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은 폭동..유관순은 선동꾼" 도 넘은 가짜역사

유준호 2017. 2. 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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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김성태 의원실]
"전국적인 무정부상태를 틈타 온갖 깡패와 흉악범 도둑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약탈과 살인을 자행한 폭동이었다."

지난달 27일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박민수 씨(38)는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보고있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3·1폭동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3·1운동을 불법 폭력 시위로 규정하고 민족 분단의 원인이 된 광복절 역시 '통곡의 날'로 바꾸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이 실렸다.

해당 정보에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구체적인 사망자 통계와 당시 3·1운동을 소개하는 중국 발 기사까지 담겼다. 박 씨는 진짜 3·1 운동의 정신과 의미를 설명했지만 이미 친구가 건네준 사회관계망(SNS) 정보가 '진짜'라고 믿는 아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매년 3·1절과 광복절 등 항일 운동 관련 기념일 마다 역사 왜곡·비하 정보가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어지러운 시국 분위기와 함께 여론을 호도하려는 '가짜 정보' '가짜 뉴스'가 판을 치면서 이 같은 행태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27일 촛불 집회 참가를 위해 100여명이 모인 오픈 카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도 '조선 괴뢰국 현상수배범'이라는 제목의 합성 사진이 올라왔다. 안중근 유관순 안창호 윤동주 등 독립운동가 24명의 사진을 내걸고 '죄질'이라는 항목으로 모욕했다. 독립 운동가들 사진에 일제히 빨간색으로 'X'자를 그었다. 또 안중근 의사에게는 '천황 폐하의 나라에 이빨을 들이댄 금수',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는 '3·1 운동을 전국적으로 퍼뜨린 악질 선동꾼', 윤동주 시인에게는 '운동권 출신의 인터넷 소설 작가'라는 험악한 설명을 붙였다.

매일경제 취재 결과 이 합성 사진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14년.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삭제가 되지 않으면서 온라인상에서 불특정다수에게 여전히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양쪽으로 갈라진 민심의 현장에서 해당 게시물은 '어그로(남의 관심을 재미삼아 끌고다니는 행위)꾼'들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해당 카톡방에 있던 A씨는 "저렇게 어그로를 끄는 사람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며 "굳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3·1운동까지 폭동으로 깎아내리면서 시국 집회를 비아냥거리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항일 운동 의사와 열사를 모욕하는 인터넷 행위도 문제지만, 엉뚱하게 누리꾼들에게 '친일파'로 몰리는 사례도 더러 확인됐다. 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 이후 기각결정을 내렸던 조의연(51·사법연수원 24기)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친일파'가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그러나 조판사가 친일쪽과 연계된 정황은 어디에도 '팩트'로 확인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유명인이면 무조건 '친일파' 의혹부터 제기하는 형국이다. 최근엔 인기 아이돌 EXO의 수호(본명 김준면)와 아버지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가 친일파로 몰렸지만 결국 루머로 밝혀졌다. 방송인 겸 외식사업가 백종원 씨(51)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악성 루머를 퍼뜨린 한 40대 남성은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매일경제가 국회 김성태 의원실(자유한국당·비례)에서 단독 입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역사왜곡 및 비하정보에 대한 단속 실태'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차별·비하 정보 심의 대상에 오른 인터넷 정보는 지난 2012년 329건에서 지난해 3022건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방심위가 시정요구한 건수도 같은 기간 149건에서 2455건으로 15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이들 심의 건수에는 역사왜곡 정보가 포함돼 있지만 구체적인 항목은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나 "방심위 관계자는 "3·1절과 광복절을 전후해 역사 왜곡 정보를 대거 올리는 경향이 있다"며 "직접적인 명예훼손와 상관없는 단순 역사 왜곡은 처벌 근거가 없어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완 경희대학교 로스쿨 교수(사이버범죄연구회장)는 "스스로를 알리고 싶은 본능이 '과열 경쟁'으로 이어져 허위 과장을 올리는 행위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온라인 가짜 뉴스·가짜 정보가 판을 치는데 마땅한 단속 장치가 없어 사회신뢰 자본을 깎아 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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