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서식지도 인간 쪽으로 이동
야생늑대로부터 진화적 갈림길 눈앞에
동물행동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콘라드 로렌츠가 그의 책 <인간, 개를 만나다>에서 상상해 본 ‘늑대가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순간’이다. 개는 원시 인류가 살던 약 1만2000년 이전에 늑대에서 길들여져 진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대의 늑대도 개가 될 수 있을까? 호주 멜버른 디킨대학교의 토머스 뉴섬 교수와 동료들은 학술지 <바이오사이언스> 최근호에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다. 현대의 야생 늑대도 개가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뉴섬 교수는 늑대의 ‘식단’에 주목했다. 아직 많은 늑대가 유럽과 아시아, 북아메리카의 외진 야생 공간에 살지만, 점점 더 인구밀집 지역으로 서식지를 옮겨오고 있다. 이미 늑대가 먹는 먹이 중 32%가 인간과 관련한 것들이다. 그리스에 사는 늑대는 돼지, 염소, 양을 먹는다. 스페인 늑대의 먹이도 조랑말 등 가축이다. 이란의 늑대도 닭, 염소와 음식물쓰레기 말고 다른 것을 잘 안 먹는다. 늑대는 사냥 본능을 버리고 인간 주변으로 와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섬 교수는 비슷한 일이 늑대에게도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늑대가 인간에게 의지하게 되면 숲에서는 포식자가 사라지는 효과가 발생해 초식동물이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인간 주변에서 식습관을 바꾼 늑대는 야생에서 사냥하는 늑대와 유전적으로도 갈라질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행동도 변화시켜 딩고와 마찬가지로 개와 교미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연구는 인간에 의해 시작된 지질시대인 ‘인류세’ 진화의 한 추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류세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지구가 산업혁명 이후 새 지질시대에 들어섰다는 최근의 논의다. 도시화와 개발, 거주지의 확대로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촉 빈도는 늘어났다. 연구팀은 “가축화와 잡종화 등을 거쳐 종의 행동과 진화가 바뀔 수 있다.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는 진화적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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