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3. Die Kirschbluete

미식가라이츄 0 2,601

두 남녀가 카페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갓 시킨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초면인지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금세 친해진 듯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몇 시간동안 얘기를 나누다 핸드폰으로 시각을 확인한 남자가 여자에게 뭐라 말을 건네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을 정리한 두 사람은 카페를 나갔다. 

 

그리고 카페를 나서는 두 사람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하얀 머리의 여자가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그 세계는 어디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거지? "

 

두 남녀는 카페를 나서 거리를 걸었다. 함꼐 저녁을 먹을 근사한 식당을 찾기 위해서였다. 

 

"헤연 씨는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셨다고 했죠? "

"네. DF 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

"DF기업이라면 미국계 대기업인데, 대단하네요! "

"뭘요~ "

 

그녀는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조건을 빼고 보더라도 꽤 매력 있는 여자였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매력에 매료된건지 같이 저녁 식사를 한 후, 나중에 또 만나자는 인사를 건넸다. 

 

남자와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모처럼 입는 정장이 불편했는지 들어오기가 무섭게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집에 불을 켜니 공허함이 느껴진다. 

 

"나도 빨리 누군가를 만나야 할텐데... 나의 반쪽은 어디에 있을까? "

 

피곤한지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털썩 앉은 그녀는, TV를 틀었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전에 ㅇㅇ동에서 변사체가 발견됐습니다. 변사체의 신원은 아직 조사중이며... "

"ㅇㅇ동이면 우리 동넨데? 맙소사, 나도 조심해야겠네... "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변사체라니! 그녀는 불안했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구나, 역시 여자 혼자 살기 위험한 세상이야. 그리고 채널을 돌려 다른 방송을 보던 그녀는 피곤한지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날, 그녀는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났다. 

 

"으음... 누구세요? "

"경찰입니다. "

"잠시만요... "

 

문을 열어보니 낯선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남자 한 명은 그녀에게 경찰임을 확인시켜 주고, 어제 뉴스에 나왔던 변사체 관련된 것을 물어봤다. 피해자와 아는 사이인지,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그 시각에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대답을 들은 두 남자는 돌아갔다. 

 

"휴우... 왜 하필 우리 동네야... 아침부터 불안하게시리... "

 

두 남자를 돌려보내고 누가 올까 문을 걸어잠근 그녀는, 아침을 먹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곰팡이가 피기 일보 직전인 식빵과 계란 몇 개, 그리고 물만이 있었다. 과일도, 야채도 없는 휑한 냉장고였다. 

 

"오는 김에 장 좀 볼 걸 그랬나... "

 

냉장고 다음으로 찬장을 뒤져보자, 라면 몇 개가 보였다. 일단 아침은 라면으로 때우고, 저녁에 장을 보기로 한 그녀는 찬장에서 라면 하나를 집어 끓였다. 

 

"이거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

 

막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들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 어~ 세아야! 응? 소개팅? 나도 가고 싶지... 근데 요즘 우리 동네에서 변사체 발견돼서, 나가기가 좀 그러네... 응, 알겠어. 그럼 나중에 보자~ "

 

모처럼만의 소개팅 기회였지만 그녀는 그것도 마다하고 라면을 마저 먹었다. 설거지 할 그릇은 귀찮은지 대충 싱크대에 던져넣고,컴퓨터를 켠 그녀는 인터넷에 접속했다. 들어가보니 메일이 꽤 많이 와 있었지만, 팔할이 스팸 메일이었다. 

 

"화끈한 언니들은 무슨... 나도 여자야, 임마. ...응? "

 

광고 쪽지들을 삭제하던 그녀는 한 기업체에서 보낸 메일을 발견했다. 구인 사이트에 올려놓은 것을 봤다며, 혹시 관심 있다면 면접을 볼 수 있겠냐는 얘기였다. 그녀는 메일을 읽고 첨부된 이력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마침 모아둔 돈도 떨어질 떄가 됐는데, 잘 됐네. 뭐... 이 정도 스펙이면 전화는 금방 오겠지? "

 

그녀의 말대로, 이력서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면접을 보러 올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그리고 그녀는 면접 약속을 잡은 뒤,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 

 

며칠 후, 그녀는 면접을 보러 갔다. 

 

"김혜연씨? "

"아, 네. "

"만나서 반갑습니다. "

 

면접관은 그녀가 보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뒤적이며 읽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서류를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고, 무거운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먼저 와 있던 다은 면접생들도 보였다. 

 

"보자... 지금 ㅇㅇ동에 사시네요? 가족들하고 같이 지내세요? "

"아뇨, 가족들은 미국에서 지내고, 저 혼자 따로 지내고 있어요. "

"가족들도 다 미국에서 지낸다라... 그럼 미국에서 지낼 수도 있었는데 왜 본인만 따로 지내시는건가요? "

"고등학교까지는 미국에서 다녔는데, 대학교를 한국에서 다니려고 일부러 한국으로 왔습니다. "

"그렇군요. 학교는 꽤 이름이 있는 덴데... 3년 전에 졸업하셨네요? 그럼 3년간 뭘 하면서 지내신건가요? "

"이력서도 쓰고, 자격증 공부랑 자기 계발도 틈틈이 했습니다. "

"그래요...? 흠... 그럼 다음 최ㅇㅇ씨... " 

 

서류를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면접관들이 면접생과 그들이 보냈던 서류를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다른 면접생들은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녀는 떨리는 기색 없이 침착하게 면접을 보고 있었다. 

 

"미국에서 지내셨다면 영어는 문제 없이 하시겠네요? "

"네. 어렸을 적부터 쭉 써왔습니다. "

"그렇군요... 경영학과 나오셨고요? "

"네. "

"전공을 경영학으로 선택하게 된 동기가 따로 있으신가요? "

"아버지가 미국에서 회사를 하시는데, 나중에 저에게 물려주시려고 생각중이셔서요. 회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경영학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그렇군요... "

 

면접을 마친 그녀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약속한 다음 회사를 나섰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떨지도 없고 침착하게 대답했던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꽤 호평이었다. 

 

"어, 혜연 씨네...? 혜연 씨! "

"아, 경필 씨! "

"여기는 무슨 일이예요? "

"아, 잠깐 이 회사에 볼일이 있어서요... 경필 씨는요? "

"비품 좀 사려고요.. 그럼 들어가세요~ "

"네, 나중에 봐요~ "

 

회사를 나서자마자 며칠 전에 만났던 남자와 만난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다. 

 

"형, 저 사람이예요? "

"응. "

"와~ 정말 한 미모 하시네... 근데 DF기업이 저 회사랑 뭐 연관이 있던가요? 업종이 완전 다른데...? "

"글쎄... 뭐 코웍이라도 하려는 모양인가 보지. "

 

집으로 돌아온 혜연은 문 앞에 놓인 카드를 발견했다. 

 

'누가 이런 카드를...? '

 

카드에는 벚나무와 아몬드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벚나무는 옅은 분홍색 꽃을 카드의 배경색마저 퇴색시킬 정도로 화려하게 피운 반면, 아몬드나무는 꽃이 하나도 피지 않은 가지만이 그려져 있었다. 

 

카드 안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었다. 카드를 집어든 그녀는, 벚꽃 그림이 마음에 들어 가지고 있기로 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공허함이 감도는 집이었다. 

 

"하아, 피곤해... 저녁은 뭐 먹지...? 이것도 인연이니까 밥 사달라고 할 걸 그랬나... "

 

장을 봐야겠다는 건 말뿐이었는지, 여전히 냉장고에는 곰팡이 핀 빵과 계란, 물이 전부였다. 어쩔 수 없는지 찬장을 열어봤지만, 라면도 떨어졌다. 

 

"장부터 봐야겠네... "

 

배고팠지만 비축해 둔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곰팡이 슨 빵을 꺼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그녀는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로 갔다. 오늘은 면접도 합격했으니 거하게 먹자고 결심한 그녀는, 삼겹살 한 근을 산 다음 수입 맥주 코너로 가 맥주 몇 개를 골랐다. 그리고 라면 5개들이 묶음 하나를 집어들고 계산을 마친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하얀 머리의 여자를 지나쳤다. 선명하게 붉은 눈에 하얀 머리라니, 알비노인가? 신경쓰였지만 배가 고프니 얼른 가자. 집으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뒤에서, 낯선 여자가 말을 건넸다. 

 

"자, 이제는 누구로 살아보고 싶어? "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간만에 삼겹살을 구웠다. 치이익, 고기 익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삼겹살 냄재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어느새 고기가 다 익자, 그녀는 맥주 한 캔을 깐 다음 삼겹살을 한 점 집어들었다. 

 

"이 얼마만에 먹는 고기냐... 아빠도 참,  미국에 있어도 송금 가능할텐데 용돈 한 번을 안 보내냐... 회사가 많이 어려운가? "

 

오랜만에 고기도 먹고 술도 들이키며 혼잣말로 푸념을 해 보지만, 그 푸념을 들어 줄 이는 없었다. 같이 지내는 가족도 없고, 초대할 만큼 가까이 사는 이도 없으니... 

 

"뭐, 그래도 이제 월급이라도 버니 다행이네. 돈 모아서 미국도 가고 해야지... "

"가고 싶어? "

"??"

 

분명히 집 문을 잠갔는데, 집 안에 낯선 여자가 있었다. 아까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여자였다. 

 

"여, 여긴 어떻게...? "

"크크... 네 세계에서 나는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네. 이제 그만, 네가 원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게 어때? 너는 김혜연이 아니잖아. "

"무슨 말이야? "

"김혜연은 니가 죽인, 이 동네에서 발견된 변사체 이름이야. 니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려면 자기 계발을 해, 타인을 죽여서 신분을 뒤집어쓰지 말고... 그건 사칭에 불과하지, 진짜 네가 아니거든. "

 

영문을 모르겠다. 이게 내가 아니라고...? 

 

"단순히 동명이인이겠지, 그리고 난 거짓말 한 적 없어. "

"아, 이래서 이 병 치료 못 한다고 했구나. "

"?!?!"

"이미 경찰이 너 잡으러 오고 있어. 감혜연의 변사체 현장에서 네 신분증을 발견했고 지문도 네 것과 일치해. 자, 이제는 손가락을 뜯어 고칠 차례인가? 아예 얼굴 가죽을 뜯지 그랬어...? "

"!!"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김미령씨! 경찰입니다! 문 여세요! "

"!!"

 

달각달각,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칠게 문을 발로 차기도 하고, 문고리를 잡아 돌리다가 안 열릴 것 같았는지 잠시 잠잠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고리가 아예 뜯겨져 나가며 문이 열렸다. 

 

"김미령 씨, 당신을 김혜연 씨 살해 및 사칭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

"난 아냐! 내가 김혜연이야! 난 김미령이 아니라고! "

"...... "

 

두 남자가 들이닥쳐 그녀의 손에 수갑을 채울 동안, 낯선 여자는 그녀를 비웃듯 쳐다볼 뿐이었다. 자신을 김혜연이라 믿은 김미령이라는 여자를. 

 

"네 세계는 이제 끝났어. 현실로 돌아오렴, 아가야. 형이 끝나면, 그때 네 목숨을 거두러 가 줄게. "

"난 아냐! 내가 김혜연이란 말이야! 이거 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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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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