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안 만졌어요" 성추행 누명 벗은 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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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7.29. 오후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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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구조공단 "서민들이 법률구조 잘 활용하면 '무전무죄' 얼마든지 가능"
택시기사 A씨는 지난 2015년 억울한 일을 겪었다. 그는 새벽 2시쯤 술에 취한 여성 B씨를 조수석에 태웠는데 나중에 B씨가 “잠든 틈을 이용해 내 신체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며 A씨를 고소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구속된 A씨는 재판에 넘겨지는 신세가 됐다.

법정에서 A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10월 실형을 선고했다.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A씨는 경제적 사정이 넉넉치 못해 변호인을 선임하는 대신 대한법률구조공단 울산지부의 문을 두드렸다.

사실 성범죄는 ‘몹쓸 짓’이라는 따가운 시선 탓에 피고인이 공단 법률구조를 받기가 어렵다. 하지만 공단 소속 변호사가 A씨 수사기록과 1심 판결문을 살펴보니 문제가 많았다. A씨의 범행을 인정할 만한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B씨 진술만을 근거로 실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A씨는 아내도 없이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데 만약 법원에서 성범죄 전과가 확정되면 택시기사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기로 결심한 공단 변호사는 B씨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새벽 2시쯤 B씨가 언니와 통화를 한 점, 택시 안에서 빨간 립스틱을 꺼내 화장을 한 점 등을 근거로 “B씨가 택시 안에서 잠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가 택시의 블랙박스 영상을 일부러 삭제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변호인은 ‘수사기관에서 동영상을 백업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없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2심 재판부는 1심을 깨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변론을 담당한 공단 변호사는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는 것도 국가의 중요한 책무이나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지 않는 것 또한 국가의 중요한 책임”이라며 “무분별한 고소 행태에 경종을 울리면서 억울한 피의자, 피고인을 양산하는 것을 막아낸 의미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수중에 돈이 없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길이 막막하다면 법률구조공단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29일 공단에 따르면 기준중위소득 125% 이하의 국민이면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다. 대상 사건도 구속사건, 구속됐다가 적부심 등으로 풀려난 사건, 가정·소년·인신 등 각종 보호사건, 재심사건 및 성폭력·아동학대 등으로 다양하다.

다만 국가존립에 관한 사건, 조직폭력 관련 범죄, 테러범죄, 마약밀수처럼 공안을 해치는 사건, 존속폭행처럼 인륜에 반하는 사건 등은 구조 타당성이 없어 구조 요청이 기각될 수 있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공단은 현재 국선전담 변호사 17명을 포함해 250여명의 변호사와 공익법무관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30년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친절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며 억울한 피고인 등의 권리구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단이 형사법률구조를 시작한 1996년부터 올 6월까지 총 32만3000건 이상의 법률구조 실적을 달성했다. 최근 5년간 공판 절차에 회부되어 종결된 사건 5만9959건 중 무죄와 공소기각 등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종결된 사건은 2714건으로 무려 4.5%에 달한다.

공단 본부 구조정책부장을 맡고 있는 강병훈 변호사는 “형사사건의 절실함은 여타 민사사건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단이 체불임금을 비롯한 민사·가사사건만 지원하고 형사사건은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부의 오해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송지원을 할 수 있는 형사사건들은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으니 전문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억울하게 처리되는 경우가 없도록 많은 국민이 활용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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