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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 안 돼 싫다? 도서정가제는 궁극적으로 독자를 위한 것"

[인터뷰]출판평론가 한기호 ""출판 진흥? 정부에 기대선 안 돼"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5-15 18:11 송고 | 2017-05-15 18:14 최종수정
한기호 출판평론가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5.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한기호 출판평론가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5.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지금까지는 종이에 잉크 바르는 것을 출판이라 했지만, 이제 출판은 '퍼블리싱'(Publishing)이 아닌 소셜미디어에 글 올리는 '퍼블리킹'(Publicing)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출판계의 운동권' '출판계의 사이다'로 불리는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59)은 스스로에 대해 "(출판계에서) 10에 3명 정도밖에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저자를 개발하지 못한 출판사들, 정부 자금에 의존적인 출판계 행태를 비판하는 등 쓴소리를 자주 내놓아서다.

지난 12일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도 역시 정부·출판계·독자들을 향한 서릿발같은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올해 초입부터 출판계를 강타한 송인서적의 부도로 많은 출판사가 피해를 입었고, 연구소 부속으로 출판사도 운영하는 한 소장 역시 1억 3000만원이 넘는 돈을 손해봤지만 대통령이나 정부에 출판계 난제의 해결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나는 출판업자들이 '출판을 살리자'고 막 그러는데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해요. 진흥기금 내놔라, 도서구입비 내놔라 그러지만 그거에만 목숨을 걸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국가는 돈 쓸 데가 너무 많잖아요."

한 소장은 국가에 의존하지 말고 민간에서 저자도 개발하고 독서운동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출판사들에서 기금을 모아 책쓰고 싶은 이들을 대상으로 무료강좌를 열고 그후 투고하라고 한 후 10편을 고르는 겁니다. 멘토를 붙여주고 출판사까지 소개하며 저자를 키우고 대신 저자들에게 '1%를 기금으로 내라' 그러면 돈이 쌓일 거예요. 이걸로 항구적인 민간 독서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토대로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운동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출판의 몰락'이라는 출판가의 아우성도 사실상 맞는 말이 아니라고 한 소장은 말했다. 단순히 책만 보자면 안팔리지만 연관 시장까지 포함하면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출간한 '하이 콘텍스트 시대의 책과 인간'(북바이북)과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북바이북)에서 달라진 출판상황에 그에 따른 출판의 새 모델을 설명했다. 책이 안팔는 것만 보면 출판의 몰락처럼 보이지만 텍스트(글)를 둘러싼 것의 소비행태가 바뀌고 재편·확대되고 있는 중이며, 이를 어떻게 주도하는 것이냐가 핵심 문제라는 것이다. 

한 소장은 책을 내고 싶어하는 저자들에게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글솜씨를 뽐내고 책을 쓰고 냄으로써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책이나 글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맥락과 상황이 소비에 중요한 결정요소가 됐기 때문에 '퍼블리싱'이 아닌 '퍼블리킹'까지 포함한 넓은 출판개념이 성립되어야 한다고 했다.

공주사범대를 졸업하고 출판사 창비의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출판평론가가 된 한 소장 자신이 이런 '브랜드화된 저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출판평론가나 연구자와 달리 그는 연구소를 중심으로 해서 자신을 따르는 후배 평론가들을 키워왔다. "멍석을 깔아주니 자기들이 놀았다"고 한 소장은 표현했지만 후배가 크는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 그의 진심을 아는 한미화, 장동석, 김성신, 고 최성일 등의 후배들이 그 밑에 모여들어 다시 '한기호 키즈'(Kids)라는 브랜드가 되었다. 

한 소장은 개정 도서정가제를 비판하고 (할인이 안되어) 책값이 비싸 살수 없다는 독자들에 대해서도 "책값은 절대 안비싸다"고 일축했다. "도서정가제 전에 출판사들이 많게는 90%까지 폭탄세일했던 경험이 소비자들에게 남아있어 그런건데 사실상 출판사들은 도리어 오랫동안 책값을 안올리면서 버텨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책이 안팔릴까봐 가격을 올릴 수가 없으니 출판사는 정식 직원이 아닌 외주로 일감을 돌려요. 그럼 전보다 3분의1로 인건비가 줄어드는데 그건 그만큼 착취하고 압박해서 버티는 게 늘어났다는 의미인 거죠. 출판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과 점점 멀어졌어요." 

한 소장은 도서정가제의 강화나 유지가 독자들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영미권을 제외하고 독일이나 프랑스 등 시장이 작은 문화권은 자국의 문화가 잠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도를 강화한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책을 만들려면 안정된 정가 시스템이 있어야 해요. 매출만 생각하면 도서정가제든 뭐든 많이 팔리면 그만이지만 문화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정가제는 지켜야 하는 거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신문이 정가제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겠나 생각해보세요. 정가제는 궁극적으로 독자를 위한 겁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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