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필요|날짜=2012-1-30}} '''권대운'''(權大運, [[1612년]] [[서울특별시]] ~ [[1699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인이다. 남인 중진 문신으로 [[허적]]과 함께 탁남의 지도자였다. 예조판서를 지낸 [[권협]]의 손자로, 본관은 [[안동 권씨|안동]](安東)이다. == 생애 == 1642년, [[진사]]가 되고 1649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이 되었다. 이후 [[지평]], [[헌납]], [[장령]], [[감찰]], [[이조정랑]], [[응교]], [[사간]] 등의 청요직을 거쳐 [[승지]]가 되었다. 이후 [[형조참의]], [[병조참의]], [[예조참의]]와 [[좌승지]]를 거쳐 [[한성부우윤]], [[형조참판]], [[개성유수]] 등을 거쳐 1666년, [[평안도 관찰사]]가 되고 이어 [[대사간]], [[함경도 관찰사]]까지 되었다. 1670년, [[호조판서]]로 발탁되고 그 뒤 [[형조판서]], [[도승지]]를 거쳐 [[우참찬]]이 되고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을 겸임하고 1674년 [[제2차 예송 논쟁]]으로 [[갑인환국]]이 단행되자 중앙으로 복귀하였다. 숙종이 즉위하자 [[예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송시열]]을 처형할 것을 주장한 [[허목]], [[윤휴]]에 반대하여 [[허적]]과 함께 탁남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어 [[우의정]]으로 승진했다가 [[1680년]](숙종 6년) [[조선의 공신|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그해 [[좌의정]]으로 승진했으나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되고 다시 [[판중추부사]] 좌천에 이어 영일에 [[위리안치]]되고, 1689년 남인이 집권하자 마자 다시 복귀하여 [[영중추부사]]를 거쳐 1690년, [[영의정]]이 되었다. 그리고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에 들어갔으나 1694년, [[갑술환국]]으로 파직되었다. 그리고 다시 절도에 안치되었다가 귀향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1697년]] 복권되었다가 [[1701년]] [[무고의 옥]]으로 관작을 추탈당했다. [[1795년]] [[10월]] [[남인]] 인사들이 복권될 때 복관되었다. == 가족 관계 == * 증조부 : 권상(權常) ** 할아버지 : 권협(權悏) *** 아버지 : 권근중(權謹中) *** 어머니 : 이유혼의 딸 **** 부인 : 우정의 딸 ***** 장남 : 권위(權瑋) ***** 자부 : 이덕주의 딸 ****** 손자 : 권중경(權重經) ***** 차남 : 권규(權珪) == 관련 항목 == * [[예송]] * [[허적]] * [[허목]] * [[삼복의 변]] * [[윤휴]] * [[윤선도]] * [[목내선]] * [[청남]] * [[탁남]] == 권대운이 등장하는 작품 == * 《[[장희빈 (1995년 드라마)|장희빈]]》(1995, SBS, 배역: [[이정웅]]) [[분류:1612년 태어남]][[분류:1699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윤휴]][[분류:허목]][[분류:영의정]][[분류:예송 논쟁 관련자]][[분류:안동 권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