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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李舜臣, 생몰년 미상)은 [[조선]]시대 중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시|전주]](全州)이다. 종실(宗室)로의 서자이며 등림수(登臨守)의 작위를 받았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동명이인으로 [[충무공 이순신]], [[무의공 이순신]]과의 구별을 위해 '''등림수 이순신'''이라 부른다.
'''이순신'''(李舜臣, 생몰년 미상)은 [[조선]]시대 중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시|전주]](全州)이다. 종실(宗室)로 [[춘양군]]의 서자이며 등림수(登臨守)의 작위를 받았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동명이인으로 [[충무공 이순신]], [[무의공 이순신]]과의 구별을 위해 '''등림수 이순신'''이라 부른다.
== 생애 ==
이순신은 [[보성군]]의 서손이자 이내(李徠)의 서자로 여러 관직을 지내고 '''등림수'''에 올랐다. [[1518년]] 그의 적형(嫡兄) [[임강부정]](臨江副正) 이준(李晙)이 죽자, 적형이 죽은 지 겨우 4일 만에 형의 첩을 꾀어다가 그 집에 감추어 두었는데, 이후 추문(醜聞)이 외부로 돌게 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93%B1%EB%A6%BC%EC%88%98&keyword=%EB%93%B1%EB%A6%BC%EC%88%98 :::::조선왕조실록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순신은 이 소문을 없애려고, 이웃에 사는 피혁장(皮革匠)을 형의 첩이 거처하는 방에 갖다 두고 강제로 관계하게 하였다. 그러나 소문이 조정까지 알려지면서가 이 사건을 적발하여 [[조선 중종|중종]]에게 아뢰니, 의금부에 내려서 추국(推鞫)하게 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이순신은 [[보성군]]의 서손이자 [[춘양군]](春陽君) 이내(李徠)의 서자로 여러 관직을 지내고 '''등림수'''에 올랐다. [[1518년]] 그의 적형(嫡兄) [[임강부정]](臨江副正) 이준(李晙)이 죽자, 적형이 죽은 지 겨우 4일 만에 형의 첩을 꾀어다가 그 집에 감추어 두었는데, 이후 추문(醜聞)이 외부로 돌게 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93%B1%EB%A6%BC%EC%88%98&keyword=%EB%93%B1%EB%A6%BC%EC%88%98 :::::조선왕조실록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순신은 이 소문을 없애려고, 이웃에 사는 피혁장(皮革匠)을 형의 첩이 거처하는 방에 갖다 두고 강제로 관계하게 하였다. 그러나 소문이 조정까지 알려지면서 [[종부시]](宗簿寺)가 이 사건을 적발하여 [[조선 중종|중종]]에게 아뢰니, 의금부에 내려서 추국(推鞫)하게 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이후의 행적은 미상이다.
이순신(李舜臣, 생몰년 미상)은 조선시대 중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종실(宗室)로 춘양군의 서자이며 등림수(登臨守)의 작위를 받았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동명이인으로 충무공 이순신, 무의공 이순신과의 구별을 위해 등림수 이순신이라 부른다.
생애 ¶
이순신은 보성군의 서손이자 춘양군(春陽君) 이내(李徠)의 서자로 여러 관직을 지내고 등림수에 올랐다. 1518년 그의 적형(嫡兄) 임강부정(臨江副正) 이준(李晙)이 죽자, 적형이 죽은 지 겨우 4일 만에 형의 첩을 꾀어다가 그 집에 감추어 두었는데, 이후 추문(醜聞)이 외부로 돌게 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조선왕조실록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f>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순신은 이 소문을 없애려고, 이웃에 사는 피혁장(皮革匠)을 형의 첩이 거처하는 방에 갖다 두고 강제로 관계하게 하였다. 그러나 소문이 조정까지 알려지면서 종부시(宗簿寺)가 이 사건을 적발하여 중종에게 아뢰니, 의금부에 내려서 추국(推鞫)하게 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이후의 행적은 미상이다.
가족 관계 ¶
참고 ¶
각주 ¶
<references/>
{{토막글|조선|한국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