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드 갈등 부추겨놓고 "불필요한 논쟁 멈추라"는 대통령
[경향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시민과 ‘소통’하는 방법은 대체로 몇 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훈시, 겁박, 불통, 독선, 일방통행….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해당사자 간의 충돌과 반목으로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경북 성주를 배치지역으로 선정한 데 대해선 “우려할 필요가 없는 안전한 지역”이라고 잘라 말했다. 비밀주의로 혼란을 부추기고, 여론수렴도 없이 기습 발표하고는 ‘논쟁’도 ‘우려’도 말라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에 대해 남남갈등과 국론분열이 있어선 안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다. 남남갈등과 국론분열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갈등과 분열이 실재한다면 왜, 어디서 비롯했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민심이 갈가리 찢긴 것은 ‘불필요한 논쟁’ 탓이 아니다. ‘필요한 논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무능과 무책임, 일방주의의 적폐를 드러냈다. 초기에는 미국 측 요청이 없으니, 협의가 없고, 결정도 없다는 ‘3불’만 되풀이하며 시민을 기만했다. 전격적으로 배치를 결정한 뒤에는 배치지역을 두고 칠곡이니 양산이니 하며 온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묻거나 따지지 않고 정부 말을 그대로 믿을 시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논쟁 자체를 거부하던 정부가 논쟁을 멈추라니 자가당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은 불리한 이슈에 부딪칠 때마다 ‘가만히 있으라’며 윽박지르곤 했다. 해명, 자성, 사과는 회피해왔다. 이번에도 합리적 문제제기를 불필요한 논쟁으로 몰고, 정쟁이 나면 국가가 존립하지 못한다며 겁박하고 있다. 그러나 논쟁이 필요한지 아닌지 결정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다. 시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 원리다.
박 대통령은 어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차 몽골로 출국했다. 떠나기 전 ‘교시’를 내렸으니 돌아올 때까지는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대할 성싶다. 그러나 희망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확신한다면, 귀국 후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의 의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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