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https://search.pstatic.net/common?type=a&size=120x150&quality=95&direct=true&src=http%3A%2F%2Fpeople.phinf.naver.net%2F20181026_205%2F1540538490751l6HD4_JPEG%2Fyonhapnews_33676697.jpg 都晋熙 1917년 6월 28일 ~ 1995년 5월 31일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호는 두남(斗南)이다. 1917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성주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육군]] [[부사관]]으로 근무하였다. 그런데 1949년 일어난 고희두씨 고문치사 건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6.25 전쟁]] 때 가출옥하였다. 그리고 1952년 육군 [[하사]]로 예편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성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배상연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하여 탈당하였다가 복당하였다. 1956년 [[김창룡]] 암살 사건에 연루되었다. 그의 집에서 범행 당시 사용한 지프차가 발견되었는데, 그는 이 지프차를 저격사건 후 4일 뒤에 구입하고 수리한 뒤 자기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증거를 인멸한 혐의, 암살자인 허태영 대령 등과 범행을 공모한 혐의를 받았다. [[대한민국 국회]]는 정부로부터 그에 대한 체포동의 요청을 받았다. 결국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통과되었다. 게다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때 형이 실효되지 않고 집행정지 상태라서 출마 자격이 없는데 출마하였다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결국 이듬해인 1957년 9월 국회에서 제명되었다. 그리고 1958년부터 1960년까지 복역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대한민국)|자유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송한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송한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국민당(1971년)|국민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병희(정치인)|이병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성주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