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정보
|이름 = 고복수
|원어이름 = 高福壽
|출생일 = {{출생일|1911|12|29}}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 [[울산광역시|경상남도 울산군]]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72|2|10|1911|12|29}}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장르 = [[트로트]]
|활동시기 = [[1932년]] ~ [[1958년]]
|관련활동 =
|웹사이트 =
|직업 = [[가수]], [[영화 제작자]]
|종교 = [[천주교]](세례명 : 요셉)
|배우자 = 황금심
|가족 = 아버지 고상덕(별세), 어머니 조부돌(별세)
자녀는 슬하 3남 3녀
첫째아들 고영준(가수)
둘째아들 고영민(가수)
둘째며느리 손현희(가수)
셋째아들 고병준(작곡가)
}}
{| class="infobox bordered" style="width:21em; cellpadding=2; font-size:85%; text-align:center;"
! colspan="2" style="background:khaki" | 대표곡
|-
| style="width:80%;" | 〈'''타향'''〉
| style="width:20%;" | [[1934년]]
|-
| 〈'''휘파람'''〉
| [[1934년]]
|-
| 〈'''사막의 한'''〉
| [[1935년]]
|-
| 〈'''짝사랑'''〉
| [[1936년]]
|-
| 〈'''풍년송'''〉
| [[1937년]]
|}
'''고복수'''(髙福壽, [[1911년]][1912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뉴스 인용
|저자=이동순
|제목=[이동순의 가요이야기 .9] 식민지 백성의 설움 노래한 가수, 고복수
|url=http://www.yeongnam.com/yeongnam/html/yeongnamdaily/culture/article.shtml?id=20070628.010190741410001
|출판사=영남일보
|날짜=2007-06-28
|확인날짜=2008-07-12
}}] [[12월 29일]] ~ [[1972년]] [[2월 10일]])는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가수]], [[영화]] [[투자가|기획가]], [[영화]][[영화 프로듀서|제작자]]이다.
== 생애 ==
[[경상남도]] [[울산광역시|울산시]] 출신으로 어릴 때 그의 집은 [[국수]] 공장을 했었다. 유년시절에도 [[축음기]]에 매달려 노래만을 부르면서 꿈많은 어린시절을 보냈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콜럼비아레코드]]가 주최한 콩쿠르 부산대회에 입상하고 [[경성부]]에서 열린 본선에 진출해 3위를 차지한 것이 가수로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34년]]에 〈타향〉과 〈이원애곡〉을 발표하여 음반은 [[오케레코드]]에서 발매했다. 후에 〈타향살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게 된 〈타향〉은 일제 강점기 최고의 대중가요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크게 유행했다.
이후 [[1936년]] 말에 발표한 "아 으악새 슬피우는 가을인가요"라는 가사의 〈짝사랑〉이 또다시 히트하고 이은파와의 듀엣곡인 신민요 〈풍년송〉 등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다. 오케레코드와 전속 공연단인 조선악극단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부터 [[빅타레코드]]의 반도악극좌로 이동하였다. 여기에서 〈알뜰한 당신〉의 인기 가수 황금심과 만나 [[1941년]]에 결혼하였다.
고복수는 채규엽, 강홍식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초기의 가수로 분류되며,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다. 한숨을 쉬는 듯한 분위기의 가창은 〈타향〉, 〈사막의 한〉, 〈짝사랑〉 등 한탄조의 가사로 이루어진 그의 인기곡에 잘 어울렸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에 남인수와 백년설이 등장한 이래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1940년대]]부터는 무대 공연 위주로 활동을 전환하게 되었다.
인기 가수였지만 인생에 굴곡이 많았기에 불운의 가수로도 기억된다. [[한국 전쟁]] 때는 [[조선인민군]]에게 체포되었다가 탈출하는 일을 겪었고, [[1957년]] 은퇴 공연 이래 손대는 사업마다 계속 실패하여 어려운 생활을 했다. 아내 황금심이 영화 주제곡을 부르며 생계를 연명하는 사이 고복수는 서적 외판원으로 일해야 했다.
이후 투병을 하다가 [[뇌신경 고혈압]]과 식도염으로 1972년 사망했다. 향년 62세.
황금심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 가운데 맏아들이 트로트 가수 둘째 아들이 가톨릭 복음가수 셋째 아들이 작곡가 고병준이며, 둘째 며느리는 [[대학가요제]] 출신의 가수 손현희이다. [[동화예술학원]]을 경영할 때 배출한 제자로는 이미자와 안정애가 있다.
== 소속 ==
* 前 [[서울특별시|서울]] [[동화예술학원]] 원장
== 학력 ==
* [[울산광역시|경상남도 울산]] 일신보통학교 수료
* [[울산광역시|경상남도 울산]] 내선보통학교 졸업
* [[개성고등학교|경상남도 부산제2공립상업학교]] 졸업
== 같이 보기 ==
* 황금심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저자=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제목=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날짜=2006-12-15
|출판사=소도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90626264}}
|페이지=22~23쪽}}
== 각주 ==
[[분류:1911년 태어남]][[분류:1972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193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분류:투자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울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부산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개신교도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제주 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