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울 김용욱' 이름으로 탄핵 반대 카톡이 돌고 있다

박기용 2016. 12. 3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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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SNS에서 전파되는 '탄핵 반대' 문자
[한겨레]
▶ 요즘 어르신들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통화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계속 주고받으십니다. 내용을 봤더니 가관입니다. 촛불집회에 나간 이들이 일당을 받았다네요. 황당해하기엔 이릅니다. 촛불의 배후에 북한이 있답니다. 체제 전복을 꾀한답니다. 아니, 이걸 진짜 믿으시는 거예요? 황당해하는 저를 바라보며 어르신이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어, 너보다 더 믿음이 간다.” 아니, 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요. ㅠ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보수층은 불안하고 초조해한다.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탄핵 반대’ 메시지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 수준을 넘어, 괴담에 가까운 내용이 상당수다.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카톡카톡.”

스마트폰으로 새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화면엔 ‘도울 김용욱 선생의 세태의 올바른 안목!’이라고만 쓰였다. ‘세태에 대한’이라 써야 할 것 같지만, 대충 뜻은 통한다. 첨부된 웹주소로 들어가면 ‘비봉산 오두막 29’란 이름의 포털사이트 카페가 나온다. 아일랜드 민요풍의 연주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카카오톡으로 배달된 글은 ‘장문석’이란 카페 운영자가 김용옥의 사진과 함께 올린 게시물이다. “‘대통령 하야’ 주장 세력에 선동 당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지킵시다”가 게시물의 제목이다. 글은 붉은 바탕에 구어체로 쓰였다. 읽기 좋게 구절마다 줄바꿈을 해 화면 한가운데로 정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뭘 잘못했어요? 독재했어요? 부정부패했어요? 해서 부정축재라도 했소? 아님 북한에 퍼주기라도 했소? 뭐 국정농단요? 농단하고 싶어도 하게나 했소?”

뭔가 이상하다. 정말 김용옥이 쓴 걸까. 다시 보니 도‘울’ 김용‘욱’이다. 글 하단엔 출처, 저자 표시와 함께 “인용: 카톡으로 받은글 옮김”이라 돼 있다. 해당 날짜 신문에 실린 글을 단순히 옮겨온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다. ‘엄마부대’ 등 20여개 극우단체들이 11월4일치 신문 하단에 실은 의견 광고를 인용한 뒤 (장씨로 보이는) 글쓴이 의견을 첨부해놓은 것이다. 한데 마치 김용옥이 쓴 것처럼 포장돼 있다. ㅈ고교 동기회라는 해당 카페의 회원 수는 800여명 수준이어서 다른 글의 조회수는 많아야 수천회일 뿐이지만, 이 글의 조회수는 12월30일 44만여건에 달한다. 카카오톡 메시지에 딸린 주소를 타고 들어온 외부인들이 보고 간 흔적으로 보인다. 카페 소개엔 ‘실버세대에 접어든 ㅈ고교 29회 동기생끼리 소식을 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라 쓰여 있다. 카페엔 운영자 장씨 명의로 게시된 글이 이것 말고도 많다. ‘빨갱이 반역자들’, ‘문재인 반역의 종’ 같은 제목들이 눈에 띈다.

탄핵 뒤 ‘보수층’ 사이에
끊임없이 도는 카톡 메시지
탄핵, 촛불엔 ‘성토’
“배후에 북한 있다” 괴담도

사실 왜곡·허위사실 허다한데
‘친박’들은 신뢰·공유
“일종의 인지부조화 상황
반대 증거 나올수록 강해질 것”

도울 김용욱으로부터 온 문자

경기도 일산에 사는 정서영(가명·63)씨의 스마트폰엔 요즘 이런 식의 ‘탄핵반대 카톡’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주변 누군가”에게 받은 것을 정씨는 그대로 다시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전파한다. 정씨는 “방법이 어려워서” 단체카톡방을 만들지 않을 뿐, 공감할 것이라 생각되는 주변인에게 일일이 메시지를 돌린다. 정씨는 “요즘엔 젊은 애들 얘기도 그렇고, 티브이에서 하는 소리는 죄다 믿을 수 없는 말들뿐”이라 했다.

문자는 수신자의 탄핵 찬반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파된다. 경기도 광명에 거주하는 최현옥(가명·75)씨도 최근 비슷한 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 최씨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글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진 않는다. 그는 12월29일 <한겨레>에 “(노인복지관 내) 동아리 단체카톡방에 누가 자꾸 그런 글을 올린다. 분위기를 해칠까 싶어 아무도 뭐라고 하진 않지만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껏 알아야 할 텐데 글 올리는 사람은 계속 올린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이상한’ 문자메시지들이 에스엔에스(SNS)를 타고 확산되고 있다. 탄핵과 촛불을 성토하고 대통령을 지지하는 내용이 많다. “촛불 주도세력이 체제 전복을 꾀한다”거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식의 음모론적 괴담부터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난 글까지 다양하다. 유명인이 쓴 것도, 그런 듯 포장한 것도, 평범한 이가 쓴 것도, 글쓴이를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신문 기사나 동영상 주소만 돌기도 한다. 루머를 넘어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정보’나 ‘뉴스’의 외피를 쓰고 퍼져간다.

도올 김용옥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나눈 대담을 정리한 12월16일치 <중앙일보> 기사도 이런 선동에 활용됐다. 정씨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는 “(대담에서) 탄핵이 부결(기각)되면 (문 전 대표가)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 했는데, 이건 또다시 광주 5·18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라며 “문제는 이게 가능하다는 거다. 북한 특수부대나 간첩 몇 명만 시위 군중에 섞여 있다가 선량한 국민들에게 총질해대면 그게 5·18처럼 되는 거다. 기막히는 일”이라고 했다. 또 문 전 대표가 “경제적 불평등을 혁파하기 위해 그 원천인 재벌을 개혁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히 끊을 것”이라 말한 것을 두고는 “재벌을 완전 해체하고 경제를 수평으로 재정리하겠다고 했다”라고 와전했다. 메시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산주의 체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열심히 일해 이룩한 대한민국을 북한에 갖다 바치고 우리 국민을 노예로 삼겠다는 것”이라며 호도했다. 이 메시지의 원문을 검색하면 국무총리를 지낸 고 이한기 박사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의 개인 블로그가 나온다. 해당 블로그엔 비슷한 내용의 글이 여러 건 게시돼 있다.

12월19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한다는 글이 카카오톡을 돌아다녔다. 미국 뉴스 채널 <시엔엔>의 기사인 듯 포장된 메시지는 영문과 국문을 문단마다 번갈아 배치해 마치 기사를 번역해놓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부제엔 ‘만약 탄핵이 된다면 동북아시아를 넘어 세계 경제 악영향 예고’, ‘한국 대통령의 탄핵 문제는 다시 검토해야’라고 썼다. 얼핏 트럼프가 탄핵에 강하게 반발하는 듯하지만 온전히 누군가의 장난이었다. 해당 기사에서 트럼프를 인터뷰한 이는 “시카고대 국제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며, 오바마 정부의 재무부에서 근무했던 칸예 웨스트”라 소개돼 있다. 칸예(카녜이) 웨스트는 미국의 래퍼다. 기사에서 언급된 ‘웨스트 연구원’의 저서 ‘대학교 중퇴-늦깍이 접수-졸업’, ‘나의 아름답고 어둡고 뒤틀린 환상’, ‘파블로의 삶’은 “여러 번 베스트셀러에 오른 미래예측과 경제분석 책”이 아니라 그가 낸 앨범 제목들이다. 기사의 출처로 표기된 웹주소로 들어가보면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로 알려진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게시판에 이른다. 해당 글은 이미 삭제됐다. 원문이 사라졌지만 복사된 글이 누군가의 블로그와 카페 게시판에 남아 카카오톡을 타고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다.

정서영(가명)씨와 최현옥(가명)씨가 지난 한 달 동안 카카오톡으로 받은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내용의 메시지 20여개의 내용을 이용해 구름단어 분석을 했다. 메시지 내 특정 단어가 많이 등장할수록 크고, 가운데 위치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과 함께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두 시간 이내에 적화통일?

이런 글에 사실의 왜곡은 허다하다. 그들의 메시지 안에서 최순실 사태는 “배경에 북한 김정은의 대남공작팀이 자리한, 특정 방송사의 내란기도 사건”이다. 촛불집회는 “종북 공산(사회)주의 반국가 세력들이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해 공산혁명 정권을 세우기 위한 반란”일 뿐이다. 촛불의 정체와 목적을 모르는 많은 국민들이 “좌파가 장악한 언론의 조작, 과장, 왜곡, 거짓 선동보도에 분별없이 속아넘어가 부화뇌동해”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을 지냈다는 이석희씨는 자신의 블로그(‘구름을 밭갈듯이’)에 ‘최근 북한이 대남 공작원들에게 보내온 지령문’을 실어놨다. 내용은 “시시콜콜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고, 국민들의 이성을 흩트려놔야 하며, 문재인·박지원·박원순 등의 혐의를 덮을 수 있어야 한다. 언론개혁이란 말 자체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정부가 무엇을 해도 믿지 않도록 만들어라” 등이다. ‘카톡에서 옮김’이라 출처를 밝혀놨지만 ‘탈북자동지회’ 같은 곳에 게시된 ‘지령문’은 모두 이씨의 블로그를 출처로 하고 있다. 이 블로그엔 비슷한 내용의, 현 시국과 관련된 글이 700건 가까이 게시돼 있다.

최근 일부 기독교 교인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미국에서 온 카톡’이란 제목의 글도 음모론에 가깝다. 조무웅이란 목사가 한국에 근무 중인 주한미군 장교를 만나 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인데, “북한의 지시가 떨어지면 두 시간 이내에 남한이 적화통일된다”는 게 뼈대다. 김영삼 정부 이후 지난 십수년 동안 적화통일 준비가 완료됐으며, 정부가 흔들리는 지금이 그 적기라는 것이다. 대기업 사장단 등 고위층은 모두 전용기를 구입했고, 일본 자위대가 보트피플을 받을 준비를 끝냈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 글을 게시한 경기도 수원의 한 교회 교인 커뮤니티 게시판엔 손석희 <제이티비시> 보도 담당 사장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문 전 대표가 출연한 상황을 홍보하는 문구(‘문재인&손석희의 아름다운 콜라보’)를 두고 “‘콜라보’는 공동작업을 의미한다. 이들은 한패”라고 설명한 글이 올려져 있다. 이런 메시지엔 어김없이 이런 호소가 덧붙는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주변 분들에게 널리 알려 주세요.”

언뜻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던 여론조작 사건이 떠오르지만, 이런 글들 중 어디까지가 정부기관이 은밀히 관여한 것인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련성이 드러나던 시점부터 개인 에스엔에스를 연결망 삼아 확산되고 있다.

이들 메시지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만 뿌리는 게 아니다. 정보들을 따라가보면 일간베스트저장소 등의 극우사이트, 극우 인사, 교회, 예비역 장성 등 유통 경로는 다양하다. 왜곡과 날조로 생산된 문장들이 극우 사이트와 개인의 에스엔에스를 거치며 박근혜 탄핵 정국을 거스르는 맹목적 언어들로 재생산되고 있다. 박근혜 탄핵에 동참한 종편도, 보수 일간지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믿는 지인이 전해준 정보에 빠져들고 있다. 문제는 ‘친박집회’에 나오는 이들, 그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 다수가 이런 메시지를 신뢰하고, 소비하고,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이런 글을 돌려보고 있는 걸까.

<음모론의 시대>(문학과지성사, 2014)를 쓴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주말마다 이어진 ‘맞불집회’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박사모 등이 주도한 맞불집회는 31일로 7차째를 맞는다. 전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면, 맞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일종의 ‘인지부조화 상황’에 빠져 있다. 자신의 신념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 현실을 왜곡해 보려는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이상한 카톡 메시지들은 방어기제를 돕는 도구이자 오락이다.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을 상상의 세계로 가져가 위해하고 조롱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보다 현존 질서의 수호, 체제 정당화가 더 중요하다.

“기성을 부정하고 새것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진보 레토릭’을 고령자들은 기성 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흐름이 신념과 결합하면 공동체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확대해석됩니다.”

믿음은 강해진다

이들 사이에 가장 큰 공통분모라 할 ‘종북 이데올로기’는 이전처럼 단순하지 않다. 정치칼럼 누리집인 <서프라이즈>를 공동창간한 장신기씨는 ‘보수화된 시민들’을 인터뷰해 쓴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시대의창, 2016)에서 보수 세력들의 ‘종북 담론’을 과거와 달리 봐야 한다고 봤다. 그는 “단순히 북한을 물리적, 사상적으로 위험한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계몽과 훈계, 훈육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보수 세력은 북한의 경제난과 체제 경직성 같은 속성을 진보 세력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북한에 끌려다니는 정치적 무능함을 보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수층’은 그래서 확인되지 않은 ‘북한 배후설’을 자기들끼리 돌려보며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이기까지 한 진보의 무능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메시지들은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담은 메시지, 이른바 찌라시는 내용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단순 유포자까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으로 처벌된다.

전 교수는 “세상의 멸망이 올 것이라 믿는 사이비종교집단의 광신도들은 정작 멸망이 오지 않아도 방어기제가 발동하면서 믿음이 더 강해지는데,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하면 탄핵 반대 문자를 전파하는 이들의 신념도 더 강해질 것이다. 신념에 반하는 증거가 나올수록 신념이 강해지는 것이 인지부조화의 핵심”이라 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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