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김지섭 (1885년)|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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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섭
'''김지섭'''(金祉燮, [[1885년]] ~ [[1928년]] [[2월 20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호는 추강(秋岡)이며, [[경상북도]] [[안동시|안동]](安東) 출생이다.
== 생애 ==
상주보통학교 교원을 거쳐 금산지방법원 서기, 김응섭(金應燮) 법률사무소 상주출장소원을 지냈다.
[[1919년]] [[3·1 운동]] 때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1920년]] 중국으로 망명,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상하이·베이징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4년]]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 고관들을 저격하고자, [[1923년]] [[12월 20일]]에 상해를 출발하여 31일 후쿠오카에 도착하였다. 이때 고바야시 간이치(小林貫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서적 인용
| 저자 = 김삼웅
| 제목 = 약산 김원봉 평전
| 출판사 = 시대의창
| 연도 = 2008
| 쪽 = 168
| doi =
| id = {{ISBN|9788959400928}}
}}]
1924년 [[1월 3일]] [[도쿄]]에 잠입하였으나, 제국의회가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계획을 변경하여 일본 궁성(宮城)의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 3개를 던지기로 했다. [[1월 5일]]에 왕궁진입을 시도하며 폭탄을 던졌으나, 3개 모두 불발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의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조선 민중 전체의 의사를 대표한 사람"이고 폭탄이 불발했으니 불능범이라 무죄를 주장했으나, 검찰은 사형을 구형하고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1928년]] [[2월 20일]]에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복역 중 사형당하였다.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각주 ==
== 같이 보기 ==
* [[니주바시 폭탄 의거]]([[:ja:二重橋爆弾事件|일본어]])
*[[독립유공자로 대통령장을 수여받은 사람]]
== 외부 링크 ==
* {{독립유공자|1968|김지섭}}
{{1995년-이 달의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대통령장}}
[[분류:1885년 태어남]][[분류:1928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분류:의열단]][[분류:풍산 김씨]][[분류:안동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