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정보 |이름 = 김 로사 |출생일 = [[1784년]] |사망일 = [[1839년]] [[7월 20일]] |축일 = [[9월 20일]]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그림 = |크기 = |설명 = |출생지 = 서울 |사망지 = 서울 서소문 |직업 = 순교자 |시복일 = [[1925년]] [[7월 5일]] |시복인 = [[교황 비오 11세]]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상징 = |수호 = |매장지 = |성당 = |기도 = }} '''김 로사'''(金--, [[1784년]] ~ [[1839년]] [[7월 20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로사'''(Rosa)이다. 관찬기록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김노사'''(金老沙)로 나와 있는데, 노사는 그녀의 [[세례명]]인 로사로 보인다. [[1839년]] [[6월]], [[천주교]]를 병적으로 싫어하던 [[조병구]]가 [[조선]] [[조정 (정치)|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7월 5일]]에는 [[교회]]를 완전히 박멸하라는 [[칙명|교지]]가 내려졌다. 그 이후에 [[순교]]한 첫번째 인물들은 이미 수감되어 있던 여덟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그들 중 김 로사가 맨 먼저 체포되었다. == 생애 == 김 로사는 [[1784년]]에 [[한양]]의 한 비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결혼했지만,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 후에 그녀는 [[천주교]]를 믿는 한 친척집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그 때에 [[교회]]를 처음 접했다. 비록 늦은 나이였지만, 그녀는 행복한 마음으로 [[교리]]를 배우는데 열중했다. 그녀는 똑똑하고 언변이 출중하였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신앙]]의 가치에 대해 잘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모친과 오빠에게 신앙의 진리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속죄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협력하여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 수 있었다. 김 로사는 자신의 신앙에 따라 살며 자주 양심을 성찰했으며 죄를 뉘우치며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녀는 [[사제]]들에 대해 커다란 존경심을 갖고 있었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했다. 그녀는 교우들의 모범이 되었다. [[1838년]] [[1월 16일]] 한밤중에, 포졸들이 그녀의 집을 포위했지만, 그녀는 어떤 우려도 나타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며 행복해 했고, [[예수]]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에서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증언하며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옥졸들 마저도 그녀의 태도에 감동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정 (정치)|조정]]의 폭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가 [[형조]] [[판서]]와 처음 대면했을 때, 그는 그녀의 앞에 온갖 [[고문]] 도구를 늘어놓으며 말했다. "죄인 김노사는 들으라. 우리가 이 도구들을 사용하여 네 다리를 부러뜨리고 네 살가죽을 찢어내기 전에, 너의 [[천주]]를 버리고 천주교도들의 이름을 대라." "판서님! 저는 저의 [[천주]]를 버릴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의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미덕을 사랑하시며 죄를 벌하시는데, 제가 어찌 그분을 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 또한 죄입니다. 오래 전에 저는 그러한 진리를 위하여 저의 피를 뿌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죄인은 내 말을 듣거라. 네 종교의 교리는 어명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그 교회에 속하기를 고집하고 있지 않느냐?" "지금 제 [[육신]]은 [[하느님]]의 것이기에 앞서 [[국왕]]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당신의 [[전하 (호칭)|전하]]께서는 어찌 이 단순한 사실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판서는 격노하여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기 전까지 그녀를 극심하게 고문했다. [[1839년]] [[7월 20일]]에 그녀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56세 였다. == 시복 · 시성 == 김 로사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뉴스 인용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url = http://www.pbc.co.kr/CMS/news/view_body.php?cid=520930&path=201407 | 출판사 = 평화방송 | 저자 = 이상도 | 날짜 = 2014-07-24 | 확인날짜 = 2014-10-12 }}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참고 문헌 == * {{언어링크|en}} [http://english.cbck.or.kr/Saints103/239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103 Martryr Saints: 김로사 Rosa Kim] == 각주 == {{각주}} [[분류:1784년 태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