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수사대] V. 검은 뱀의 정체

미식가라이츄 0 2,830

네잉버 블로그와 티스토리 블로그, 폴리포닉 월드 포럼에 비정기 연재중인 괴담수사대입니다. 

이게 두 번쨰 장편물이네요. 다음에는 시즌 6 들어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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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미기야에게 한 통의 메일이 왔다. 그것은 '요키히메'라는 아이디로 온 메일이었다. 

 

'저는 요키히메입니다. 일본에서 살고 있지요. 일전에 쟈카이 마을의 일을 해결해줬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됐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쟈카이 마을은 물론 그 일대가 뱀공주에 의해 황폐화됐습니다. 농작물은 하루하루 말라가며, 강물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이고, 사람들은 굶어죽고 있습니다. 괴담수사대에서 왔다 간 이후로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 한번 더 들러주셔서 뱀공주를 진정시켜주세요. 부디 부탁드립니다. 

 

일본에 도착할 예정인 시간을 알려주시면, 공항으로 가겠습니다. 

 

-요키히메'

 

"마을이... 황폐화됐다고? 뱀공주는 원래 토지신 아니었어? "

"뭐냐? "

"아, 파이로 씨. 의뢰 메일이 왔는데요... "

 

파이로도 요키히메가 보낸 메일을 읽었다. 

 

"그러고보니 뱀공주는 토지신이라고 하지 않았어? 거기서 무슨 마츠린가 뭔가 한다고... 아, 그러고 보니 그 때...... 실종된 사람, 인신공양하려다 실패하지 않았어? "

"아, 그러고보니... "

 

미기야는 사토나카 가의 일을 떠올렸다. 처음 유카리에게서 오빠인 유메지를 찾아달라는 말을 듣고 쟈카이 마을로 향했을 때만 해도, 히메마츠리에 찾아온 외부인은 극진히 대접한다는 걸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실상은, 마츠리 기간에 외부인을 바친다. 그것도 짐승의 옷을 입혀서. 

 

"그러고보니 유카리 씨가 의뢰를 했었죠. 유메지 씨가 쟈카이 마을로 갔다가 실종됐다고...... "

"그 떄 우리가 안 갔으면 죽을 뻔 했지. ...근데 그 녀석이 또 날뛰는건가? 토지신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날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

"원래 토지신을 모시는 이유는, 토지신이 그 지역의 땅을 돌보지 않으면 지력도 상하고, 작물 수확도 안 돼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일테니까요. "

"그런가... 그럼 또 일본으로 가야 돼? "

"네. 이번에는 넉넉한 캐리어로 준비했어요. "

"이럴 땐 나도 여권 하나 갖고 싶다...... "

 

미기야와 파이로가 일본에서 필요한 짐을 꾸리고 있을 때, 쿠로키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키츠네~ 어라, 두 분 어디 가세요? "

"일본에서 의뢰가 들어와서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

"키츠네 찾아 왔죠. "

"아, 키츠네 씨는 잠깐 뭐 좀 사러 나가셨어요. "

"그렇군요~ 그런데 일본에는 왜 가는거예요? "

"토지신이 미쳐 날뛰고 있댄다... "

"토지신...? 토지신이라... 혹시 마을에 뭐 문제 있어요? "

"네. 마을이 황폐화돼고 난리도 아니라고, 한번 와 달라고 하네요... "

"나 왔다! 어라, 누나? "

 

여행용 칫솔을 사러 갔던 키츠네가 돌아왔다. 

 

"키츠네, 너도 일본에 가니? "

"응. 누나도 갈려? "

"난 여기 수사대원도 아닌데 뭐하러.. "

"한명이라도 더 가면 좋지. 그리고 거기 토지신이 뭐랬더라... 아, 뱀. 뱀이었던가... "

"뱀공주. "

"맞다, 뱀공주... 그래서 나도 이번에 같이 가는거거든. "

"뱀을 토지신으로 모시는 곳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

"환영일세. "

'뭐... 현이 못 간다고 해서 티켓은 남았다만...... '

 

파이로와 쿠로키는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서로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정상 갈 수 없는 현과 라우드는 일행이 돌아올 동안 사무실을 보기로 했다. 

 

"그럼, 무사히 다녀오세요. "

"뭐, 설마 두 번 죽기야 하겠냐. "

"그... 그야 그렇지만...... "

"갔다와라. "

"네, 그럼 잘 부탁합니다. "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일행은 공항으로 갔다. 

 

"일본 가는 건 좋은데, 또 그 마을이라니... 영 찝찝하네.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

 

또 거기라니, 우리는 왜 가도 이런 데만 가냐. 파이로와 애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라뇨? 거기 전에 한 번 갔었어요? "

"아아... 실종된 오빠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있었거든. 그래서 쟈카이 마을에 갔다가, 토지신에게 인신공양될 뻔한 거 살려갖고 데려왔지. "

"세상에나... 토지신에게 인신공양이라니, 그거 최악인데요...? 토지신들은 같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

"물론 바칠 때는 짐승의 옷을 입혀서 인간인 줄 몰랐겠지. "

"으음...... "

 

같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먹지 않는 것이 토지신의 법칙이다. 그 법칙을 어기고 인신 공양을 하게 되면 재앙을 내릴 뿐 아니라, 토지신은 그 땅을 떠나게 된다. 이번에 마을이 황폐화 된 것도 그 탓일까...? 

 

잠시 후, 비행기가 일본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검고 긴 머리에 하늘빛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회색 뱀을 온 몸에 휘감고 있었다. 

 

"저기... 혹시 요키히메님 맞으신가요......? "

"아, 네. 제가 요키히메예요. "

"괴담수사대입니다. 메일 받고 찾아왔습니다. "

"아아, 고맙습니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부터 들어 주세요. "

"네. "

 

그녀는 일행을 근처 식당으로 데려왔다. 

 

"뱀이 참 크네요. "

"이 뱀은 제 분신이니까요. 요키히메라는 이름은 제 가명이예요. 저는 사실 키요히메랍니다. "

"으엑? 콜록- 키요히메라면 그... 안친을 종쨰 태워죽였다는...? "

 

요키히메의 본명을 들은 파이로는 하마터면 물을 풋, 뿜을 뻔 했다. 

 

"그야... 저를 배신했으니까요. 만나기로 철썩같이 약속해놓곤... 그보다, 쟈카이 마을에 요전에 방문하셨던 적 있었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었나요? "

"여동생의 의뢰였어요. 실종된 오빠를 찾아달라는... 그래서 그 마을로 갔는데, 토지신에게 그 사람을 바치려고 하더라고요. 그 마을의 토지신이 뱀공주였죠... "

"인신공양이라... 무릇 토지신은 같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을 입에 대서는 안되거늘...... "

"그래서 짐승의 옷을 입히고 죽여서 바쳤다고 하던데. 뭐, 어느 쪽이 됐건 사실을 안 이상 가만히 있지는 않았겠지... "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군요. "

 

마침 주문한 덮밥이 나왔다. 각자 수저를 나눠갖고 갓 나온 따끈따끈한 덮밥을 먹었다, 

 

"그런데 마을이 황폐화됐다는 건...? "

"말 그대로예요. 쟈카이 마을은 물론 그 일대의 마을까지, 뱀공주를 달래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황폐화 돼고 있어요. 작물이 자라지 못 할 정도로 지력을 소모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일대의 호수나 강물이 말라버렸죠. 그리고 인간들도 굶어죽고 있어요. "

"으음... 역시 한번 가 보는 게 좋겠어요. "

"그러고보니 소개해 줄 사람이 있었지요... 아, 여기예요. "

 

키요히메에게 인사를 건네고, 누군가가 자리에 앉았다. 은빛 머리에 등에는 거대한 호리병을 메고 있었다. 

 

"이쪽은 아마노테예요. 뱀공주의 신사를 모시다가 오래 전 신사를 떠났었죠. 그래도 뱀공주를 모시던 분이니 누구보다도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을거예요. "

"아마노테입니다. 반갑습니다. "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이쪽은 파이로고요. "

"난 키츠네야. 이쪽은 우리 누나 쿠로키. "

"난 야나기. "

"그나저나 쟈카이 마을이 황폐화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

"그 곳 인간들이 뱀공주를 달래려고, 인신공양을 했었대. "

"그런...... "

"아마도 뱀공주는 마을을 떠났거나, 아니면 분노한 상태로 그 땅에 머무르고 있는 게 분명해요. 일단 마을로 가 봐요. "

"네. "

 

덮밥을 다 먹은 일행은 키요히메의 배웅을 받고 쟈카이 마을로 향했다. 안그레도 황폐해진 탓인지, 마을로 가는 입구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여기 랜턴 없으면 못 가겠는데... "

"핸드폰에 손전등 기능 있잖아. "

"배터리가 없어요. "

"으음... 그럼 여우불이라도 밝혀드릴까요? "

"혼불이요? "

"네. 저는 구미호기때문에 여우불을 쓸 수 있거든요. "

"닿으면 위험할 것 같은데... "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

"잠시만요~ "

 

쿠로키의 치마 속 꼬리가 순식간에 아홉개가 되는가 싶더니, 꼬리 끝에 검은 불길이 일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불길을 등에 담아 아마노테에게 건넸다. 

 

"이 녀석, 구미호였구만? 거기다가 까만 여우불이라니... 보통내기는 아니네. "

 

아마노테가 등불을 받아들자, 말소리가 들렸다. 

 

"??"

"방금 무슨 소리가... "

"아, 실례했습니다. 등에 있는 호리병이 말 한거예요. "

"호리병이요? "

"이 호리병은 평범한 호리병이 아닌 요괴입니다. 신력을 가지고 있죠. 그렇기때문에 요괴나 귀신같은 존재를 알아본답니다. "

"그렇군요. "

 

버석버석, 마른 가지와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길을 따라 가 보니, 쟈카이 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나왔다. 

 

아마노테는 먼저,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신사로 향했다. 이전의 쟈카이 마을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는 뱀공주의 신사였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단말인가... 분명 신신당부 했을텐데...... "

"으엑... 이 머리들...... 미처 처리도 못 한 모양이군... "

 

여전히 땅바닥에는 두개골이 나뒹굴고 있었다. 지금까지 인신공양에 희생된 사람들의 머리였다. 파이로는 나뒹굴고 있는 두개골에게 조용히 목례를 건네곤 신사를 둘러봤다. 

 

분명 토지신의 신사일텐데, 히메마츠리 이외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모양인지 꽤 더럽고 낡아 있었다. 문간에 붙여 둔 부적 역시 낡아서 무슨 글자가 쓰여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관리 안 한 모양이네. "

"그러게요... "

"이런 주제에 공양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

 

신사를 둘러보던 쿠로키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그림자였지만, 다리는 인간이 아닌 뱀의 그것이었다. 

 

'저게 설마 뱀공주인가? '

 

그림자의 뒤를 좇아 살금살금 가 보니, 하반신이 검은 뱀의 몸통인 여자가 있었다. 머리는 틀어올려 묶은 상태였다. 공양물로 들어 온 모양인지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네. 공양물도 거들떠 보지 않다니... '

 

공물로 온 과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여자는 신사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신사는 정리를 안 한지 꽤 오래 돼서 너저분했을 터였다. 

'신사는 오래 전부터 아무도 관리를 안 했다고 하던데...? '

그녀는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마노테 씨, 이 곳을 떠나 있었던 게 언제부터였나요? "
"어느 순간 뱀공주가 이 곳을 떠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어요. 아마... 10~15년정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
"그럼 그 후로 뱀공주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는거죠? "
"네. 기운이 약하게나마 느껴지는 걸 보면 어디엔가 분명 계시겠지만, 확실히 어디에 있는 지는 모르죠. 아마 그 분도 제가 떠난 후 여기를 곧 떠나시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
"하긴,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고 인육을 공양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
"그런데 그건 왜...? "
"아, 그게... 저 신사 쪽에서 뱀공주를 본 것 같아서요. "
"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

쿠로키는 아마노테에게 자신이 본 것을 얘기했다. 검은 뱀의 몸통을 가진 여자가 신사에 있었던 것과, 공물로 바쳐진 과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뱀공주님은 검은 뱀이 아니예요. 그 분의 몸통은 하얀 색인데...? "
"그럼 저 뱀은 대체......? "
"일단 돌아가서 얘기해봐요. 키요히메라면 뭔가 알 지도 모르고,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별로 좋지 않을거에요. "
"네. "

아마노테는 쿠로키와 함께 키요히메를 찾아가, 쟈카이 마을에서 있었던 일과 쿠로키가 본 검은 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니까, 뱀공주는 원래 하얀 몸통을 가졌다는 얘기죠? 하지만 쿠로키 씨가 그 곳에서 본 건 검은 뱀이라는거고요.. "
"네. 신사에 있었던 게 뱀공주님이었다면 분명 제가 기척을 느꼈을 테고... 저는 신사를 관리하고 있었을 때 몇 번 뵌 적이 있어서 알고 있어요. "
"그렇다면 대체 그 검은 뱀은 뭘까요... 공양물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걸로도 해석할 수 있다지만... 심지어 폐허가 된 신사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했죠? "
"네. "
"아무래도 뭔가가 오래 전부터 잘못된 것 같아요. "
"음... 일단은 그 검은 뱀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한 번 알아볼게요. "
"네. 이쪽에서도 최대한 빨리 알아볼게요. "

두 사람은 일행이 있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막 두 사람이 돌아왔을 때, 저녁으로 냉모밀이 나왔다. 오자마자 배고팠는지 젓가락을 들고, 두 사람은 메밀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안 뻇어먹어. "
"미안해요, 배가 너무 고팠어요. "
"키요히메씨에게 다녀오셨나요? 키요히메씨는 뭐라세요? "
"글쎄요... 그 쪽에서도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다고 하셨어요. "
"아까 그 검은 뱀 말하는거냐? "
"네. 그 녀석은 진짜 뱀공주가 아니었어요. 뱀공주는 하얀 몸통인데, 그 뱀은 검은 색 몸통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
"흐음...... 쟈카이 마을의 뱀공주에 대해 연구한 논문도 없고...... 참 곤란하게 됐다. "

파이로는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편의점에서 사 온 초밥을 먹고 있었다. 

"...잠깐만, 유메지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
"유메지 씨요? "
"그 쪽으로 조사했다니까 뭔가 알 거 아냐. ...애초에 뱀공주가 떠난 것도 유메지의 일로 인해 뱀공주가 지금까지 자신을 달래기 위해 인육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았기 떄문 아냐? "
"그렇긴 하지만, 그 검은 뱀의 정체가 뭔지까지는 모르실걸요... 일단 제가 한 번 연락은 해 볼게요. "

미기야는 유메지와 통화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복잡한 상황과는 달리 별이 총총하게 떠 있는 밤이었다. 

"애시. "
"응? "
"괴이가 그 지방의 토지신을 따라하는 경우도 있어? "
"우소가미 외에는 그런 능력을 가진 녀석은 없어. 그런데 우소가미는 내가 먹어버렸잖아. "
"흠... 그럼 그 녀석은 대체 뭐지...? "
"뭔데 그래? "
"아까 쟈카이 마을에 갔을 때, 쿠로키 씨가 검은 뱀을 봤대. 그런데 아마노테의 말에 의하면 뱀공주는 하얀색 몸통을 가졌다는 거야. 토지신이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타락도 아니고 몸 색깔이 반전될 리없잖아. "
"음... 역시 뭔가 이상하네. 천사가 타락해서 악마가 되는 경우는 있다지만, 토지신은 그 지역의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숙명이고 주어진 형태를 가지고 태어나기 떄문에 그 색이 반전될 수는 없어. "

검은 뱀의 정체가 점점 미궁으로 빠져 갈 무렵, 유메지와 통화를 마친 미기야가 들어왔다. 

"뭐래냐? "
"유메지 씨도 잘은 모른대요. 하지만 뱀공주는 토지신이니만큼 반전되거나 할 가능성은 없고, 무언가가 뱀공주로 위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데요? "
"위장? "
"네. "
"인육 바치다 토지신에게 찍힌 마을이 뭐가 좋다고 위장을... 잠깐. "

미기야에게 한 마디 쏘아붙이려던 파이로는 불헌듯 뭔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인육 먹이는 거, 오래 전부터 했었다고 했지? 유메지 일 터지기 전까지. "
"네. 아까 낮에도 보셨잖아요, 두개골 널려있는 거. "
"이건 가설일 지도 모르지만... 그 인간들의 원한이 가짜 뱀공주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은데. "
"원한...이요? "
"한 인간의 원한은 하잘 것 없어보일 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의 원한이 한 곳에 모이면 마을에 저주 내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생각해 봐, 그냥 마을에 발을 들였을 뿐인데 원하지도 않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시신은 요리돼서 토지신한테 먹혔어. 기분이 어떻겠냐? "
"...... 그럼 거기서 죽은 사람들이 가짜 뱀공주를 만들어냈단말이예요? "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가능성은 있겠지. 그리고 뱀공주는 토지신이기떄문에 머무르는 곳의 땅을 좋은 기운으로 북돋워주지만, 가짜 뱀공주는 애초에 원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때문에 토지신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 하는거야. 그래서 마을이 황폐화된거고. "
"가만, 그럼 공양물은 어쨰서 안 받는거죠? "
"그야 그들의 목적은 나를 그렇게 만든 쟈카이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일테니까. 다른 마을 놈들이 달래봤자 소용 없어. 쟈카이 마을 사람들이 용서를 빌고 빌어도 모자랄 판인데? 그 녀석은 아마, 자기를 이렇게 만든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어야 직성이 풀릴걸? "
"......! "

그 곳에는 황폐해 진 신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두개골이 있었다. 그 두개골의 주인들은 전부, 쟈카이 마을에 발을 들였다가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희생되 뱀공주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사람들이었다. 

원하지도 않는 죽음을 맞이한 것도 억울한데, 그 시신은 뱀공주에게 바친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요리되어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황폐한 대지에 널려있는 두개골의 수 이상으로 많았다. 그 사람들의 망령은, 오직 한 가지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바로 '쟈카이 마을을 없애버리는 것'. 

수많은 사람들의 원한은 진작부터 모여 있었지만, 유메지의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토지신인 뱀공주가 땅에 머물러 있었기때문에 그나마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고, 마을도 어찌어찌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유메지의 일을 통해 자신이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뱀공주는 분노해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망자의 원한은 검은 뱀공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검은 뱀공주는 원한에 의해 탄생된 존재이기떄문에 토지신으로서의 기능은 없어, 마을을 황폐화시킬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목적은 자신들을 망자로 만든 쟈카이 마을에 대한 복수뿐이었기때문에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찌됐건 그 녀석은 원한이 모여 생겨난 괴물에 불과해. 토지신 따위가 아니지... "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모시고 있던데요... "
"그야 뱀공주님꼐서 얼굴을 잘 보여주려 하지 않기 떄문이죠. 저 외에는 어떤 사람들도 뱀공주님의 얼굴을 본 적 없었어요. "
"그래서 검은 뱀이 진짜 뱀공주인 줄 알고 모신 거구만... "

애초에 마을 사람들은, 아마노테를 제외하곤 뱀공주의 얼굴을 몰랐다. 그런 와중에 검은 뱀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검은 뱀을 진짜 뱀공주로 알고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그 검은 뱀이 공물을 받지 않은 이유는... 쟈카이 마을에게 복수하는 것 외에 목적이 없기 떄문인가요? "
"아니. 애초에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못 먹을걸? "
"...? 아무것도 못 먹어요? "
"그 과일은 토지신에게 바칠 공물이라 신성하게 해야 하거든. 망령이니 공물에 손을 댈 수 없어서 거들떠도 못 보는거야. 만지려고 했다간 온 몸이 타들어갈지도 모르지? "
"...... "

뱀공주가 떠난 토지에 홀연히 나타난 검은 뱀. 그리고 그녀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 뱀공주가 사라진 땅에 망자들이 만든 거짓된 신이 자리잡았다. 아마노테는 신사 부근의 땅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져버린 뱀공주의 행방 역시. 

"무슨 일이냐, 아마노테? 마을이 걱정되는 것이냐? "

그녀의 등 뒤에 멘 호리병은 그녀의 마음을 꿰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뱀공주님의 행방이 묘연해서 걱정이야. "
"음. 확실히 이 넓은 곳에서 뱀공주를 찾기란 쉽지 않지... 그래도 방법이 있을게다. 일단 그 녀석을 막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뱀공주를 찾아야지. "
"그래야지... 일단은 공주님을 찾는 게 먼저야. 녀석을 막는 건 그 다음이고... "

일단은 사라진 뱀공주를 찾는 게 먼저다. 그녀는 뭔가 결심한 듯 키요히메를 찾아갔다. 

"아, 아마노테 씨. 뭔가 알아내셨나요? "
"네. 그 녀석은... 뱀공주에게 바칠 제물로 희생된 망령들의 원한이 만들어낸 가짜 뱀이었어요. ...그래서 공물을 먹을 수 없었던거고요... "
"원한이... 가짜 뱀을 만들어낸다라...... 있을법한 일이죠... 당신은 그 녀석을 말리고 싶은거죠? "
"네... 하지만, 그 전에 뱀공주님을 찾아야 해요... 하지만 이 넓은 땅 어디에서 찾아야 할 지 난감하네요... "
"그거라면 걱정 말아요. 당신의 동료 중에, 뱀공주의 행방을 찾는 걸 도와줄 이가 있을거예요. "
"정말요? "
"네. 그나저나 검은 뱀이 망령이 만들어 낸 존재라니... 걱정이네요. 이러다가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지는 건 아닌지... "
"저도 걱정입니다. "
"일단 뱀공주부터 찾으세요. 그게 우선이예요. 뱀공주 없이 갔다간 녀석에게 공격당해서 위험할 수도 있어요. "
"네, 그럼 다음에... "

아마노테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뱀공주를 찾는 일을 도와 줄 동료라... 누굴까? '

다음 날. 아마노테는 어제 키요히메를 만나러 갔었던 것과 키요히메에게서 들은 것을 전부 이야기했다. 뱀공주를 찾아서 그 토지로 같이 가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중에 뱀공주를 찾아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우리 중에 뱀공주를 찾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요? "
"네. 그렇다고 하셨어요. "
"하지만 뱀공주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
"뱀공주 얼굴을 본 녀석이 있긴 하지. "
"무슨 말이예요? "
"왜 전에, 쟈카이 마을에서 외부인을 잡아서 인신 공양을 했었다고 했죠? 그 일 때문에 의뢰를 받아서 갔었다고. 그 때 애시가 뱀공주한테 그간 있었던 일을 다 찔렀거든... 잠깐만. "

파이로는 애시가 들어있는 거울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애시가 튀어나왔다. 

"웬일이야? "
"히익- 사, 사람이 거울에서 튀어나왔어??? "
"쿡쿡, 나는 인간의 형태를 한 괴이란다. 애초에 인간과는 다른 존재지... "
"괴이? 신기한 존재로군. 그나저나 너, 뱀공주를 만난 적 있다면서? "
"아아, 응. 그 인신공양, 내가 살짝 찔러주긴 했지만... 무슨 일인데 그래? "

파이로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애시에게 전부 얘기했다. 그 일 때문에 뱀공주가 땅을 떠난 것과, 그 토지에 검은 뱀이 나타난 것, 그리고 그 뱀의 정체와 뱀공주를 찾아야 한다는 것까지. 

"가만... 그 녀석, 애시가 먹어치우면 되는 거 아닌가? "
"미안하지만 난 인간의 원한따위는 먹어치우지 못 해.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괴이나 살아있는 것의 존재뿐이거든. 그 녀석은 살아있지 않은, 생명을 연기하는 가짜잖아? "
"그러냐... "
"여튼 뱀공주의 행방이 알고 싶은거지? 나도 바로는 찾기 힘들지만, 어디 있는지 대충은 알 수 있지. 토지신 사당이 있는 곳만 전부 뒤지면? "
"일본에 그런 데가 몇 개나 되는데 어느 세월에 다 뒤지고 앉아있냐;; "
"이 근방에 정 떨어져서 떠났으면 이 근방은 아닐테고, 그렇다고 해도 혼자서 바다 건너 멀리 가거나 하지는 않을 거 아냐. 그러니까 여기서 좀 떨어진 곳부터 찾아보면 되지. "
"듣고보니 맞는 말 같군요. "
"그럼 일단 이 근처에 토지신 사당이 있는 곳부터 알아보고 올게요. 여러분은 다른 있을 만한 곳을 찾아봐주세요. "
"오냐. "

미기야는 토지신의 사당이 있는 곳을 알아보러 갔고, 다른 사람들은 뱀공주가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근데... 뱀공주면 독에 면역인가? "
"웬만한 독에는 면역입니다. 다만 담배는 싫어해요. "
"독 능력자가 있으면 딱 좋은데... "
"독 능력자요? "
"어. 뱀공주는 독에 면역이니까 독을 쪼여도 멀쩡할 거 아녀. 거기다가 토지신이라면 자기가 머무는 땅에 독기가 스며들어도 정화를 하거나 하겠지. "
"그거 맞는 말이긴 하다만... 독가스를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너는 유령이니까 상관 없지만 키츠네씨나 쿠로키씨한테는 위험해. 그리고 아마노테씨도 살아있는 인간이고. "
"하긴, 살아있는 인간들은 독에 면역이 아니니까. "

독에 면역이라면 구분할 수 있겠지만 인간들이 독에 면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을텐데... 파이로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렇지! 그거야! "
"??"
"담배! 그 녀석은 담배를 싫어한댔지? "
"담배는 왜요? "
"담배는 요 앞 슈퍼만 가도 살 수 있잖아. 그 녀석이 있을만한 곳에 담배 연기를 피우는거야. 분명 녀석은 담배를 싫어하니까 어떻게든 하려고 나올 거란 말이지. "
"미기야한테 올 때 담배 좀 사 오라고 할까? "
"어. "

잠시 후, 애시의 연락을 받은 미기야가 담배 한 갑을 들고 돌아왔다. 

"여. 알아봤나? "
"네. 그나저나 파이로 씨, 죽은 사람이어도 담배는 안되는데요. "
"피우려고 산 거 아냐. 뱀공주를 찾는 데 쓸 거야. "
"참, 그리고 소개해 줄 분이 하나 있어요. 잠깐 들어오세요. 이 쪽이예요. "

미기야의 뒤를 따라 들어온 것은, 한쪽 눈을 붕대로 가린 여자였다. 보랏빛 머리에 녹색 눈이, 흔치 않은 외모였다. 그녀는 방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천천히 뜯어보고 있었다. 

"와카야마 카나씨예요. 토지신의 사당이 있는 곳을 조사하다가 만났는데, 이 분도 쟈카이 마을 출신이더라고요. "
"아, 그렇군요. 반가워요. 저는 뱀공주를 모시던 아마노테라고 합니다. "
"와캬아먀 카나예요. 쟈카이 마을의 토지가 황폐화 된 후로는 도쿄로 나와서 살고 있죠. "
"그렇군요... 저희는 사라진 뱀공주를 찾고 있습니다. 마을이 황폐화 된 건, 그 동안 살해당한 사람들의 원한이 만들어 낸 가짜 뱀공주때문이거든요... 그 녀석을 없애지 않으면, 마을은 계속해서 황폐화되고 말 거예요. "
"결국 그런 일이... "

카나는 모든 것을 예상한 듯한 말투였다. 

"그나저나 토지신의 사당이 있는 곳은 어디야? "
"이 근방에는 저 쪽 하나만 있는 것 같아요. 쟈카이 마을 외에는 거기가 유일해요. "
"그럼 그 쪽으로 가 볼까... "
"일단 그쪽으로 가 봐요. "

쟈카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토지신의 사당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좁고 가팔랐다. 심지어 사람이 오고 갈 일도 없는지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잡초가 무성했다. 

"다들 조심하세요. 길이 안 보여서 자칫 잘못하면 넘어질 수 있어요. "
"아무도 안 왔다간건가... 뭐야, 여기는? 토지신의 사당이 있는 거 맞아? "
"아무래도 신성한 곳이라 아무도 안 가는 모양이지. 그나저나 뱀공주의 기척이 느껴지니? "
"미약하게나마 느껴져요. "

아마노테는 산을 오르면서 미약하게나마 뱀공주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한동안 손을 놓았지만, 그녀는 뱀공주를 모시던 신사에 있던 무녀였다. 마을에 있었던 어느 누구보다도 가깝게 뱀공주를 모셨다. 그런 그녀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한 것도 뱀공주였기에, 그녀는 가장 마지막까지 뱀공주와 접해있었다. 

"틀림없어... 이건 뱀공주님의 기척이예요. "
"이 근방에 있는 모양이네. 야, 담배. "
"여기요. "

파이로는 미기야에게서 건네받은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혼불로 불을 붙이려고 했으나 불은 붙지 않았다. 

"뭐야, 이승의 물체에는 볼을 못 붙이는건가... 누구 라이터 있는 사람 없어? "
"한번 줘 보세요. "

파이로에게서 담배를 건네받은 쿠로키가 불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혼불로도 불은 붙지 않았다. 

"제 혼불로도 무리예요. "
"담배가 있는데 라이터를 뺴먹다니... 이래서는 뱀공주를 불러낼 방법이 없잖아. "
"담배...? 담배는 왜요? "
"뱀공주가 담배를 싫어한대서, 그 냄새로 어떻게든 해 볼 요량이었어. "
"그럼 제가 도와드릴까요? 저, 이래뵈도 독 능력자라서요. 생물에게 독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죠. "
"정말요? 그럼 담배 냄새 좀 부탁해도 될까요? "
"그 정도는 일도 아니죠. 잠시만요. "

카나가 주머니에서 풍선을 꺼내 훅, 하고 불었다. 그녀는 적당히 부푼 풍선의 주둥이를 막고 신사의 입구로 살금살금 다가가, 입구에서 풍선의 주둥이를 놓았다. 풍선이 부르르, 소리를 내며 날아감과 동시에 담배 냄새가 풍겼다. 

-콜록, 콜록, 대체 어떤 녀석이야! 신사 앞에서 금연이랬잖아! 

그리고 신사에서 하얀 뱀이 나왔다. 그것은, 쿠로키가 이전에 보았던 것처럼 상반신은 인간의 형태였지만 하반신은 하얀 뱀의 몸통이었다. 그녀는 신사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람 빠진 풍선을 발견하곤, 이내 수사대 일행을 찾았다. 

"네놈들이 여기서 담배 피웠냐? "
"정확히는 냄새를 풍긴거지만. 애시, 이 녀석이 뱀공주냐? "
"아아, 응. 오랜만이군요, 뱀공주씨? "
"어라, 네녀석은...? 쟈카이 마을에서 봤던 녀석이구나. "
"뱀공주님, 여기 계셨군요. "

애시에 이어서 자신을 모시던 아마노테까지 나타나자, 뱀공주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인간들에게는 행방도 알리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나타난거지? 

"아마노테까지...? 네녀석들, 대체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게냐? 게다가 여우들까지... 도대체 네놈들은 정체가 뭐냐? 내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 온 것도 그렇고... "
"여기 있다는 건 아마노테씨 덕분에 알게 된 거지만... 어쨌든, 이 분이 진짜 뱀공주님이시죠? "
"네. 확실히 이 분이 진짜 뱀공주님이십니다. "

뱀공주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에게도 행방을 알린 적 없는데 단번에 찾아온 것도 그렇지만, 분명 뱀공주인 자신을 보고도 진짜 뱀공주가 맞냐는 질문을 하다니? 거기다가 자신이 있는 신사에서 담배 냄새를 풍긴 녀석들이었다. 

"내가 뱀공주다만, 그건 왜 묻느냐? "
"공주님, 지금 마을이 위험에 빠졌습니다. 공주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
"애초에 토지신인 이 몸에게 인신 공양을 하는 놈들은 도와주고 싶지도 않다만... "
"카나 양, 또 다시 담배 냄새 좀... "
"돼, 돼, 됐다! 담배 냄새는 사양이니라. 그 풍선을 냉큼 치우지 못하겠느냐! "
"우릴 도와준다고 약속하면. "
"그래, 약속하마. "

카나는 막 꺼내들었던 풍선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내 도움이 필요하다니, 대체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이나 좀 들어보자. 따라들 오거라. "

뱀공주는 일행을 자신이 거처하는 신사로 안내했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아 여의치 않지만, 일단 들어오거라. "

올라올 때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렇지만, 신사는 매우 더러웠다. 아무도 관리를 하지 않는건지 썩어가는 문에, 바람에 날렸는지 끊어진 종이들이 보였다. 

"그래... 가짜 뱀공주가 나타나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더냐? "
"문자 그대로야. 쟈카이 마을에서 죽은 외지인들의 원한이, 가짜 뱀공주를 만들어냈어... 그리고 그 마을은 물론 주변 마을까지 황폐화됐지. 거기다가 그 녀석이 바라는 건 단 한 가지야. 바로, 너에게 제물로 바친다며 자신들을 살해한 마을 사람들의 몰살. "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지. 그것은 죄에 대한 벌이니라. "
"뭐, 인과응보긴 하죠. 원래 토지신은 인신 공양을 받지 않죠? 같은 흙에서 난 존재라서인가요? "
"그렇지. "

뱀공주는 후욱,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 녀석들은 토지신의 뱀을 죽였다. 그리고 그게 이 몸이었지... 나는 단지 하얀 뱀이라는 이유로 놈들의 조상에게서 죽임당하고, 그것때문에 인간들을 죽이려고 했었어. 그러자 인간들은 나를 달래려고 공물을 보냈지. 처음에는 짐승의 고기였어. 

허나 어느 순간부터 공물에서 흙맛이 나더구나. 검은 여우, 네가 말한 대로 우리는 인간을 같은 흙에서 태어난 존재로 보기 떄문에 먹지 않는다. 그래서 짐승의 고기와 인간의 고기를 구별할 수 있지... 

처음에 흙맛이 났을 때는 흙이 묻어서 그런 것인가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기에서 흙맛이 나더군. 인간들에게 얘기했지만 그 녀석들은 얼버무릴 뿐이었다. ...뭐, 어쨌든 공물은 공물이니 나는 그 녀석들에게 은혜를 내렸노라. 

그리고 그러다가, 이 녀석을 만난 거지. "

뱀공주는 애시를 가리켰다. 그것은, 유메지의 일로 인해 수사대가 왔을 때였다. 외부인을 잡아서 뱀공주에게 제물로 바쳐왔었던 것을 애시가 말했던 그 때. 

"나는 그 떄 매우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고기에서 흙맛이 났던 이유는, 인간들의 고기였기 떄문이었다니. 그리고 나는 내가 죽임당했던 신사로 가 봤지. 거기에는... 

인간의 머리들이 나뒹굴고, 인간의 뼈가 나뒹굴었으며, 아직 흙으로 돌아가지 못 한 육신들이 잠들어 있었느니라. "
"!!"
"근데 단순히 그런 정도면 그냥 벌을 내리면 장땡 아닌가? 왜 마을을 떠났던거냐? "
"물론 네녀석 말대로 벌만 주고 끝났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느니라... "

뱀공주는 아직도 분노가 가시지 않는지,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 녀석들은 아예 이전 마을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느니라. 아마노테만 신사를 관리하러 가끔 올 뿐이었지. 그 후 놈들이 왜 지금까지 공양을 바쳤는가를 알게 된 건, 아마노테가 신사를 관리한 후였다. 아마 놈들은, 인간들의 잔해를 치우려고 온 모양이겠지만... 나는 그 때 분명히 들었느니라. 

"이 일,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거지? "
"조금만 기다려. 곧 녀석이 벌을 내릴 거야. 그렇게 된다면 그걸 빌미로, 녀석에게 주는 공물도 없앨 수 있어. "
"휴우... 어째서 토지신의 뱀을 죽여서 우리만 이 고생인거냐고. "
"맞아. 그놈의 전통, 전통... 쯧. "
"그나저나 녀석이 인간을 공양받은 걸 눈치채면 어쩌지? "
"설마 금방 눈치 채겠어? 몇 번이나 공양했지만 그 떄마다 잘 먹던데. "
"그렇겠지...? "

그 녀석들은, 내가 징벌을 내리면 그걸 빌미로 나에게 더 이상 공양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일부러 인간을 공양하고 벌을 내리기를 기다렸던게지... "
"제를 지낼 때마다 귀찮아하고 있는 건 보였지만 그 정도였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 "
"심지어 그 녀석들의 조상이 나를 죽여 이렇게 만들었느니라. "
"그래서 그 녀석들이 제를 주도적으로 했던 거로군? "
"카나 씨는 쟈카이 마을 출신이었죠? 그럼 뱀공주에게 올리는 제에 대해서 가르쳐주세요. "
"저도 마을을 나온 지 오래 돼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

카나는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뱀공주에게 올리는 제에는 공물로 그 해 수확한 과일과 고기가 올라가요. 그리고 그 공물을 준비하는 것은, 조상이 토지신의 뱀을 죽였다고 하는 가문... 그러니까, 미야시(宮氏)가에서 주도하곤 했죠. 어릴 적부터 쭉 그래왔고요. 

공물을 준비하는 건 미야시 가의 장남이나 장녀가 해야 하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이 공물을 만지거나 하면 부정탄다고 손도 못 대게 해요. 남자는 고기를 준비하고, 여자는 과일을 맡는데, 만약 여자 형제가 없다면 엄마가 해야 하고, 엄마도 없다면 차남이 해야 해요. 

과일은 직접 농사를 지은 것으로 해야 하며, 고기 역시 공물을 올리는 자가 직접 짐승을 도축해야 해요. 그래서 지금껏 산짐승을 사냥해서 바쳤던 거고요. 인신공양도 금기시 됐지만, 외지인의 손을 탄 공물을 바치는 것 역시 부정탄다고 금지했죠. "
"그렇군요... "
"그렇게 제를 올리고 나면, 다음 해 농사도 항상 풍년이었죠. "
"본질은 토지신이니까. "

제를 더 이상 지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인신공양을 했다, 그것도 징벌을 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쟈카이 마을을 떠났고, 그 후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없어지자 가짜 뱀공주가 생겨난 것이다. 

"아마도 그 뱀공주는 지금까지 자신을 죽여온 미야시 가의 장남, 그 녀석의 피를 원할 것이다. 너는 쟈카이 마을 출신이니, 그 녀석이 누구인지 아느냐? "
"미야시 카케루. 그 녀석이었어요... 쌍둥이 동생으로 미야시 슈우가 있죠. "
"카케루라... "

뱀공주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신사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삐걱, 밖에 바람이 부는지 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 무렵, 그녀는 눈을 뜨고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모두를 둘러봤다. 

"가짜 뱀공주는 그 녀석을 노리는 것이니라. 자신들을 나에게 마치겠다고 죽여온 그 녀석을 말이다. "
"그럼... 그 녀석의 목적은 카케루라는건가요? "
"그렇다. 지금쯤 그 녀석은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케루라는 녀석의 피를 노릴 것이니라. 혹여 속이기 위해 쌍둥이 동생을 제물로 바친다면, 녀석은 길길이 날뛰어 모든 이의 생명을 거둘 것이야... "
"그 녀석을 막을 다른 방법은 없나? 원한을 정화한다던가... "
"네녀석도 유령이니 알 것 아니냐. 억울하게 죽은 자가, 그것도 자기 시체가 훼손된 자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설령 그런 방법이 있다 한들 들을 것 같으냐? 그렇게 해서 진정됐으면 너희들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것이야. "
"...... "
"신사가 있던 곳이 황폐해 진 이유는 죽어서도 시체가 훼손되어 편히 눈을 감지 못 한 그들의 억울함이, 저주가 되었기 떄문이니라. 내가 있는 동안은 토지신에 눌려서 나오지 못 했던 저주가, 내가 그 땅을 떠난 후에 한꺼번에 나온 것이니라. "

파이로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죽일 수 밖에 없는건가. 그녀 역시 시체를 잃어버리고 미쳐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검은 뱀도 마찬가지라면, 원한을 풀어줄 수 없다면 차라리 이승에서 사라지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녀석들은 단지 제를 지내기 싫어서 이유없이 인간들을 죽였고, 그것때문에 쌓여버린 원한이 벌이 되어 돌아가는 것이다. "
"...그렇다면 최후에는, 내가 직접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겠군... 나도 그런 놈들과 같은 부류였어서 잘 알지... 그들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

파이로는 등 뒤의 가윗날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집에서 죽었어. 오래 전에 죽었지만 시체가 파묻혀 있었고, 그걸 어떤 녀석이 태워버려서 시신이 없지. ...그리고 내 시체를 파묻은 녀석에 대한 원한으로 인간들을 죽여버렸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인간이 싫어서. ...그 녀석도 그런 거라면, 그 원한마저도 남지 않게 이승을 떠나게 해 주지. "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로, 최악의 순간이 온다면 녀석을 혼불로 태워버리리라. 그 원한마저 전부 다.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은 따라오고, 인간의 피를 묻힌 자는 편히 살 수 없느니라.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미 죽은 자인 너는 그 이치를 따르지 않겠지만,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그렇지... "
"공주님, 쟈카이 마을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요? "
"나는 이제 이 곳이 편하느니라. 그리고 내가 간다 한 들 뭐가 달라지겠느냐? 인간들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는 금방 잊어버리는데. "
"...... "
"대신 너희에게 그 녀석과 맞설 수 있는 무언가를 주마. "

뱀공주는 낡은 상자에서 부채와 대롱을 꺼냈다. 가늘고 무늬가 군데군데 있는 대롱은, 뚜껑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부채에는 곡옥 두 개가 달려있었다. 

"이것은 대롱여우니라. 이 곳에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지만, 이제 주인을 찾은 것 같구나. 그리고 이것은 아마키츠네오우기(天狐扇)이니라. 역시 내가 여기 왔을 때 발견한 것이니라. 하나씩 받거라. "

그리고 뱀공주는 대롱을 키츠네에게, 부채를 쿠로키에게 건넸다. 

"그 대롱여우는 땅의 힘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리고 그 부채에는 바람의 힘이 들어있지. 아마 녀석을 무찌르는 데 도움이 될게다. ...그럼, 녀석을 진정시켜주게. "
"...뭐, 네녀석이 돌아가지 않겠다는데 억지로 끌고 가지는 않을게. 그 녀석, 우리가 꼭 해결할게. "

일행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저녁나절이었다. 하룻밤 머물 여관을 찾고, 여관에 들어간 일행은 다음 날 쟈카이 마을로 향할 것을 약속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카나 씨, 이 마을은 오랜만에 오죠? "
"네. ...그런데 상황이 떠나기 전보다 더 안 좋아졌네요. 뱀공주의 말대로, 녀석이 카케루의 피를 노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 "
"...... "

마을은 여전히 조용했다. 몇몇 사람들만이 남고, 대부분이 마을을 떠났다. 군데군데 빈 집이 보이고, 말라 죽어가는 작물들도 보였다. 그 중에서도 그나마 크고 번듯한 집 앞으로 가자, 카나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마당이 보였지만, 마당에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카케루 있어? "
"어라, 너는... 카나? 마을을 떠났다더니... 여긴 웬일이야? "
"마을 일을 해결해 줄 사람들을 데리고 왔어. "

마당을 쓸던 카케루는 카나를 알아보곤 놀란 듯 비질을 하던 손을 놓았다. 

"네녀석이 미야시 카케루냐? "
"그런데요...? "
"이 녀석이 그 녀석이로군. 가짜가 노리는 녀석... "
"......? "

그 때, 집 안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카케루, 시간이 됐다. 가자. "
"벌써 그렇게... "
"잠깐, 너희들은 누군데 이 녀석을 데려가는거지? "
"뱀공주님이 제물로 이 녀석을 바치라는 계시를 내리셨어. 이 녀석을 바치지 않으면, 마을은... "
"...... 아무래도 녀석이 본격적으로 나선 듯 하군. "

파이로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을 때, 카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집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의 일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상하네. 카케루는 나와 면식이 없을 텐데, 왜 내 이름을 알지? '

"카나, 가자. 녀석을 무찌르려면 우리도 가야지. "
"아, 네. "

일행도 마을 사람들을 따라 신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제보다 한층 음침해진 신사 앞에, 사람들은 제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까 데려간 카케루의 눈을 가리고 제단 위에 눕혔다. 

"이걸로 마을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면, 네 아버지도 기뻐하실거다. "
"...... "

그리고 잠시 후, 신사에서 검은 뱀이 기어나왔다. 그 뱀은 제단 앞으로 오자마자 여자로 변신하더니, 제단 위에 누워있는 카케루를 찬찬히 뜯어보곤 잘 드는 칼로 가슴께를 찔렀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내심 안심한 눈치였다. 아, 이제 우리는 괜찮을거야. 하지만 카케루를 찔렀던 여자는 칼을 들고 제단 옆에 서 있던 어린 아이를 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고기를 해체하듯 자르고 있었다. 

"고, 공주님? 어째서...? 당신이 원하는 제물은 미야시 카케루가 아니었습니까? "
"감히 나를 속이려 들어? 나는 미야시 슈우가 아닌 미야시 카케루를 원했느니라! 그런데 네놈들은... 네놈들은!!! 나를 이렇게 만든 자를 데려오란 말이야! "
"!!"

카나는 풍선에 담배 냄새를 담아 터뜨렸다. 검은 뱀이 담배 냄새때문에 물러난 사이, 그녀는 제단에 올려진 슈우를 내리고 어린아이의 잔해와 칼을 멀리 치웠다. 

"맞아. 미야시 카케루는 나를 모르지. 나와 면식이 있는 미야시 가의 아들은 미야시 슈우 뿐이었어. 마을에서 유일한 초록 눈인 나를 보고도 같이 놀아줬던 건, 나를 알고 있었던 건 슈우였지 카키루가 아니었어... "
"...쌍둥이였길래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
"그럴 리가...! 미야시 당주가 그런 짓을 할 리가...! "
"멍청한 인간 같으니. 대를 이어야 하는 장남을, 아무리 마을을 위해서라지만 순순히 줄 리가 없잖아. ...덕분에 더럽게 골치아파졌군... "

파이로는 가윗날을 꺼내 검은 뱀에게 들이댔다. 

"네놈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어. 네녀석은, 여기서 죽은 사람들의 원한이 모인 집합체. 즉, 가짜 뱀공주다. 카케루를 원하는 이유는, 그 녀석이 너희들을 죽였기 때문이 아닌가? "
"저 뱀공주가 가짜라고? "
"그걸 어떻게 증명할 셈이지? "
"하여튼 바보같아들... 너희들, 이 무녀를 모르겠나? 뱀공주의 신사를 관리하던 아마노테다. "

마을 사람들은 아마노테를 알아보고 잠시 멈칫했다. 파이로는 여전히 가윗날을 검은 뱀에게 겨눈 채로 말을 이었다. 

"그녀에게서 들었지, 진짜 뱀공주는 하얀 뱀이라는 걸... 그리고 네놈들이 속여 이 땅을 떠난 뱀공주를 직접 만난 결과, 미야시 카케루라는 자가 뱀공주에게 지내는 제를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인간을 바쳤다는 것과 그 때 죽은 인간들의 원한이 모여 생긴 집합체라는 걸. "
"......! "
"카케루... 그 녀석을 찾아야 해! "
"그 녀석때문에 우리 마을이 이렇게 된 거라고! "
"늦었어. 이미 저 녀석, 미쳐 날뛰고 있으니까. 더 이상 피 보기 싫으면, 저리 가 있는 게 좋을걸? 어이, 미기야! 담배 냄새가 약해지고 있어! 준비해라! "
"네! "

담배 냄새가 옅어졌는지 마을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검은 뱀을, 파이로가 가윗날로 막아섰다. 동시에 미기야의 손에서 한 줄기 푸른 번개가 나와 검은 뱀을 맞추자, 뱀이 움찔, 하면서 물러났다. 

"나이스 샷. "
"지금 니 샷 감상할 떄 아니거든? "
"저도 알거든요? 한번 더 갑니다! "
"이번엔 확실히 태워주마. "

푸른 불길이 이는 가윗날을 피하려던 검은 뱀은, 또 다시 번개를 맞았다. 그리고 파이로의 가윗날에 어린 푸른 불꽃이 뱀에 닿으려던 찰나... 

"!!"
"이런...! "

뱀은 그 자리에서 신사로 도망쳤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낭자한 피와 칼, 그리고 공물로 준비했던 과일과 제단이었다. 제단에 묻어있던 피와 그 옆의 피 묻은 칼이,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슈우, 괜찮아? "
"그렇게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 ...그나저나 어떻게 된... "
"어리석은 녀석, 네놈이 원혼의 화를 부추겼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
"아버지... 아버지가...... 나보고 형 대신에 가 달라고...... 형도, 간곡히 부탁했어... 형이 유일한 아버지의 혈족이고... 나는, 양아들이었다고... 아니, 애초에 이럴 목적으로 입양한거였다고...... "
"...이럴 목적...? 그렇다는 건, 미야시 가의 당주가 애초에 인신공양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건가...? "

충격을 받았는지 마을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애초에 제를 주도하던 당주가 인신공양을 계획하고 있었단 말인가? 거기다가 일이 잘못되면 제물로 쓸 목적으로, 카케루와 닮은 아이를 입양까지 했단 말인가. 

충격받았던 건 카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케루와 달리, 슈우는 마을에서 유일한 그녀의 친구였다. 그녀가 마을을 떠나면서 유일하게 걱정했던 또래가 슈우였다. 그런 슈우를, 목적을 위해서 애초에 들인 거였다니? 

"실패... 한 것 같네, 아버지는... "
"슈우. 일어나, 치료하면 금방 나을 수 있을거야. 어서 병원으로... "
"아냐... 카나. 난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도, 실패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죽임당할거야... 살아서 돌아올 생각은 말라고 했으니...... "

슈우는 손을 뻗어 카나의 손을 잡았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따뜻했다. 슈우의 체온이 카나에게 전해졌다. 

"카나... 너는 어떠한 독이라도... 만들 수 있다고 했지......? 그럼... 나... 이만... 이만 잠들고싶어... 어차피... 어차피 돌아가도 죽을 거라면... "
"안돼, 슈우... 정신 차려! 병원으로 가면... 그깟 당주 녀석... 다시는 마을로 안 돌아가면 그만이야! "
"아냐, 카나... "

슈우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카케루의 피가 목적이었어... 애초에...... 목적을 얻지 못 하고 도망까지 쳤으니... 아버지... 아버지가... 알아채는 건... 시간 문제야... 마을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도...... 언젠간 알게 될거야... 그러면 너까지... 너까지 위험해져... 카나... "
"...... "

잠시 눈을 감은 카나는, 무언가 굳은 결심을 한 듯 풍선을 불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슈우의 입에 물렸다. 안에 있는 공기가 들어가자 괴로워하던 슈우는, 이내 마을 사람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당주... 당신을 절대... 이 마을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거야... "
"...... "

모든 사람들이 무거운 침묵을 이어가는 와중에, 그 곳에서 웃고 있는 건, 잠든 듯이 죽어있는 슈우 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당주를 용서하지 않으리라,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호미로 막으려다 가래로도 못 막을 꼴이 났군. 아니, 애초에 호미도 아닌 다른 걸로 먹으려고 작정하다가 이 사단이 났지... "

파이로는 낮게 중얼거리고 땅바닥에 박혀 있던 가윗날을 뽑아들었다. 

"신사로 간다. 그 녀석은 거기서 부상을 회복하고 다음 기회를 노릴 게 분명해. "
"하지만, 우리 마을의 일에 외지인을 희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건, 카케루를 찾아서 제물로 바치면 해결 될 일이예요. "
"찾는 거야 쉽겠지. 찾아서 어떻게 데려 올 셈이지?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싫어서, 제를 더 이상 지내기 싫어서 신까지 속이려고 했던 녀석을 무슨 수로 막을건데? "
"...... "
"이미 미쳐 날뛰는 놈을 막을 수 있는 건 우리뿐이야. 우리라도 나서지 않으면, 네놈들도 죽어. 다들 신사로 간다! "

그녀는 일행과 함께 신사로 향했다. 이번에야말로, 그 검은 뱀을 불태워버리리라. 그녀의 눈은 분노로 가득했다. 

"너희들은 못 보던 얼굴이군? "

신사로 가던 일행은 하얀옷의 여자를 만났다. 파이로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신과 동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해를 끼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신사에 가는 길이지? 그 녀석과 싸우러...? "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 "
"오래 전부터 여기를 떠돌아다니던 지박령이야. 망할 뱀공주 녀석때문에, 마을이 황폐화돼고... 하필 몸이 약했던 탓에 죽어버렸지. ...네 녀석들, 아주 좋은 걸 가지고 있군? "
"이 대롱 말하는거야? 신사에 있던 대롱여우라던데...? "
"땅과 바람의 힘을 가진 신기라... 역시, 그 녀석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군. 또 희생자가 나온 것 같은데, 녀석들의 원한을 꼭 풀어주길 바래. "
"바라던 바야. "

이윽고 일행은 검은 뱀이 있는 신사에 도착했다. 

"카나, 넌 뒤로 돌아가서 녀석이 도망칠 것 같으면 신사 뒤에서 담배 냄새를 풍겨. 내가 신호를 줄게. "
"네. "
"그 자식, 기필코 태워버리겠어... "

신사에 도착하니, 검은 뱀이 몸을 회복이라도 하려는 듯 웅크리고 있었다. 그 뒤로 카나가 들어가 풍선을 만들어 두고 있었고, 키츠네는 대롱 여우를 꺼냈다. 여우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신사를 중심으로 한바퀴 빙글 돌자, 땅이 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 녀석, 보통 내기는 아닌 것 같네. 땅의 힘을 가지고 있다더니... "
"그러게. ...기껏 도망친다는 게 여기였냐? 역시, 네놈은... "
"네녀석들... 대체 여기는 어떻게 온 거지? "
"말했잖냐, 나도 네놈과 같은 부류라고. 그리고 가짜일지언정 형태는 토지신인데 니가 여기 말고 갈 데가 더 있나? "
"치잇... "

뱀이 또아리를 틀고 뒤로 물러나자, 파이로는 카나를 불렀다. 카나가 미리 불어서 막아 둔 풍선의 입구를 열자, 뒤에서부터 담배 냄새가 풍겨나오기 시작했다. 뒤로 도망치려던 뱀은 궁지에 몰렸다. 

"또 도망칠까봐 미리 손을 써뒀지. 이제 저승에서 편히 쉬도록 할까? "
"네놈들...! "

뱀이 또아리를 틀고 몸통을 곧게 세우자, 상반신이 여자의 형태로 변했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독기를 뿜었지만, 그럴 떄마다 독기는 무언가에 막혀 퍼지지 못 하고 뱀의 주변에 안개처럼 축적될 뿐이었다. 

"어라, 결계를 만든 건가...? "
"그런 모양이예요. 녀석이 힘을 쓰지 못 하고 있어요. "
"대체 무슨 짓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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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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