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희'''(姜昌熙, [[1894년]] [[12월 6일]] ~ [[1976년]])는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기업가]]이다. == 생애 == [[한성부]]에서 [[대한제국]] 무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운수주식회사 전무취체역을 거쳐 조선운송주식회사의 취체역을 맡는 등 운수업 부문에서 종사했다. [[조선총독부]] 운수국 운수위원과 [[조선철도협회]] 평의원 등을 지냈다. 서울 지역 유지로 대우받으며 경성부회 의원을 역임했고, 그 밖의 직책도 다수 맡았다. 계동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 서부교화구 상임위원, 경성국방의회 평의원, 경성부 수도조사위원, 경성부 재원조사위원 등이다. [[태평양 전쟁]] 중에는 학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한 사실이 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서 요직을 맡아 [[우익]] 운동에 참여했다. 독촉국민회 서울시 지부장과 서울시동연합회 회장, 한민족대표외교후원회 서대문구지부 위원장, 서대문구동회연합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1950년]]을 기준으로 독촉국민회에서는 중앙상임위원, 서대문구 지부위원장, 청년단 서대문구단장을 겸직 중이었으며, 그밖에 한국민족대표자대회 대의원, [[비상국민회의]] 대의원, 총선거대책 상임위원, 총선거대책 서대문구지부 위원장도 맡고 있었다. 이후[[1976년]]에 사망하였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경제 부문과 지역유력자 부문에 포함되었다. == 같이 보기 ==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참고 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1_00281|강창희|姜昌熙}} [[분류:1894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당]][[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