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정보 |이름 = 남명혁 다미아노 |출생일 = [[1802년]] |사망일 = [[1839년]] [[5월 24일]] |축일 = [[9월 20일]]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그림 = |크기 = |설명 = |출생지 = 서울 |사망지 = 서울 서소문 |직업 = 순교자 |시복일 = [[1925년]] [[7월 5일]] |시복인 = [[교황 비오 11세]]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상징 = |수호 = |매장지 = |성당 = |기도 = }} '''남명혁'''(南明赫, [[1802년]] ~ [[1839년]] [[5월 24일]])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다미아노'''(Damianus)이다. == 생애 == 남명혁은 [[1802년]]에 [[한양]]에 있는 유명한 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을 때,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에 대하여 배웠고 그것을 따르기 시작했다. [[중국인|청국인]] [[사제]] [[유방제]] 파치피코가 [[조선]]에 왔을 때, 남명혁은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교리]] [[교사]]가 되었고 그의 집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는 이웃과 [[환자|병자]]들을 돌보았으며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의 자녀가 세례를 받게끔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그에게 영원한 삶에서는 그가 어떻게 불리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저는 [[순교자]] 남 다미아노와 성의회(聖衣會)의 일원으로 불렸으면 좋겠습니다." [[1839년]] 초에 [[기해박해]]가 시작되었다. 한 심술궂은 예비 신자의 고발로 인해, 53 명의 신자가 노출되었는데, 특히 교리 교사들인 [[이광헌 아우구스티노]]와 남명혁 다미아노가 큰 위험에 처해 있었다. 즉시 그들은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남명혁이 맡아 두고 있던 [[앵베르]] [[주교]]의 [[제의]] 및 [[주교관]] 그리고 [[성무일도서]]가 포장의 손에 들어갔다. 남명혁은 주교의 물품으로 인해 더 격심하게 [[심문]] 받았다. 그는 포장에게 그 [[종교]] 물품은 그 [[프랑스인]] [[선교사]] [[주교]]의 것이 아니라 [[1801년]]에 순교한 [[주문모]] [[신부]]의 것이라고 말했다. 포장은 남명혁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믿는 척했다. 왜냐하면, 그는 [[외국인]]을 체포 했을 때 일어날지도 모르는 가능한 문제의 규모에 대해서 내심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포장은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해서 더 엄하게 남명혁을 문초했다. "너는 그릇된 증언을 하였다. 그 주교의 제의와 주교관은 완전히 새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약 40년 전에 죽은 사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또한 남명혁은 그의 종교를 부정하는 것과 다른 교우들의 이름을 누설하는 것을 거부하였으므로, 격심하게 고문 받았다. 그는 뼈가 부러졌고, 너무 심하게 얻어 맞아서 나흘간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의식이 돌아오자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남명혁은 [[사형]] 선고를 받고서, 감옥에서 그의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인용문2|이 세상은 우리가 거쳐 가는 여관일 뿐입니다. 우리의 진짜 고향은 [[천국]]입니다. 저를 따라 [[순교자]]가 되십시오. 저는 우리가 끝없는 영광의 왕국에서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1839년]] [[5월 24일]] [[금요일]], 남명혁은 [[서소문]] 밖으로 압송되어 여덟 명의 교우들과 함께 [[참수]]되었다. 그는 머리가 잘려 나갈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영광스럽게 순교했을 때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 시복 · 시성 == 남명혁 다미아노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뉴스 인용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url = http://www.pbc.co.kr/CMS/news/view_body.php?cid=520930&path=201407 | 출판사 = 평화방송 | 저자 = 이상도 | 날짜 = 2014-07-24 | 확인날짜 = 2014-10-12 }}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 (기독교)|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참고 문헌 == * {{언어링크|en}} [http://english.cbck.or.kr/Saints103/229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103 Martryr Saints: 남명혁 다미아노 Damiano Nam Myong-hyog] == 각주 == {{각주}} [[분류:1802년 태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