 지급한다고 답변받았으나 1년 뒤 윤우경이 돈을 착복하였음이 드러났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세영(정치인)|김세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등록이 취소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칠곡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