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정보
| 이름 = 김성춘
| 그림 =
| 설명 =
| 본명 =
| 출생 = [[1903년]] [[8월 1일]]
| 출생지 = [[한성부]]
| 사망 = [[1977년]]
| 사망지 =
| 국적 = {{국기그림|대한민국}}
| 분야 = 영화조명
| 교육 =
}}
'''김성춘'''(金聖春, [[1903년]] [[8월 1일]][{{서적 인용
|저자=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제목=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날짜=2006-12-15
|출판사=소도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90626264}}
|페이지=37쪽
}}
] ~ [[1977년]])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한국의 영화 조명기사이다.
== 생애 ==
[[한성부]] 출신으로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인현공립보통학교와 혜화공립보통학교 부설 상급실습학교를 졸업했다. 한국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투》를 보고 영화 기술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되었다.
[[1920년]]을 전후하여 영화 공부를 위해 [[일본]]에 유학한 뒤 처음에는 연기를 공부했다. 이후 영화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나고야 시]]의 [[동아키네마]]에서 조명 기술을 전수받았다.[{{뉴스 인용
|url =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article_id=4506&page=7&mm=005002006
|제목 = 똥기저귀 빨며 일본인에게 영화를 배웠지
|출판사 = 씨네21
|저자 = (정리) 안선주
|날짜 = 2001-10-10
|확인날짜 = 2008-05-25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0042/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article_id=4506&page=7&mm=005002006#
|보존날짜 = 2016-03-04
|깨진링크 = 예
}}] 일본에서 경험을 쌓은 뒤 [[1930년대]] 초반 귀국하여 선진적인 조명기술을 한국 영화에 도입하여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조명기사로 평가된다.
데뷔작은 [[사실주의]] 성향이 강한 [[방한준]]의 《살수차》(1935)이다. 김성춘은 일본에서 최신 조명기를 들여와 이 영화의 조명을 담당함으로써 한국 최초로 빛과 조명이라는 개념이 영화 제작에 적용되었다.[{{뉴스 인용
|url =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2006&article_id=4606
|제목 = “영업부장 때려가며 100키로 전기 끌어왔지”
|출판사 = 씨네21
|저자 = (정리) 안선주
|날짜 = 2001-10-17
|확인날짜 = 2008-05-25
|확인날짜 = 2008-05-25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0728/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2006&article_id=4606
|보존날짜 = 2016-03-04
|깨진링크 = 예
}}] 김성춘은 이 작품을 각색하고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조선영화주식회사]] 조명부장과 기술부 책임자를 맡는 등 일제 강점기 동안 많은 영화를 찍었다.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다수의 어용 영화에서 조명을 담당하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기도 했으나 보류되었다. 김성춘이 이 시기에 참여한 작품은 《나는 간다》(1942), 《조선해협》(1943), 《우러르라 창공》(1943), 《[[병정님]]》(1944), 《태양의 아이들》(1944), 《감격의 일기》(1945), 《우리들의 전쟁》(1945), 《사랑과 맹서》(1945) 등 군국 영화로 평가되는 전쟁 선전물이다.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미군정]] 하에서 제작된 《자유만세》(1946)를 시작으로 《파시》(1949), 《시집가는 날》(1956) 등 많은 작품에서 조명을 담당했다. [[이범선]]의 원작을 영화화하여 한국 사실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은 [[유현목]]의 《오발탄》(1961)은 김성춘이 조명과 제작을 함께 맡은 작품이다.
《오발탄》 이후로 활동이 뜸해졌다. 마지막 작품은 [[1970년]]에 개봉된 [[윤정희 (1944년)|윤정희]] 주연의 《천사의 눈물》이다. 조명 분야에서 제자도 다수 길러내 대한민국 영화 조명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참고자료 ==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KOR_A1904_1_0001879|김성춘|金聖春}}
* {{서적 인용
|저자=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제목=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날짜=2006-12-15
|출판사=소도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90626264}}
|페이지=37~39쪽
}}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KMDb 사람|00004739|김성춘}}
* {{IMDb 이름|1185356|Seong-chun Kim}}
[[분류:1903년 태어남]][[분류:197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조명기사]][[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조명기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광희초등학교 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