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파리서 김정남과 마지막 인터뷰, 장성택 얘기 꺼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5일 01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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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선생님이시죠? 동아일보 기자입니다.”

2014년 9월 29일 오전 8시 반,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근처에 있는 르메르디앙 에투알 호텔 로비. 당일 오전 4시 반부터 4시간 동안 호텔 식당 앞에서 소위 말하는 ‘뻗치기’(현장 지키기)를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을 때 동행했던 여성은 시선을 피하며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김정남(당시 43세·사진)은 달랐다.

“여기(호텔)에 한국 사람들이 좀 보여서 누군가가 미디어(언론)에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결국 왔군요.”

당시 그는 북한 사정을 묻는 기자에게 “잘 모르고, 솔직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국가 운영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한동안 말없이 기자를 바라보다 “약속할 순 없지만 생각을 정리해 마음이 내키면 (기자 명함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국내외 언론사 기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기록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고(故) 김정남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정남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는 표정과 말투였다.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졌다. 자리를 피하려는 김정남에게 건강을 묻자 “아직 쓸만해 보이지 않냐”며 웃으면서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거주지, 망명 계획, 파리 방문 이유에 대해선 “프라이버시라 절대 말 못한다”고 답했다. 같이 온 여성에 대해서도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하여튼 같이 온 사람이고, 프라이버시니 더 묻지 말라”고 말했다.

비교적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김정남은 북한에서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2013년 12월 숙청됨) 이야기를 꺼내자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고개를 돌리면서 푹 숙였고, 아랫입술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할말 없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시죠.”

기자는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김정남은 “절대 안 된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기자는 김정남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뒷모습을 몰래 촬영했다. 또 식당에 들어가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찍으려 했다. 당시 기자의 모습을 본 김정남은 빠르게 얼굴을 돌리며 손으로 가렸다. 그리고 기자에게 뛰어와 “지금 뭐 하는 거야?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고 외쳤다.

호텔 직원들에게는 유창한 영어로 “이 사람이 나를 사진 찍었다. 이건 사생활 침해니 경찰을 부르라”고 외쳤다.

기자도 “이 사람은 북한의 유명 정치인이고, 나는 한국 메이저 신문의 기자다. 보도를 위해 찍은 것뿐이다”고 반박한 뒤 자리를 피했다.

이렇게 본보 기사(2014년 9월 30일자 A1·6면)가 보도된 뒤, 김정남이 묵었던 호텔은 파리 주재 한국 언론사 특파원은 물론이고 전 세계 주요 매체 기자들로 붐볐다. 그러나 김정남은 이미 호텔을 떠난 뒤였다.

그리고 오늘(2017년 2월 14일) 오후 7시 반경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공항에서 김정남이 피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를 파리에서 괴롭혔던(?) 생각이 떠올라 조금 미안했다. 또 가뜩이나 예측 불가능한 북한과 김정은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어떤 혼란을 일으킬지 걱정이 밀려온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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