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정보 | 이름 = 김영철 | 그림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5/Kim_Yeong-cheol_Portrait.jpg/300px-Kim_Yeong-cheol_Portrait.jpg | 그림설명 = | 출생일 = [[1841년]] | 출생지 = | 사망일 = [[1923년]] | 사망지 = | 국적 = | 별칭 = | 학력 = | 경력 = | 직업 = | 작위 = [[남작]] | 후임자 = [[김영수 (1880년)|김영수]] | 종교 = | 배우자 = | 상훈 = | 웹사이트 = }} '''김영철'''(金永哲, [[1841년]] ~ [[1923년]])은 구한말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자는 문경(文卿), 본관은 [[광산 김씨|광산]]이며 본적은 [[경성부]] 체부동이다. == 생애 == [[한성부]] 서부 반송방 미동에서 [[이조판서]]를 지낸 [[김보현 (1826년)|김보현]]의 아들로 태어나 [[1872년]] [[조선의 과거 제도|과거]]에 급제한 뒤 병조정랑을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아버지인 김보현이 [[명성황후]]의 [[여흥 민씨]] 집권 아래 고위직을 역임하여 그도 요직에 임명되었다. 김보현은 [[선혜청]] 당상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로 근무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 때 분노한 구식 군인들에게 현직 선혜청 당상 [[민겸호]]와 함께 피살되었다. 김영철은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거쳤다.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받아 [[1886년]]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판서 벼슬을 두루 역임했고,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10년]] 70세 이상의 퇴임 관리를 위한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그해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합방에 협조한 원로 관료로서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작위를 습작 받은 아들 [[김영수 (1880년)|김영수]]와 함께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 가족 관계 == * 고조부 : 김상의(金相儀) ** 증조부 : 김기은(金箕殷) *** 할아버지 : 김재성(金在成) **** 아버지 : [[김보현 (1826년)|김보현]](金輔鉉) **** 어머니 : 홍종원(洪鍾源)의 딸 ***** 부인 : ? ****** 아들 : [[김영수 (1880년)|김영수]](金英洙) ******* 손자 : [[김용국 (조선귀족)|김용국]](金容國) == 같이 보기 == * [[김보현 (1826년)|김보현]] * [[김영수 (1880년)|김영수]]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연도=2007 |발행월=12 |id=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출판위치=서울 |쪽=59~64쪽 |장=김영철 |장url=http://www.pcic.go.kr:8088/pcic/UserFiles/File/2007JOSA/SUJAKSUBSAK/4-KYC.pdf }}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HIL_A1841_1_0002215|김영철|金永哲}} [[분류:1841년 태어남]][[분류:1923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조선남작]][[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광산 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