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가능성 커진 르펜…佛도 반이민-EU탈퇴 동참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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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이민-프렉시트 대표 공약…트럼프와 닮은꼴
- 중도층-무슬림 끌어안기…일방통행식 행보 피해
- 여론조사 1위 유지…금융가도 당선 가능성 무게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프랑스판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로 불리는 프랑스 국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48) 대표가 본격적인 대통령선거 유세전에 뛰어 들었다. 또 한 명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프랑수와 피용 공화당 대선후보가 사기 및 횡령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어느 때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반이민-프렉시트 대표 공약…트럼프와 닮은꼴

5일(현지시간) 프랑스 리용에서 출정식을 가진 르펜 대표가 유세 시작에 맞춰 내놓은 일성은 당선될 경우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의 물결로부터 유권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세계화로 인해 낙오되고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는 소외계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르펜 대표는 반(反)이민주의와 프랑스의 EU 탈퇴(=프렉시트)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그는 “우리의 국경과 우리의 부(富)는 우리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루 전날 르펜 대표가 내놓은 144개 항목의 공약집에서는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과 과거 산업 중심지로 역할을 하다가 최근 쇠락한 지역 등을 배려한 정책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현명한 보호주의`와 `프랑스의 재(再)산업화`라는 레토릭을 썼다. 또 이민자를 통제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경제분야에서는 근로계층에게 세금을 감면해주는 대신 복지지출을 늘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용을 늘리는 중소기업에는 세제혜택도 주겠다고 햇다. 프랑스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유로 단일통화에서 이탈하겠다는 공약도 포함시켰다. 아울러 현행 60세인 은퇴연령을 62세로 높이겠다고도 했다. 각론에서 일부 차이가 있긴 하지만 트럼트노믹스와 매우 닮아있다.

◇중도층-무슬림 끌어안기…일방통행식 행보 피해

다만 르펜은 앞서 국민전선을 이끌던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89)의 딸이지만 2002년 대선에서 낙선한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트럼프와 같은 일방통행식 행보는 피하고 있다. 르펜은 지난달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프랑스가 EU를 완전히 떠날 수는 없지만 프랑스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EU와 재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통령이 되면 EU 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기존 주장에서 다소 후퇴한 발언이다. 르펜은 대신 EU에 불만을 품은 다른 회원국과 함께 유로존을 탈퇴하고 2002년 이전에 사용하던 프랑화를 부활시켜 궁극적으로는 프랑화가 유로화를 대신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6월 프랑스 국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 EU 탈퇴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45%가 동의했고 탈퇴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견은 33%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프랑스가 EU로부터 더 많은 자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한 주장이 55%에 달했다. 르펜이 EU 탈퇴에는 불안해하지만 EU의 간섭에서는 벗어나고 싶다는 프랑스 국민의 이중적인 심리를 읽고 있다는 방증이다. 르펜은 피용의 신자유주의 기조를 비판하고 주 35시간 노동, 공공부문 일자리를 사수하겠다고 강조해 전통적 사회당 지지층의 표심도 끌어들이고 있다. 가디언은 “국민전선이 노동계층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표심을 대거 흡수하고 있으며 경찰과 군인의 절반 이상이 국민전선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2010년에는 프랑스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무슬림을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에 비유해 비난받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과격한 발언은 하지 않는다. 르펜은 1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옹호했지만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프랑스는 EU 때문에 더이상 국경이 없으므로 바짝 경계해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파리에 집중된 투자를 이민자가 많이 사는 외곽으로 확대해야 한다. 프랑스인인 이민자 2세 어린이들이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맡겨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존 반이민 노선과 배치되지 않는 선에서 프랑스 국적을 가진 이민자 출신을 최대한 포용하겠다는 메시지다.

◇여론조사 1위 유지…금융가도 당선 가능성 무게

현재 르펜 대표는 프랑스 여론연구소(IFOP)와 피뒤시알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4%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제1야당인 중도우파 공화당 대선후보인 프랑수아 피용이 21%로 좇고 있고 중도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장관이 20%로 3위, 집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전 교육부 장관이 18%로 뒤를 잇고 잇다. 4월23일 치러지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자가 없을 경우 1·2위 후보를 대상으로 오는 5월7일 실시하게 되는 결선투표에서 40%의 득표율로 60%인 피용에게 밀릴 것으로 점쳐지곤 있지만 지난해 11월 여론조사에서 피용 71%, 르펜 29%였던 것과 비해선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특히 피용은 최근 비리 의혹으로 인해 지지율이 계속 추락하는 양상이다.

이렇다보니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집권 사회당의 지지율 붕괴, 피용 후보의 비리 의혹, 다크호스로 등장했지만 너무 젊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 마크롱 후보 등으로 인해 르펜 당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도 르펜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리스크로 보고 가격에 반영하는 모습이었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커진 이후 미 국채금리가 치솟았듯이 10년만기 프랑스 국채금리도 벤치마크인 독일 국채에 비해 빠르게 뛰었다. 이를 반영하듯이 UBS 웰스매니지먼트는 지난주 르펜 후보의 당선 확률을 40% 정도로 점치기도 했다.

사실 지난 2015년부터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프랑스에서 잇달아 일으킨 테러는 르펜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호재가 됐다. 프랑스 국립통계청(INSEE)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인들이 가장 크게 불안을 느끼는 요소 1위는 실업(30.9%), 2위는 테러(30.4%)로 나타났다. 2015년 같은 조사에서 테러를 불안 요소로 꼽은 응답자가 17.7%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아진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해 12월 “실업자 수가 300만명이 넘고 지난 18개월간 테러 희생자가 230여명에 달하는 프랑스의 현 상황은 국가 안보를 강조하고 무슬림 이민자 유입에 부정적인 르펜이 표를 얻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이정훈 (future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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