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쌤'을 자처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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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민들레] 남학교에서 펼치는 남교사의 젠더 교육

 [최승범 강릉 명륜고등학교 교사]

 왜냐고 묻는다

"왜요?" 학생들은 자주 묻는다. "왜 하복 안에는 흰색 티만 입어야 돼요?" "왜 맨날 3학년이 먼저 밥 먹어요?" "왜 학교에 오토바이 타고 오면 안 돼요?" "전 대학 안 갈 건데 모의고사 볼 때 그냥 자면 안 돼요? 왜 안 돼요?"

"왜 그럴까요?" 나도 자주 묻는다. "강릉여고는 있는데 왜 강릉남고는 없을까요?" "'신랑신부' '형제자매'처럼 평소에는 남자를 앞세우면서 왜 욕할 때는 '연놈'이라고 할까요?" "김소월의 시는 여성적이고, 이육사의 시는 남성적이래요. 이 표현 어때요?"

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메갈쌤'으로 불린다. 학급문고에 페미니즘 책을 가져다 놓고, 수업시간에 성차별, 성평등 이야기를 자주 하며,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10대 남학생의 사고체계에서 페미니즘은 곧 메갈(메갈리아)이며, 메갈은 남자를 공격하고 혐오하는 나쁜 여자들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 있는 선생님이, 그것도 남자 선생님이 메갈이라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황당할 법하다.

10대 남학생들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옛날에는 약자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남자가 더 차별받는 역차별의 시대라 생각한다. 이들이 걸어왔을 삶의 궤적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공부도 여학생이 잘하고 아르바이트도 여학생이 잘 구한다. 선생님들도 여학생을 더 예뻐한다. 자기네는 군대도 가야 하는데, 여학생들은 안 간다. 심지어 데이트 비용도 남자가 더 많이 내야 할 것 같은데, 여자가 사회적 약자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또래 여학생들과 떨어져 지내니, 숭배와 멸시가 동시에 발생한다. 예쁜 여자 개인을 갈망하지만 '남자 등쳐먹는' 여성 전반에게는 혐오가 따라붙는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남자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운 건 남자이지만, 욕은 여자에게 한다. 홀수 번호에게만 청소를 떠맡긴 담임에게 항의하는 대신 청소에서 면제된 짝수 번호를 공격하는 모양새다.

사실 남성에게 데이트 비용 부담을 지운 건 남성이다. 가부장제와 남성연대(Homo-social)는 남자라면 모름지기 제 몫의 처자식을 가져야 하며, 그들을 부양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남자답게' '남자가 쪼잔하게' '남자가 우냐?'와 같은 말로 남성성을 자극하고, 남성성의 스펙트럼을 좁히는 쪽도 대개 남자다. 남자들은 '돈 안 쓰는 남자'로 인식되는데 두려움이 있지만, 여자들에겐 여자로 사는 것 자체가 공포다. '돈 쓰면 된장녀, 안 쓰면 김치녀'이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남성의 삶에 관한 기초연구Ⅱ'에 따르면, 응답자 중 남성의 54.2%가 '김치녀, 된장녀, 김 여사' 등의 여성혐오 표현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특히 남자 청소년은 66.7%가 이에 공감한다고 밝혀 전체 여성 응답자의 24.1%보다 세 배가량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어렸을 때부터 당해왔던 성차별, 일상생활에서 겪는 성폭력의 공포감 등은 또래 여성에게서 듣지 않는 한 접할 기회가 없다. 인권 감수성의 촉수가 예민한 몇몇 학생들에게만 다가갈 뿐이다. 대상화, 타자화를 하지 않으려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 섞이고 엮이는 환경이 마련돼야 앎의 현장을 삶의 현장으로 확장할 수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중등교육에서 모든 단성학교가 혼성학교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본다.

▲ 평소에도 '페미니즘'이라는 글씨가 써 있는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사진 왼쪽 빨간색 티셔츠) ⓒ최승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남학생들 사이에는 거칠고 상스럽게 말할수록 멋있고 쿨(cool)한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가 있다. 욕설의 대상은 때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하기도 한다. 이 경우 여성이 비하의 주된 대상이 된다. 나도 고등학생 때는 마초 문화에 젖어 경쟁적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하했던 전력이 있다. 운 좋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20대를 통과한 덕에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할 수 있었다. 소속 학과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 교수가 파면당하고, 여성주의학회에서 열렬히 활동하는 남자 후배를 만나거나, 중학생 때부터 페미니즘 영화평론가의 팬이었던 후배와 친해지는 것은 보편적 사례가 아니다. '나처럼 특수한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도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 좋을 텐데…'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교직에 선 후,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작년부터는 남학생들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아래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학급문고에 페미니즘 도서 비치하기

교실의 학급문고 한 칸을 페미니즘 책으로 채웠다. 가장 인기 있는 책은 은하선 작가의 <이기적 섹스>(동녘 펴냄)다. 학생들끼리 서로 순번을 정해 학급문고 한 칸을 페미니즘 책으로 채웠다. 돌려 보느라 책장에 꽂힐 날이 없다. 10대의 목소리가 직접 담긴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변혜정 엮음,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동녘 펴냄),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우리가 성에 관해 알고 싶은 것>(김성애 지음, 또하나의문화 펴냄)도 많이 읽는다. 프랑스 만화가 토마 마티외의 <악어 프로젝트>(맹슬기 옮김, 권김현영·이렌 자이링거·안-샤를로트 위송·길거리 성폭력 중단 단체·로랑 플륌 해제, 푸른지식 펴냄)도 절찬리에 대여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희롱, 성폭력과 그에 따른 불쾌감, 공포감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학급에서 여성신문 구독하기

<여성신문>을 교실에 비치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에 배송되는데, 관점이 신선하고 독특해 생각보다 열독률이 높다. 교실에 <한겨레>와 <매일경제>까지 세 종의 신문이 들어오는데, 동일한 사안을 두고 매체마다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내년도 최저임금 발표 때의 헤드라인이 특히 흥미로웠다. <한겨레>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환영하는 논조를, <매일경제>는 기업의 입장에서 우려하는 논조를 보인 반면, <여성신문>은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200만 개 이상의 일자리 중 대부분을 여성이 담당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이유와 해결책에 대해 유의미한 대화가 오가는 것을 목격했다.

성평등 관점에서 수업하기

한 학기에 한두 시간 정도 교과서에서 소재를 찾아 성평등 수업을 진행한다. 별도의 텍스트를 마련하거나 수업 자료를 제작하면 교사도 힘이 들고 학생들도 부담을 느낀다. 작년에는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 생원의 과거 회상 장면을 성폭력으로 볼 수 있는지, <춘향전>의 변 사또를 어떤 죄목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수업을 했다. 올해는 <사씨남정기>에서 가부장제가 사 씨와 교 씨의 삶에 미친 영향을 적어보는 글쓰기 수업을 했다. 2학기 '독서와 문법'에서는 여성, 청소년, 노인,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를 혐오하는 표현을 찾는 수업을 해볼 계획이다.

페미니즘 티셔츠 입고 다니기

낯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는 '페미니즘' 네 글자를 입에 올리는 것이 어렵다.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쉬는 공간인 카페에서조차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정도다.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터부시(금기시) 될수록, 공공연한 발화가 어려울수록 '비가시화된 존재들의 가시화'는 요원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이 페미니즘을 드러내고자 체육대회, 소풍, 현장체험학습 등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페미니즘'이라는 글씨가 적힌 옷을 입고 있다. 배지, 핀 버튼, 스티커, 에코백 등을 지근거리에 두기도 한다. 나를 잘 모르는 학생들이 '남자 선생님이 왜 저런 옷을 입지?' '저 선생님은 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지?' '페미니즘이 대체 뭐길래 저러지?'라는 의문을 가져봤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 학급문고 한 칸을 페미니즘 책으로 채웠다. ⓒ최승범

이런 것들을 시도한다 해서 학생들의 생각이 금방 바뀌진 않는다. 유의미한 변화 가능성이 보이는 건 한 반에 많아야 두세 명 정도다. 대개는 "에이, 안 그래요" "선생님이 잘 모르시는 거예요" 같은 반응을 보인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다. 유튜브를 비롯한 수많은 인터넷 매체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가 학생들의 의식을 점령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표한 수치나 순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근거를 보조하곤 한다. 15년째 OECD 성별 임금 격차 1위, 세계경제포럼이 집계한 성 격차 지수에서 144개국 중 116위 같은 성적표를 보여준다. 결혼-출산-육아를 거치며 직장을 잃은 친구들의 이야기, 고등학교 시절 늦은 밤 귀갓길을 무서워했던 아내의 이야기,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시가의 압력에 셋째를 가졌는데 또 딸이라 임신중절 수술을 했던 친척의 이야기 등 남자로 살면서 겪기 힘든 경험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면 호기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조금 더 늘어난다.

학생들과 각을 세워 논쟁을 하려 들거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훈계를 하거나, 권위를 발휘해 특정 입장을 비호하거나 비판한다면 강한 거부감이 형성될 것이다. 교조적으로 다가가는 순간 눈과 귀와 마음을 모두 닫아 안 한 것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토론이 벌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남중생-남고생 또래 문화를 감안했을 때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마초적인 주장이나 견해를 접했을 때 '어, 이거 우리 쌤은 다르게 말했는데?' 하고 한 번 멈칫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본다.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기존의 생각에 작은 균열을 내는 것. 나는 여기까지가 교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학생들도 있다. 지난 학기에 페미니즘 책을 읽고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에 독서감상문을 올린 학생이 2학년에 여섯 명이나 있었다. 학급문고의 책을 읽고 쓴 우리 반 학생이 셋,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으로 쓴 다른 반 학생이 셋이었다. 책을 읽은 후 자신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내용이 꽤 많았다. 남자인 내게 페미니즘은 비(非) 당사자 운동이다. 경험의 한계가 있으며, 절박함도 덜하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이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데 이견이 없으며, 페미니즘을 말하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여성보다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맨스플레인1)을 하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여자들이 싸울 테니 남자들은 빠져라'와 같은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흑인 인권을 위해 싸운 백인이 있고,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시스젠더2)-헤테로3)도 많다. 생물학적-사회적 여성 중에서도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명예 남성'이 적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지향이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라서 겪는 한계도 있지만, 한 발짝 옆에 서 있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역할도 있다. 남학교에서 근무하는 남교사가 특히 그렇다. 여자 선생님이 남학생에게 '김치녀'라는 말을 제지하려다가 "쌤이 아니면 그만이지 왜 그러세요? 혹시 쌤도 김치녀?"라는 반응에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메커니즘에서는 여성혐오 표현을 남발하는 남학생들에게 잘못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는데 남자 선생님의 말이 더 효과적이다. 다른 남교사의 불편한 발언을 제지하는 것도 내가 남교사이기에 더 수월하다.

더 많이 가진 쪽이 더 불편해지는 세상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였다. 모든 청첩장에서 신랑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게 이상했다. 우리 부부는 가나다순에 맞게 신부 이름을 앞에 두었다. 결혼식 날에는 신부 대기실을 없애고 식장 입구에 나란히 서서 함께 하객들을 맞이했다. 결혼식 과정을 지켜본 학생들이 나중에 말하길,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르게 보게 돼서 좋았다고 했다. 우리 짝꿍은 내 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존대한다. 나도 짝꿍의 여동생을 '처제님'이라고 부르며 말을 높인다. 처가 식구들은 처제를 편하게 대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짝꿍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도련님, 아가씨'와 '처남, 처제'는 간극이 너무 크다. 전자는 신분사회에서 하인이 주인댁 자제를 부르던 용어다. 며느리가 종이 아니라면, 시댁 식구에게 쓰는 호칭도 달라져야 한다.

친가에 가서 밥을 먹으면 우리 어머니가 음식을 차리고 짝꿍이 설거지를 한다. 처가에 가서 밥을 먹으면, 할머님께서 음식을 차리시고 내가 설거지를 한다. 친가 식구 누구도 설거지하는 짝꿍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처가 식구들은 내가 설거지를 할 때마다 큰일이 난 듯 안절부절못하신다. 며느리를 딸처럼, 사위를 아들처럼 여기겠다는 말은 예식장 밖에서도 유효해야 한다. 우리 식구가 먹은 밥그릇, 내 아들이 씻는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다.

페미니즘 교육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의 고정관념, 편견, 혐오 발언, 차별 기제 등을 곱씹고 생각해볼 자리를 만들어보려 애쓰고 있다. 우리 반은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선택권을 갖는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우선권을 갖는다는 당연한 명제에 의문을 던져보고 싶어서 제안한 방식이다.

세상이 바뀌려면 더 많이 가진 쪽이 더 불편해져야 한다. 성별 권력 구도에서는 여전히 기득권을 가진 쪽은 남성이다.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쥐고 있는 것들을 좀 더 내려놓아야 한다. 관성이 쌓인 어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10대는 성인에 비해 공감 능력이 탁월하고, 편견이 적으며, 정의감이 강하다. 변화 가능성이 큰 만큼 개선의 여지가 많다. 교사가 새로운 시각, 다른 목소리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학생 스스로 깨쳐 길을 터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와 함께 공부하는 남학생들이 깨어 있는 남성, 따뜻하고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어디 가서 '꼰대'나 '개저씨' 소리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메갈쌤으로 불려도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주

1) 남성(man)과 설명하다(explain)가 합성된 신조어.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척하며 설명하는 것을 뜻함

2) 출생 시의 생물학적 성(性)과 본인 스스로 인식하는 성(性)이 일치하는 사람

3) 사회적으로 본인과 다른 성별을 지닌 사람에게 감정적,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

최승범 강릉 명륜고등학교 교사 (sonofegal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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