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법조인/목록]] 權五柄 1918년 ~ 1975년 5월 7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관료, [[정치인]]이다. 1918년 [[경상남도]] 마산부(현 [[창원시|마산합포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 및 동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8.15 광복]] 후 [[미군정기]], [[이승만]] 정부 때 법조인으로서 1960년까지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하였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63년 [[변호사]] 개업을 하였으나, 곧바로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에 의해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차관]]에 임명되어 1965년까지 부임하였다. 1965년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문교부 장관 재직 중이던 1965년 11월에는 당시 야당이던 [[민중당(1965년)|민중당]]으로부터 여야 만장일치로 건의된 [[6.3 항쟁]] 관련 구속학생 석방 및 해임교수 복직안을 묵살하였다는 이유로 해임건의안이 제출되었으나 여당인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법무부 장관|장관]]으로 재임하였다. 1968년 다시 문교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국민교육헌장]] 제정, [[중학교]] [[입시]]제도 폐지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던 중 1969년 4월 8일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의해 [[대한민국 국회]]내 폭언 및 문교행정상의 문제를 이유로 해임건의안이 제축되었다. 민주공화당의 당명은 부결이었으나 [[예춘호]], [[양순직]], [[박종태]], [[김달수]], [[정태성]] 등 친 김종필계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이 당명을 어기고 동조하여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해임되었다. 1970년 다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분류:마산합포구 출신 인물]][[분류: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