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6. 무능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 777

오후, 미기야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은 자신을 메피스토라고 소개하며, 메피스토 상담소를 운영중이고 상담을 요구한 사람에 대해 의뢰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저희 쪽으로 의뢰를 하신다고요? "

"스토킹 건이라서요. 아무래도 공권력에 맡기기에는 못 미더운 부분도 있어서 괴담수사대에 의뢰를 하려고 합니다. "

"스토킹 건이요? "

"네. 설명하자면 긴데, 일단 상담소에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회사 대표가 퇴사자를 스토킹하고 있다'고 하네요. 퇴사하신 분은 다른 직장에 재직중인데 말이죠. "

"그럴 수가... 일단 의뢰는 받아드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내담자에게는 연락처와 함께 최대한 빨리 방문하라고 안내 드리겠습니다. "

 

전화를 끊고 잠시 후, 건장한 청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왁스로 잡은듯한 뻣뻣한 머리에 동글동글한 안경을 쓴 남자였다.

 

"어서 오세요. "

"메피스토 상담소의 소개로 왔습니다. "

"일단 이 쪽으로 앉으세요. "

 

미기야는 시원한 매실차를 한 잔 건넸다.

 

"감사합니다. "

"메피스토씨를 통해서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대표가 스토킹을 하고 계시다고... "

"스토킹은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당한거긴 합니다만... 대표가 퇴사 후에도 계속해서 연락하면서 괴롭히더니 급기야는 집까지 찾아갔다고 하네요. 그것때문에 경찰도 불렀고... "

"피해자분은 오늘 같이 못 오셨나요? "

"네, 아무래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된데다가 요즘 바빠서, 연차 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같은 직장에 다녔던 사이이고, 스토킹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쪽 대표라 상황은 어느정도 듣긴 했습니다. "

"그럼 일단 알고 계신 부분까지만이라도 말씀해주세요. "

 

남자는 매실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만둔지 좀 됐지만, 전에 다니던 회사는 스타트업으로 앱 개발을 하는 회사였습니다. 저랑 그 분은 둘 다 개발자로 입사했고요. 2주 차이로 입사해서 기간도 얼마 차이나지 않고, 맞는 부분도 있어서 꽤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계속 일하면서 다니다가 제가 이직처를 먼저 찾아서 나가게 되었고, 그 분도 계속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었고요. "

"실례지만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

"가장 큰 문제는 월급이었죠. 그 분이나 저나 자취하는 입장이다보니 월세도 내고, 공과금도 해결해야 하는데 월급이 하루에서 사흘정도 밀렸습니다. 그것 말고도 문제점이 많았는데, 같이 일하시던 분께서 한 단어로 요약해주셨죠. '무능'. "

"무능이라... 혹시 그 분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직접 만나뵙고 얘기를 좀 나눴으면 하는데... "

"잠시만요... 번호가 어디 있었는데... "

 

핸드폰을 뒤적이던 남자는 잠시 후, 연락처를 찾았다.

 

"아, 여기 있네요. 이 쪽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

"감사합니다. "

 

미기야는 전화를 걸어, 괴담수사대라는 것과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주말쯤 만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전화기 너머로, 흔쾌히 승낙하는 얘기가 들렸다. 주말에 약속을 잡은 미기야는, 그 동안 대표가 괴롭혔던 증거가 있다면 가져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주말, 파이로와 도희는 사무실에서 손님을 맞았다. 짙은 갈색 머리를 하고 안경을 낀 남자였다.

 

"미기야가 말한 게 너였던 모양이구만... 이건 우리가 독단적으로 해결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위층에서 사람 좀 불러왔어. "

"얘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퇴사한 사람에게 대표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다고... "

"처음에는 직접 연락하더니, 제가 번호를 차단하고 나니까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연락했어요. 그래서 제가 저는 이미 나간 사람이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입장이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더니 집까지 찾아와서... "

"그 대표라는 사람은 대체 개념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거냐...? 머리에 뭐가 든 거야? "

"심각한 사안이군요. 지금도 연락은 계속되고 있는건가요? "

"연락은 진작 다 끊었는데, 오늘 아침에도 집에 찾아와서 경찰을 불렀어요. "

"아마 경찰이 조치를 취하려면 니가 물리적으로 다쳐야 해서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을거다. 법이 새로 제정됐다 어쨌다 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법이란 놈은 우리 편이 아니거든. "

"가져오신 증거들을 좀 볼 수 있을까요? "

 

남자가 증거를 건네자, 도희는 증거를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보자... 이력서에 있던 주소를 토대로 집으로 찾아오셨다고 했죠? "

"대표가 자기 입으로 말하던데요... "

"이 건은 일단, 아는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아보도록 하죠. 집 주소는 개인정보이기도 하고... 이력서에 주소를 기재하는 목적과 다르게, 악의적으로 이용한 거라 잘 하면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을겁니다. "

"그거랑 별개로 이 대표라는 사람, 쇠고랑 차게 할 수는 없는거지? "

"월급이 밀린 걸로 이의제기를 한다고 해도, 하루나 사흘정도로는 씨알도 안 먹힐걸요. 주소 건으로는 잘 하면 고소장은 날려줄 수 있겠네요. "

"참, 법 끼고 하면 뭘 제대로 할 수 있는게 없구만... "

"일단 힘드시겠지만, 빠른 시일 내로 연차를 쓰셔서 가까운 법원으로 가신 다음 접근금지 신청부터 하세요. 그 정도로 괴롭힘이 있었다면 받아줄겁니다. 회사도 전후 상황은 다 알고 계시죠? "

"혹시나 회사로 찾아와서 난리 칠까봐 상급자에게 얘기는 해 뒀습니다. "

"그럼 아마 연차를 쓰시더라도 이해해주실겁니다. 법원에 가시기 전에 사무실 통해서 연락 한 번만 주세요. "

 

남자에게서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본 도희는, 남자가 돌아간 후 태영에게 연락해 해당 회사에 투자자로 접근해 조사해 줄 것을 부탁하고 변호사와 연락해 날짜를 잡았다.

 

"법적인 조치 관련해서는 저희 쪽에서 처리할테니, 괴담수사대에서는 저 분의 신변 보호를 부탁드립니다. "

"맡겨달라고. 여차하면 대표라는 인간 머리 끄댕이부터 잡고 시작하지. "

 

월요일 오후, 파이로는 주말에 찾아왔던 남자의 연락을 받았다. 화요일에 연차를 쓰기로 했고, 법원에 간다는 얘기를 하자 파이로는 오전중에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파이로는 남자의 집으로 갔다.

 

"주말동안 별 일 없었지? 회사에서는 뭐래? "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사정 설명하니까 가서 바로 신청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주말동안... 또 찾아오긴 했죠. "

"너도 고생이다... 일단 법원부터 가자. "

 

파이로가 남자와 함께 법원으로 갈 동안, 고키부리 사무실에서는 변호사와 상담을 하는 동시에 회사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태영의 말을 들어보자면, 처음에 투자자라고 접근했을 때는 거절하던 대표가 국가 사업과 관련해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자 태도가 여반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회사에 찾아갔을 때 사무실이 어떤지 둘러봤더니, 사람이라곤 대표 혼자였고, 비정기적으로 오는 사람만 한두명 있다고 했다.

 

"아무리 앱 개발이라고 해도 규모가 너무 작은데요... 거기다가 국가 사업 이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요. 제가 지금까지 만나봤던 스타트업 대표들은 대부분 투자를 받으려고 동분서주 했거든요. "

"흐음... 그렇군요. "

"변호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

"고용주가 직원을 채용하게 되면 서류를 파기해야 하는데, 파기하지 않는 경우가 처음이면 시정 명령만 가능하다고 하네요... 채용 관련 서류를 파기하지 않은데다가 거기에 기재된 개인정보를 악용한 사례라서, 따로 검토해보고 연락 주신다고 했습니다. "

"그렇군요. 아, 방금 괴담수사대 통해서 접근금지 신청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

"알겠습니다. "

 

남자와 헤어지고 사무실로 돌아온 파이로 역시 고키부리 사무실을 통해 보고를 받았다.

 

"그 대표라는 인간, 이틀동안 또 찾아왔다고 하더만... 회사에서 사정 듣더니 연차 쓰는 걸 바로 수락한 모양이야. 빨리 가서 신청하라고 했대. "

"회사에도 미리 언질해 둘 정도면, 오죽하겠어요. "

"고키부리 사무실 통해서 들은 바로는, 회사가 개업한지는 1년이 조금 넘었는데, 모든 자금이 국가 사업을 통해서 들어오는 지원금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때문에 사업 내용이 매번 바뀌는 모양이야. 이전에 작성했던 걸 종합해서 확인해봤는데, 마치 분식회계를 보는 기분이라던데? "

"분식회계요...? "

"회계장부상 정보를 고의로 조작하는거야. 보통은 회계사기라고도 하지... 신청하는 사업에 따라 앱의 종류나 이름이 조금씩 바뀌어서, 지금 들어와있는 직원도 자기가 뭐 하는 회사인지 구체적으로는 모르는 모양이야. 거기다가 지원금 관련해서 직원 입사일을 조작한 정황도 보인다고 하고... "

"문제가 많은 회사네요. "

"중요한 건, 개업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수익을 낼 무언가가 없다는거지만. "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이름과 용도를 매번 바꿔서 내다 보니, 사원들도 자기가 뭘 만드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그 앱이라는 것도 나올 예정인거지 아직 나오지는 않은 상태라 수익이 전무했다. 즉, 돌아가는 게 신기한 회사였다.

 

다음날, 출근하던 파이로는 남자의 전화를 받고 남자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은, 핏자국이었다.

 

"뭐야, 이게...? 넌 괜찮냐? "

"네, 저는... 아침에 나와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

"여기서 난투극이라도 있었나...? 일단 경찰부터 불러야겠군. "

 

라우드에게 연락한 파이로는 집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문 앞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핏자국을 따라가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었다. 길고양이가 고까웠던 모양인가, 생각한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다 숨을 거둔 고양이를 뒤로 하고 다시 집 앞으로 돌아왔다.

 

"고양이가 죽어있던데... 정확히는 방금 죽었지만. "

"이상하네요... 이 동네에는 고양이가 없는데? "

"...뭐? 그럼 저 고양이는 어디서 온 거지? "

 

갓 현장으로 도착한 라우드는, 현장에 남아있는 영상을 확인했다. 누군가 고양이를 데려와서 땅에 몇 번 패대기친 다음, 남자의 집 앞에 던지고 가 버렸다. 아직 숨이 붙어있었던 고양이는, 몸을 일으켜 걸어갔다. 아마도 그게 파이로가 아까까지 봤던 고양이였던 듯 했다.

 

"그 패대기친 사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 해? "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가 여기까지 오는 사람이었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 말고는 안 보였지만... "

"그 대표라는 인간 사진 있냐? 좀 볼 수 있어? "

"이렇게 생겼어요. "

"이 사람 맞아? "

"맞아, 이 사람. "

"참 졸렬한 여편네일세. 일단 저거 동물보호법으로 신고 들어가야겠다. 형사 양반한테는 이따가 내가 연락할게. "

"그런데 왜 고양이를... "

"고양이가 요물이라는 얘기 들어본 적 있지? 자기를 괴롭힌 사람에게 복수한다는 얘기 있잖아. 아마, 고양이를 저기다 던져두면 저 쪽에 복수하러 갈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거, 큰 오산이거든. "

 

파이로는 정훈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경찰이 도착할 동안 고키부리 사무실에도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고양이를 죽여서 던졌다고요? "

"아마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던진 것 같은데, 100미터 이내일걸? "

"그러면 접근금지 위반에 동물보호법으로 신고도 될 거고... 아는 변호사분께서 추가 검토해 본 결과 채용 후 이력서를 파기하지 않은데다가 개인정보를 악용한 셈이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으로도 고소해보자고 하셨어요. "

"이야... 법원 출석 뻔질나게 하겠구만. "

 

경찰이 도착해 현장을 확인하고 나서, 파이로와 남자는 조서를 작성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남자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여, 별 일 없지? "

"그 때 이후로 따로 찾아오거나 한 적은 없었어요. 그거랑 별개로 일단 이사가려고 집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고... "

"잘 생각했어.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이 이사거든, 현실적으로는 힘들지만... "

"괴담수사대에 의뢰한 동료랑도 만나서 술 한 잔 하려고 생각중입니다.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떨어져 나갔으니까요. "

"네 이력서를 파기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악용한 건에 대해 고소도 들어갔고, 고양이를 죽여서 던졌으니 동물보호법 위반에, 고양이를 던진 위치가 집이랑 100미터 이내라 삼중제재 크리 맞았거든. 그거, 절대 국가 사업 지원금으로는 커버 못 칠걸? "

 

파이로의 말대로였다. 대표가 고소장에 벌금까지 맞고 경찰서 출두까지 하는 동안, 국가 사업 신청이 지연되어서 결국 신청을 하지 못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월급이 지연되어서 하나 있던 직원도 그만두었고, 그 직원이 곧 노동지청으로 찾아가 임금이 일주일째 밀렸다며 진정서를 넣었다.

 

'무능'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던 대표라는 사람은 앱 개발은 고사하고 Hello, World! 조차 출력할 줄 몰랐기때문에 앱이 출시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했고, 태형도 이를 빌미로 손을 뗐다고 한다.

 

"애초에 대표라는 자리가 남들이 보기엔 어떨 지 몰라도, 물밑으로 노력 많이 해야 하는 자리야. 그런 자리에 자질 없는 자가 앉으면 이 사단이 나는거지. 나랏님들이 지원사업으로 투자하는 돈이 다 국민 세금인데, 그걸 허투루 쓰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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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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