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개 == http://news.kbs.co.kr/data/fckeditor/new/image/20170204chs369.jpg michael fay [[싱가포르]]에서 [[태형]]을 당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인]] [[남성]]. ## == 이력 == ## 간단한 이력, 연표형식. == 생애 == 오하이오 주 데이튼에 거주했다. 1994년 3월, 18세에 싱가포르에서 태형을 당했다. == 활동 == === 싱가포르에서 태형 === 1994년 당시 18세였던 마이클 페이는 싱가포르에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지는 기행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싱가포르 법원은 마이클 페이에게 태형 6대와, 3500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있었으며, 미 국무부는 "외교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 [[빌 클링턴]] 대통령 까지 나서서 "태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6대에서 4대로 [[감형]] 했을 뿐이었다. 당시 싱가포르의 고척동(吳作東) 총리는 "누구든지 싱가포르 땅에서 법을 어기면 싱가포르 법에 따라야 한다"면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친서까지 보낸 점을 감안해 태형을 6대에서 4대로 줄여준다"고 말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22944 (참조)]] [[http://news.kbs.co.kr/data/fckeditor/new/image/20170204chs370.jpg]] 태형 직후 마이클 페이의 엉덩이 사진 여담으로 미 연방정부의 조치와는 달리, 정작 미국 일반인들은 마이클 페이가 태형에 당한 것에 대해서 오히려 환영(…)하는 여론도 있었다. 1994년 봄에 USA투데이가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53%가 태형의 도입을 찬성했다. [[엄벌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사회의 경향 때문인듯.[[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27/2007072700998.html (참조)]] ## == 업적 == ## 특기할 만한 활동 ## == 가족사 == ## 가족에 대한 이야기 ## == 일화 == ## 특정한 일화 ## == 사건 사고 == == 평가 == == 여담 == * [[마이클 베이]]와 헷갈리면 곤란하다. 물론 마이클 베이에게 태형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 ㅏㅏㅏㅏ== 참조 == == 분류 == [[분류:미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