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규'''(金漢奎, 일본식 이름: 金子漢奎, [[1877년]] [[9월 20일]] ~ [[1950년]] [[10월 5일]])는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본관은 [[김해 김씨|김해]]이다. == 생애 == 출신지는 [[한성부]]이다. [[농상공부]] 참서관을 지낸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고, 한문을 수학하다가 [[1995년]]에 [[관립한성일어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898년]]부터 [[일본어]] 교사로 일하면서 [[1907년]]에는 [[학부 (대한제국)|학부]] 서기관을 지내는 등 [[대한제국]] 관료로 근무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금융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여러 기업의 중역으로 일하면서 [[조선상업은행]] 감사를 지냈으며, 조선 금융계의 중심 인물로서 [[한상룡]]과 쌍벽을 이룬다는 평을 들었다. 경성상공회의소 부회두, 경기도평의회 의원, [[조선식산은행]] 상담역 등으로도 활동했고, [[한일은행 (1906년)|한일은행]]이 호서은행을 합병하는 데 공헌하여 한일은행의 토대를 닦았다. [[1933년]]에 퇴직한 뒤에도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뉴스 인용 |저자 = 성강현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url = 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1.html |출판사 = 일요시사 |날짜 = 2004-03-18 |확인날짜 = 2008-07-07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627191258/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1.html |보존날짜 = 2008-06-27 |깨진링크 = 예 }}{{뉴스 인용 |저자 = 성강현 |제목 =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url = 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2.html |출판사 = 일요시사 |날짜 = 2004-03-18 |확인날짜 = 2008-07-07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627191303/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2.html |보존날짜 = 2008-06-27 |깨진링크 = 예 }} 이 책자에는 김한규가 조선의 부호치고 특이한 인물이라 유흥에 별 관심이 없고 사회 활동을 즐겨, 이상적인 인격으로 청년의 모범이 된다는 평이 실려 있다. 실업인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대정실업친목회]] 등 각종 친일 단체에 가담{{서적 인용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날짜=2004-12-27 |출판사=민족문제연구소 |출판위치=서울 |id={{ISBN|8995330724}} |페이지=208쪽}} 하였고, 조선국방협회 부회장도 맡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서보장]]을 수여받는 등 [[종7위]] [[훈5등]]에 서위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과 친일단체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는 중추원과 경제 부문에 포함되었다.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 같이 보기 == * [[조선총독부 중추원]] == 참고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1_03952|김한규|金漢奎}} == 각주 == {{각주}} [[분류:1877년 태어남]][[분류:1950년 죽음]][[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김해 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