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1934년]] [[10월 27일]] ~ [[2012년]] [[10월 3일]])은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이다.
== 생애 ==
[[경성부]]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뉴스 인용
|제목=김정일총비서 비전향장기수 김창원에게 생일 70돐상
|출판사=조선중앙통신
|날짜=2004-10-28
}}]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서울특별시|서울]] [[영등포구]]에서 살고 있었다. 이때 나이가 10대 중반으로 어렸으나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군에 입대할 수 있게 나이를 올리고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며 참전하였다.
[[1953년]]에는 [[조선로동당]]에도 입당하였고 [[평양]]에서 학교를 마치고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석탄공업성에서 에너지 분야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혼인하여 가정도 이루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공작원으로 남파[{{뉴스 인용
|url=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90222604
|제목=풀려나는 미전향 장기수들
|출판사=문화일보 (연합뉴스 인용)
|날짜=1999-02-22
|확인날짜=2008-08-06
}}] 되었으며,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와 [[전주교도소]] 등에서 복역하였다.
수감 기간 중에 전향을 권유받았지만 전향하지 않았고 [[1999년]]에 출소하였다. 총 수감 기간은 약 31년이다. 출소 후에는 [[대구광역시]]에서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고령자로 건강이 좋지않은 [[김종호 (1916년)|김종호]]를 돌보면서 생활하였다.[{{뉴스 인용
|제목=다시는 뵈올 수 없게된 그 인자하신 모습
|출판사=통일뉴스
|저자=권오헌
|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603
|날짜=2003-11-25
|확인날짜=2008-09-06
}}]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거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착하고서 음악가로서 활동하면서 노래 〈행복 속에 기쁨 속에〉, 〈내 사랑, 내 삶의 노래〉 등을 작사하고 작곡하였다.[{{뉴스 인용
|제목 = 북송 비전향장기수 '특별' 대우
|출판사 = 동아일보 (연합뉴스 인용)
|저자 = 신유리
|url = http://www.donga.com/fbin/output?rellink=1&code=a__&n=200706170047
|날짜 = 2007-06-18
|확인날짜 = 2008-09-06
}}{{깨진 링크|url=http://www.donga.com/fbin/output?rellink=1&code=a__&n=200706170047 }}] [[2008년]] 4월에 《[[로동신문]]》에 수기〈태양의 노래는 영원합니다〉를 발표하는 등 [[김정일]]을 향한 지지를 표명했다.
== 각주 ==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작곡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