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피팅모델은 글래머? 대부분 7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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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2.03. 오후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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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현업 최고령’ 속옷 피팅모델 원인경씨 이야기

현업 최고령 속옷 피팅모델인 원인경씨는 속옷의 크기가 1~2㎜의 차이만 나도 착용감이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1920년대 보정 기능을 갖춘 최초의 브래지어가 등장한 이래, 여성 속옷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지만, ‘내 몸 같은’ 속옷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길에 의지가 되어주는 숨은 존재가 있다. 바로 속옷 피팅모델이다.

“브라는 전체적으로 총장이 좀 작으니까 한 단 늘려줘야 될 것 같아요. … 팬티는 피콧밴드가 좀 맺혀요. 전체 밴드를 2㎝ 정도 풀었으면 좋겠어요.”

서울 서빙고동 남영비비안 본사 7층 디자인 피팅실. 드르륵 접이식 문을 밀고 나온 피팅모델 원인경씨(43)가 비비안 디자인실 이정경 차장과 마치 암호를 주고받는 듯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의 긴 대화 중 일부를 ‘해석’하자면 총장은 브래지어가 가슴둘레를 감싸는 전체 길이로, 500g의 추를 매달아서 늘어난 길이로 사람이 입었을 때의 압박감을 측정한다. 팬티의 경우 레이스 장식이 있는 밴드의 신축성이 떨어지니 그 길이를 늘려야 한다. 이 피팅 과정을 통해 착용 시 답답한 브라와 옆으로 살이 올록볼록 튀어나오는 팬티의 ‘탄생’을 막을 수 있다.

요즘은 피팅(Fitting)모델이 인터넷 쇼핑몰의 판매용 의상을 입고 사진 찍는 모델로 통용되지만, 원래는 의류의 수정과 보완을 위해 시제품을 입어보는 모델을 의미한다. 피부에 직접 닿는 속옷은 그 제작 공정이 더욱 까다롭다. 실제 최종 상품까지 살아남는 디자인은 10%에 불과하다. 상품 개발단계부터 수정, 품평, 실착 테스트까지 전 단계에 걸쳐 피팅모델의 참여가 이뤄진다. 속옷 전문 피팅모델 원인경씨를 만나 잘 알려지지 않은 속옷 피팅모델의 세계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업계에 발을 디딘 원씨는 현재 3개 속옷 업체에서 활동 중인 23년차 현업 최고참이다.

- 속옷 피팅모델의 자격 조건은.

“ ‘속옷모델’이라고 하면 볼륨이 좋다는 인식이 있다. 말 그대로 한국 여성을 대표하는 기본 사이즈인 것이지 ‘글래머러스’와는 다르다.

- 다른 사이즈의 피팅모델도 있나.

“ 과거에는 A컵 외에도 B, C, E, F컵의 여성 모델과 남성 모델이 있었는데 생산량이나 제품이 많지 않다 보니 IMF 외환위기 이후 75A 모델만 남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판매량이 많은 75A 기본 사이즈를 맞춰놓고 그 비율에 맞게 늘려서 큰 사이즈 제품을 제작한다. ”

- 디자이너 못지않게 전문가 같더라. 마네킹처럼 수동적인 존재일 줄 알았는데.

“패턴, 봉제, 원단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정확하게 착용감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속옷 피팅은 굉장히 복잡 미묘한 작업이다. 아우터(겉옷)는 1~2㎝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속옷은 다르다. 디자이너들은 1~2㎜로 싸운다.”

- 사이즈만 유지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계속할 수 있나.

“나이 제한이 딱히 없으니, 그렇다. 발육조건이 좋아지면서 2006년 기술표준원이 서구화된 체형에 맞게 기존 A컵을 AA컵으로, B컵을 A컵으로 한 단계씩 사이즈 조정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마침 그 시기에 내가 살이 쪄서 덕분에 새로운 75A에 맞는 몸이 됐다. 관리 비결은 따로 없다. 단 한 가지 신경 쓰는 건, 식사 후 2시간 이내에는 절대 눕지 않는다.”

-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피팅모델이라는 직업 자체가 출시되지 않은 신제품을 입어보는 일이라 디자인 유출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철칙이 어디 가서 제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 직업상 힘든 점은.

“간혹 수정 요청을 반영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있다. 디자이너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게 제품이니까 이해하지만, 나 역시 최적의 피팅감을 위해 꼼꼼하게 얘기하는 게 일이니까 다투는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얼굴이 굳어서 나가는 경우도 있다. ”

- 수입은 어떤가.

“경력별, 회사내규별로 다르다. 22년 전 아르바이트로 처음 시작할 때는 시급이 2만5000원이었다. 요즘 시급은 3만5000원에서 15만원 선으로 알고 있다. 현재 활동하는 속옷 피팅모델은 10명 정도로 추산된다. 직업 생명은 길어야 5~6년 정도다. 출산 이후 체형이 바뀌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졌더라면 나도 이 업계를 떠났을 수 있다.”

- 속옷, 왜 중요한가.

“속옷이 불편하면 자꾸 신경 쓰여서 만지게 되고 자세도 웅크러들게 마련이다. 내 몸에 가장 먼저 닿는 속옷이 잘 맞아야 편안하고 자신감도 생긴다. 아직도 몸에 맞지 않는 속옷을 입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신의 사이즈를 제대로 알고 구입했으면 좋겠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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