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왜 나왔나?…진드기 박멸하려다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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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8.15. 오후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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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에는 '열악한 닭 사육환경'으로 인한 병해충의 증가


[CBS노컷뉴스 박상용 기자]

국산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것과 관련해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이 15일부터 계란 판매 중단에 들어갔다. 이날 서울 한 대형마트 계란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유럽에 이어 국내산 계란에서도 초독성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검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국내 일부 산란 닭 사육농가들이 진드기(일본명, 와구모) 박멸을 위해 갈수록 맹독성 살충제를 사용하면서 결국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국내 산란 닭 사육환경이 열악해 각종 병해충이 늘어나면서 항생제와 살충제 사용이 급증하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는 위험성을 알면서도 살충제 성분의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 열악한 산란계 사육환경…닭 진드기 서식 최적화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산란 닭 사육농장은 모두 1100여개로, 이들 농장의 99%가 케이지(철제 우리) 사육방식으로 닭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닭 1마리 당 케이지 면적은 0.05㎡(가로 20cm, 세로 25cm)로 A4용지 한장 크기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산란 닭은 날개조차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여기에 국내 산란 닭 사육시설 자체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란 닭 축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천장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개방계사와 창문이 없는 밀폐된 무창계사가 있다.

무창계사는 자동 환기시스템과 온도조절 장치를 갖춘 첨단 시설로써 케이지도 고가의 수입품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무창계사는 환경조건이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오히려 해충 발생이 급격하는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동물복지 방식으로 닭을 키우는 전기현(50세)씨는 "닭은 원래 흙 목욕을 통해 진드기를 제거해야 하는데 철제 케이지에 갇혀있다 보니 고스란히 진드기에 물릴 수 밖에 없다"며 "닭들이 진드기 때문에 밤새 잠을 못자고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상황에서 독한 살충제까지 뿌리니 닭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며 "결국 무창계사에서 케이지 사육방식은 계란의 품질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최악의 구조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 닭 진드기 내성 생기면서 독성 강한 약제 사용



이처럼 국내 산란 닭 사육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이상 고온현상이 지속되면서 닭 진드기 발생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렇다 보니, 농가들은 살충제 저항력이 높아진 닭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강도가 센 살충제 성분을 사용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에 남양주시 산란계 농장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의 경우도 워낙 독성이 강해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 대해서만 사용하고 닭에 대해서는 사용할 수 없는 살충제 성분이다.

또한, 진드기 살충제는 보통 2개월에 한 번씩 살포하지만 살충제에 대해 내성이 생기면서, 살충제 살포 주기도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씨는 "정부가 저농도의 살충제를 그것도 빈 축사에 뿌리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저농도 살충제를 사용하면 진드기가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갈수록 맹독성 약품을 자주 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정부, 산란계 살충제 사용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해



하지만 정부는 이처럼 갈수록 독해지고 있는 살충제 성분에 대한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프로닐 성분은 코덱스(국제식품규격) 기준치가 0.020mg/kg으로 규정돼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자체 기준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계란에 대한 잔류농약검사를 하면서 피프로닐 성분에 대해서는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최근 유럽 계란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되면서 이번에 뒤늦게 검사를 통해 적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또 다른 살충제 성분인 트리클로폰의 경우도 닭에 대해서는 기준치가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의 기준 및 규칙'을 통해, 트리클로폰의 축산물 잔류량 기준을 소고기와 우유는 1kg당 0.05mg, 돼지고기와 양고기는 0.1mg까지 허용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와 전국 시.도 가축위생연구소는 이런 기준을 바탕으로 평균 2년에 한 번씩 이들 축산물에 대해 트리클로폰 잔류량 검사를 실시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연간 1인당 육류소비량 51.3kg 가운데는 돼지고기(24.3kg)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닭고기(15.4kg)는 아예 트리클로폰 잔류검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렇다 보니, 일부 산란계 사육농가들이 진드기 제거를 위해 살충제를 살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트리클로폰 잔류량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기현 씨는 "닭 진드기 살충제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다른 제품을 섞어서 독성이 강하게 만들어 사용한다"며 "정부가 살충제 사용 기준부터 만들어서 잔류물질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aypar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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