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김 루치아 (곱추)|로마 가톨릭 성인]]}} {{성인 정보 |이름 = 김 루치아 |출생일 = [[1818년]] |사망일 = [[1839년]] [[7월 20일]] |축일 = [[9월 20일]]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그림 = |크기 = |설명 = |출생지 = 서울 강촌http://newsaints.faithweb.com/martyrs/Korea1.htm |사망지 = 서울 서소문 |직업 = 순교자 |시복일 = [[1925년]] [[7월 5일]] |시복인 = [[교황 비오 11세]]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상징 = |수호 = |매장지 = |성당 = |기도 = }} '''김 루치아'''(金---, [[1818년]] ~ [[1839년]] [[7월 20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그녀의 이름은 '''김누시아'''(金累時阿)*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dic_view.asp?ctxtIdNum=4429 가톨릭 사전: 김누시아]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름 누시아는 그녀의 [[세례명]] '''루치아'''(Lucia)로 보인다. ==생애== 김 루치아는 용기와 품위 그리고 재주를 겸비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는 부모가 죽자, 그들의 장례비를 지불하기 위해 그녀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야 했다. 그녀는 한 [[천주교]] 집안에서 살게 되었고, [[동정 (성 문화)|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박해]]가 발발하자, 그녀는 세 명의 독실한 여성 교우들과 함께 [[자수]]하여 그들의 [[신앙]]을 [[증언]]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그들 중 가장 어렸지만 그 모임의 지도자였다. 그녀는 온갖 [[형벌]]과 [[고문]] 속에서도 평정을 일지 않았다. "너같이 고운 여자가 [[천주교]]를 믿을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천주교를 믿습니다." "너의 [[천주]]를 부정하면, 네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저의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아버지이십니다. 제가 어떻게 저의 [[왕|임금님]]이시자 아버지이신 분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수수번을 죽어도 그리할 수 없습니다." "너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 "저는 아직 스무살이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제 나이의 여자가 결혼을 안한 것은 이상할게 없습니다. 젊은 여자에게 그녀 자신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너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 "아닙니다. 저는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의 [[주님]]을 부정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네가 말하는 [[영혼]]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육신]]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신성하며 보이지 않습니다." "너는 [[하느님]]을 보았느냐?" "아닙니다. 보지 못했습니다. [[백성]]이 [[왕|임금님]]을 본 적 없다고 해서, 그분이 계시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까? 저는 땅 위의 피조물을 보았으므로, [[창조주]]께서서 계시는 것을 압니다." 포도대장은 긴 시간 동안 그녀에게 여러 종류의 [[고문]]을 가했으며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녀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당혹스러워 했다. 그녀의 침착함을 본 형리들은 그녀가 [[귀신]]에 씌였다고 생각했다. 김 루치아와 교우들은 그들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지고도 감옥에서 수 주 동안을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녀는 좋은 머리결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잘라서 팔았다. 그 돈으로 그녀는 약간의 음식을 사서 동료 죄수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녀는 한 친구에게 쓴 편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인용문2|나는 격심한 고문과 고통을 겪고 [[사형]] 판결을 받은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 나는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가 언제인지 몰라.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우리를 따라 [[천국]]으로 와. 우리는 주님께서 부르실 때를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1839년]] [[7월 20일]]에 [[서소문]] 밖에서 일곱 명의 교우들과 함께 [[참수]]되었다. 그녀의 [[천국]]의 [[배우자]]가 그녀를 천국으로 데려갔을 때, 그녀의 나이 22세 였다. == 시복 · 시성 == 김 루치아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뉴스 인용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url = http://www.pbc.co.kr/CMS/news/view_body.php?cid=520930&path=201407 | 출판사 = 평화방송 | 저자 = 이상도 | 날짜 = 2014-07-24 | 확인날짜 = 2014-10-12 }}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참고 문헌== * {{언어링크|en}} [http://english.cbck.or.kr/Saints103/251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103 Martryr Saints 김 루치아 Lucia Kim] == 각주 == {{각주}} [[분류:1818년 태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