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金益魯 1905년 4월 15일 ~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이다. 1905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으로 이주하여 영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농업대학 실과를 수료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일제강점기]] 삼우공업주식회사 사장, 남선민보사 사장, [[한국독립당(1930년)|한국독립당]] 경상북도당 선전부장, [[독립신문]] 경상북도 지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이후 [[달성군]]-[[대구광역시|대구시]] 농회 기수, 대구시 시정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개편으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징계자격위원회 [[주사]]에 임명되었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징계자격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를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고 같은 해 6월 선거무효 판결이 내려져서 9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상대 후보의 표를 절취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1959년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최해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칠곡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