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수사대-Laplace's riddle

국내산라이츄 0 2,331
<블로그에 연재중인 괴담수사대입니다. 최초 장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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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유키나미 미기야. 당신은 합격했습니다. 그 동안 제 정체를 숨겨오면서 여러 유능한 탐정들을 시험해봤지만, 당신과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역시, 당신은 남다르군요. "

라플라스는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천하의 난제신인 당신이 왜 이런 일을 하는거지? "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여러분은 제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셔야 합니다. "
"미국이요? "
"네. 미국에 가셔서,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로 가세요. 가서 아인 가로아, 드라이 가로아를 찾아가셔서 라플라스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 됩니다. "
"아인, 드라이... 2는 어디 간 건가? "
"네, 우리는 사라진 2를 찾아야 합니다. 사실 두 형제의 사이에 츠바이 가로아라는 여자가 있었지만 현재 실종된 상태입니다. 두 형제는, 실종된 자신의 누이 츠바이 가로아를 찾기 위해 저에게 부탁을 했었죠. 저는 두 사람의 부탁을 들어 줄 유능한 탐정을 찾기 위해 모든 탐정들을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

파이로가 반쯤 농담조로 말했던 게 의뢰 내용이었다. 사라진 2를 찾아라. 반쯤 농이었는데 그게 의뢰라니, 말을 꺼냈던 파이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으로 간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무리일 것 같은데... 일단 오늘부터 준비를 해 보자. "
"네. "
"참. 그리고, 이번 의뢰에 필요하실 겁니다. "

라플라스는 테이블에 작은 회중시계를 내려놓았다. 회색빛의 빛 바랜 회중시계는, 시계줄이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꽤 고급스러운 시계줄을 쓴 것 같지만, 안은 평범한 시계였다. 로켓과 같이 생겼지만 사진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았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회중시계입니다. 이 회중시계를 가지고 있으면, 크로노스의 힘을 빌어 시간대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
"크로노스......? "
"대체 어떤 사건이길래 크로노스의 회중시계까지... "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밑바닥에서부터 여러분이 알아가야 하죠. 저희는 필요하면 권능을 빌려주는 정도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
"...알겠다. 일단 미국으로 가서 가로아 형제를 찾아보면 되는거지? "
"네.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이 체스말을 사용해주세요. "

라플라스는 까만 체스말을 건넸다. 그것은 블랙 퀸이었다. 흔한 목재로 만든 것 같지는 않은, 꽤 고급스러운 체스말이었다.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
"네. 다음에 뵙죠. "

라플라스가 돌아가고, 미기야와 파이로는 미국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근데... 유령도 여권이 필요한가요...? "
"니 가방에 묻어서 가면 될 것 같은데? 애시는 거울 안에 있으면 될 거고... 라우드랑 현한테 연락해서 준비하라고 해. "
"네. "

며칠 후.

일행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파이로는 미기야의 가방으로 들어가고, 애시는 거울에 들어간 채로 짐을 부쳤다. 나머지 셋은 비행기를 타고, 가로아 형제가 있는 곳을 향해 갔다. 꽤 오랜 시간을 날아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파이로는 갑갑했는지 가방 밖으로 나왔다.

"내가 차라리 여권을 끊고 말지. 어우... 깝깝해. "
"후훗, 나는 거울 안이 집이니까 상관 없지만. "
"부럽수. "
"아무튼... 가로아 형제를 찾아가라고 했지? "
"네. 흐음... "

다시 국내선을 타고 세인트 루이스로 가긴 했지만, 가로아 형제를 어떻게 찾아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여기서 가로아 형제를 어떻게 찾죠... "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은데... 잠깐만요. "

근처 가게에 들어갔던 현이 곧 나왔다.

"파쿠르를 하는 사람을 찾아가라는데요. 둘 다 취미가 파쿠르인가봐요. "
"파쿠르...? "
"왜, 야마카시라고 하는 거 있잖아. 그거 원래 이름이 파쿠르야. "
"아... "

일행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파쿠르를 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공원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공원 이곳저곳을 종횡무진하는 두 사람이 보였다. 두 사람은 햇빛에 그을린 것 처럼 까무잡잡한 피부에, 몸 이곳저곳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색은 달랐지만 비니를 쓰고, 헤드폰을 낀 채였다.

"실례합니다. "
"...... "
"저기요! 실례합니다! "
"??"
"혹시 가로아 형제가 어디 있는 지 아시나요? "
"가로아 형제...? 제가 아인 가로아인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라플라스가 여기로 보내서 왔습니다. 잃어버린 누이를 찾는다고... "
"라플라스가요? 드디어 여동생을 찾을 수 있는건가요... "

현의 얘기를 들은 아인은 갑자기 현의 손을 꼭 잡았다.

"부탁입니다, 제발 저의 여동생을 찾아주세요. "
"제가 꼭 찾아드릴게요. 그런데, 저희도 일단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거라서... 어떻게 된 일인지 듣고 싶어요. "
"그럼 일단 집으로 가요. 드라이! 손님이 오셨어! "
"알았어, 형! "

집 안은 남매끼리만 살았는지 꽤 좁았다. 너저분해 보이는 집을 대충 치우고, 일행을 소파에 앉힌 아인은 물을 내 왔다.

"라플라스가 보내서 오셨다고 했죠?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
"저는 위 현입니다. 이쪽은 유키나미 미기야, 그리고 이쪽은 파이로, 이쪽은 저스티스 라우드예요. "
"반갑습니다. 저는 아인 가로아, 이쪽은 동생인 드라이 가로아입니다. "
"반갑습니다. 라플라스가 보내서 오셨다면서요? "
"네. 하지만 저희도 누이를 찾아달라고 했다는 얘기만 전해 들은 상황이라... "
"그렇군요... "

아인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여동생이 없어진 지는 한달정도 됐습니다. 저번 달 이맘떄 없어졌거든요... 식료품점에 다녀온다고 했는데, 그날따라 꽤 늦게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친구라도 만났나...싶었죠. 그런데 저녁이 되도 들어오지 않고, 밤 늦게까지 기다려봤지만... 결국 그 날 하루종일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
"경찰에서는 뭐라고 하데? "
"경찰에서도 찾고는 있지만... 워낙 갑자기 사라진 터라...... "
"마지막으로 봤다는 사람도 없어? "
"저도 이곳저곳 다니면서 물어봤죠. 식료품점 주인은 분명 가게에 왔다가 가는 것까지 봤다고 했지만... 그 후로는 츠바이를 본 사람이 없어요. 광장은 물론이고, 파쿠르를 하던 공원, 그 근처 가게까지 이 잡듯 찾아다녔는데... "
"진짜 어디로 증발해버린 것 같군... 실제로 그럴 일은 없지만. "
"정말 어디로 갔는지라도 알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
"그래서 우리가 왔잖아요. 동생을 꼭 찾아드릴게요. "

동생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아인은 슬퍼했다. 부모도 돌아가시고 남매끼리 살게 된 지라 더욱 각별했던 사이였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유일한 누이가 사라졌다...

"파이로 씨, 일단 명계에 한번 연락해보는 게 어때요? 혹시 최근에 사망한 사람 중에 있는지... "
"안그래도 세베루스 씨한테 연락했어. 조만간 답이 올 거야. 일단 식료품점을 나온 다음에 행방이 묘연하다고 했지... "
"네. "
"그런데, 아까 보니까 이 근처에 까만 후드를 쓴 사람들이 보이던데... 누구야? "
"잘은 모르겠는데, 네크로노미콘을 찾고 있다던가... 사해 문서를 찾는다던가... 하는 사람들이예요. 악마 숭배자라는 소문도 있고요. 사람들도 접하기 꺼려해요. "
"흠... 위험한 사람들이군. "

파이로가 명계로 연락을 해 볼 동안, 미기야는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을은 꽤 한적한 곳이었고, 외부와 들어오는 도로도 한 곳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미기야는 광장 벤치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를 만났다.

"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
"무슨 일이세요? "
"혹시 츠바이 가로아라고 아세요? 한달 전에 사라졌는데... "
"아! 츠바이요? "

젊은 여자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대답했다.

"츠바이라면... 식료품점을 나오다가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던데요... 샤테니히츠에게 납치당했다는 소문도 있고요. "
"샤테니히츠...? "
"저기 저 건물 보이시죠? 저기를 근거지로 하는 사이비 종교예요. 자기네들은 사이비가 아니라고 한다지만, 솔직히 어느 종교건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자기가 믿는 종교를 깎아내리겠어요? 자기네들 말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하는 짓이 사이비같더라고요. "
"그렇군요... "

젊은 여자가 가리킨 곳에는 마을과 이질적인 거대한 건물이 서 있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밖은 장식해 둔 건물은 하얀 상자를 뒤집어 둔 것처럼 생겼다. 밖에서 보기에 딱히 아무런 장식도 없어서, 그냥 지어만 놓고 입주민은 없는 오피스텔인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보아하니 외지인인 것 같은데, 저 건물 근처에는 되도록 가지 않도록 하세요. 저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르거든요. 특히나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꾸미는 모양이라, 저도 바짝 경계하는 중이거든요. "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집으로 돌아오니, 그새 파이로는 연락을 끝냈는지 소파에 푹 걸터앉아 있었다.

"세베루스 씨는 뭐라세요? "
"최근 사망한 사람 중에 츠바이 가로아라는 사람은 없대. 그게 다야. "
"역시... 샤테니히츠의 소행일까요? "
"샤테니히츠? "
"네. 요즘 마을 곳곳에 보이는 검은 후드를 쓴 사람 말이예요. 아까 마을을 둘러보다가 어떤 여자분을 만났는데, 츠바이 씨가 샤테니히츠에게 납치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던데요? "
"샤테니히츠? 그게 뭔데요? "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사이비 종교라고 하던데. 근거지인 건물도 대충 어떻게 생겼는 지 알고는 있는데... 그 여자분 말로는,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거라네요. "

츠바이를 구하려면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접근하지 말라니, 파이로는 발끈했다. 의뢰를 들어주러 온 거지 조사나 하러 온 게 아니잖아!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너 지금 장난하냐? 우리가 조사하러 왔냐? 츠바이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듣고 온 거잖아! 츠바이를 구해야 하는데 접근을 안 하면 원격으로 구하리? "
"파이로 씨, 일단 샤테니히츠에 대한 조사가 필요할 것 같긴 해요. "
"후훗, 어쨌든... 조사가 필요하단 말이지? 그런거라면 나한테 맡겨줘. "
"에? 너, 뭔가 묘책이라도 있는거냐? "
"잠시만. "

파이로를 진정시킨 애시는 거울 속에서 리바이어던을 끄집어냈다.

"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감? "
"리바(리바이어던의 애칭), 아무래도 그 녀석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지금 불러올 수 있어? "
"그럼. 잠시만~ "

리바이어던이 나가고 잠시 후, 거울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하반신은 없었다. 하반신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건지 붕대가 달랑달랑거리는 데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뿔과 귀 같은 것이 달린 망토의 후드 안에는, 해골이 있었다. 해골 속 눈이 번득이고 있었다.

"으엑, 그거 진짜 해골이예요? "
"이거 가면이야. 얼굴을 들키면 곤란하거든. "
"깜짝 놀랐네... "
"리바이어던의 연락을 듣고 왔네만. "
"아아, 당신이 도펠이군요. 제가 애쉬 리스트로베라입니다. "
"호오, 네가 그 유명한 존재를 먹어치우는 괴이인가... "

애쉬와 도펠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나저나 나를 찾은 이유가 뭐야? "
"당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
"호오... 뭔데? "
"이 마을에 자리잡은 샤테니히츠에 대해 알고 싶어요. "
"샤테니히츠? 흐음... 좋아, 그 정도는 금방 조사해줄 수 있지. "
"역시 리바이어던에게서 들은 대로군요. "
"키히히- 그렇지! 사실 내게 의뢰를 하려면 보수를 내야 하지만, 너는 나도 궁금했던 녀석이고, 리바이어던이 애칭으로 부르는 걸 허락한 녀석이니 특별히 무료로 해 줄게. 그럼, 잠시만. "

도펠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종이뭉치가 거울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온 도펠은 종이뭉치를 집어들어 파이로에게 건넸다.

"여기, 상당히 재밌는 곳인데? 왜 알아보려는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곳이야. 오히려 내가 너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을 정도인데? "
"??"
"일단 이것부터 읽어 봐. "

도펠이 건넨 종이뭉치에는 샤테니히츠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샤테니히츠... 지구상의 존재하는 종교에서 말하는 어떠한 유일신도 믿지 않는 종교. 검은 후드를 쓰고 다니며 그들의 복음을 전파하며, 명계에 그들에 의해 유입된 영혼이 있다. ...명계에 그들에 의해 유입된 영혼이 있다는 건, 그들에 의해 죽은 사람이 있다는거잖아요. "
"응. 일단 추정이긴 한데, 악마를 숭배하는 종교가 아닐까 싶어. 악마를 숭배하는 인간들의 경우 다른 인간을 잡아다가 제물로 바친다면서? "
"그렇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요. "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건 그런 주제에 의외로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많다는거야. 자신들의 신을 언급하는 것도 안 되고, 하얀 옷을 입는 것도 안 되고, 하얀 물건을 만지는 것 역시 안된대. 옷도 머리도, 물건까지도 전부 검정색으로 통일을 하고 움직인다는거지. 그 외에도 금기 사항이 상당히 많아. "
"흐음... "

역시 뭔가 이상하군. 파이로는 건네받은 종이 뭉치를 읽어봤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이 흔히 믿는 기독교나 불교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뭔가 석연찮은 점도 있었다. 거기다가 하얀 색 물건은 안 된다, 하얀 물건을 만지지 말라, 야채를 먹지 말라는 등의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금기 사항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사람들을 납치한걸까...? "
"그 부분까지는 나도 조사를 못 했어. 나라고 해도 만능은 아니거든. 다만 인간을 납치한 이유가 인신공양을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뭔가 불길하면서도 재밌는 것들이야. "
"흠... 그럼 그 이상은 우리가 잠입을 해서 알아내야 한다는 건데... "
"잠입이야 어렵지 않죠. 검은 옷을 입으면 된다면서요? 검은 천 같은 걸로 몸을 두르면 되잖아요. "
"후후... 도펠 씨, 도펠 씨가 입고 있는 후드랑 비슷한 걸로 하나 구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
"이 후드? 이건 주문제작이라 하나밖에 없는데... 모양은 꼭 이런 모양이 아니어도 상관 없는거지? "
"네. "
"오케이! 잠깐만. "

다시 거울 안으로 들어간 도펠은, 밖으로 까만 천을 던졌다.

"그걸 두르면 될거야. 신발만 까만 걸로 구하고 들어가면 돼. "
"고마워요. "
"뭘, 다음에 또 부탁할 일 있으면 불러~ "

도펠에게 받은 까만 천을 펼쳐보니, 도펠이 두른 것과 비슷한 망토였다. 미기야가 망토를 둘러보니, 발만 뺴고 전부 가려주고 있었다. 후드까지 푹, 눌러쓰니 누구인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다가 까만 신발만 있으면 잠입하기에는 딱이네. ...그런데 누가 잠입하죠? "
"글쎄... "
"애쉬 씨는 핸드폰을 통해서도 이동할 수 있다고 하셨죠? "
"후훗, 당연하지. "
"그러면 애쉬 씨는 핸드폰 속으로 들어가서 동행해주세요. "
"알겠어. "

애쉬는 라우드의 전화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파이로가 라우드의 전화기를 건네받고 망토를 걸친 다음 후드를 썼다.

"딱 됐네. 후드가 두 개 왔으니까... 이 까만 신발 누구 꺼냐? "

파이로는 현관에 놓인 까만 신발을 가리켰다.

"그거, 아인 형이 신던 건데요. "
"너한테 헐렁하냐? "
"아뇨. 사이즈는 똑같아요. "
"잘 됐다. 니가 가자. "
"...네? "

파이로는 마침 잘 됐다는 듯, 드라이에게 망토를 건넸다. 나보고 츠바이가 잡혀간 그 곳으로 가자고? 드라이는 망토를 얼떨결에 건네받긴 했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너는 파쿠르를 즐겨 하잖아. 어떤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할 때의 최단거리를 계산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
"그야 그렇죠. "
"너는 거기에 들어가면 대충 어떤 구조가 있고 어떻게 이동을 하면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잖아. 그리고 나는 유령이라 벽으로 숨을 수 있기 때문에 츠바이를 찾아 볼 생각이거든. 애쉬는 너랑 같이 동행할거고. 나도 전화기를 들고 가니까, 연락은 애쉬를 통해서 하면 돼. "
"그렇군요... "

드라이도 파이로의 말을 듣고 바지 뒷주머니에 전화기를 넣었다.

"그런데 가서 뭐라고 해야 할까요...? "
"뭐, 대충 귀의하러 왔다고 하면 받아주겠지... 일단 가 보자. "
"네. "

파이로와 드라이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신발을 신었다. 각자 해야 할 일은 달랐지만 목적은 같다. 수수께끼의 종교, 수수께끼의 목적으로부터 츠바이를 구해내는 것.

둘은 애쉬가 들어있는 전화기를 집어들고 미기야가 말했던 건물로 향했다.

"저 건물인가... "
"네, 그런 것 같아요. "
"이봐, 거기 너희들! "

뒤에서 두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후드를 뒤집어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드라이는 심장이 쿵쿵거리는 게 밖에서도 들릴 것 같았다.

"응? 너희들도 교인인가? "
"아뇨, 저희는 여기에 관심이 있어서... 여기서는 하얀색 옷은 입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검은 색으로 뒤집어 쓰고 왔습니다만. "
"우리의 교리를 알고 있는데다 관심까지 있다니! 정말 환영해! 어서 들어와. 모르는 게 있으면 이것저것 물어봐. 다 가르쳐 줄게. "

파이로의 능청스러운 거짓말 덕분에, 들키지 않고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아니, 상대방은 오히려 두 사람의 입장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건물 밖은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었지만, 문만은 검정색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하얀 건물만 보여서 몰랐지만, 문을 보니 확실히 이들의 본거지인 것 같았다.

"우리는 하얀 옷을 입지 못 하는 것 외에도, 하얀 물건을 만져서도 안 되는 것 때문에 문만큼은 검은 색으로 칠해두고 있어. 그나저나 이 마을에 있었으면서 우리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우리의 교인이 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오는 경우는 드문걸! 나 정말 감동받았어... "
"그... 그렇습니까...? "
"응. 자, 자, 사양 말고 들어와. "

건물 벽이며 바닥이며 전부 검정색이다. 벽과 바닥은 광택이 있는가 없는가로 구별할 수 있었다. 파이로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드라이에게 최대한 이것저것 물어볼 것을 부탁하고, 벽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왜 하얀색 옷은 입으면 안 되는 건가요? "
"그건, 우리가 믿는 신님께서 하얀색 옷을 싫어하시기 때문이지. 하얀색 물건같은 것도 싫어해서 이 안은 전부 검정색이야. "
"하지만 건물 밖은 하얀색이던데... "
"아, 그건 검은 대리석이 없어서... 뭐, 어쩔 수 없지. 나중에 검정색으로 도색하려던 참이었어. 그래도 눈에 너무 띄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
"여기서 믿는 신은 어떤 신인가요? "
"여기서 믿는 신은 예수나 부처같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야. 여기에 정말로 존재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은총을 내려주시지.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서 허물 없이 지낼 수도 있는 존재야. 그런데 그 배경 화면에 그거 말야... "

교인은 드라이의 핸드폰에 배경화면으로 위장한 채 떠오른 애쉬를 가리켰다.

"아, 이... 이거요? "
"혹시 여자친구야? "
"아, 아뇨... 아는 사람이 소개시켜줄까 하고 보내준 사진인데, 너무 예뻐서... "
"그렇군... 자, 이 쪽으로 가면 본당이야. "

드라이가 애쉬와 본당을 둘러볼 동안, 파이로는 벽을 통과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온통 까만 색이라 걸어다니면서 헤매기는 곤란했다.

'이거야, 원... 뭐가 이렇게 복잡해? '

본당으로 가는 길 주변을 둘러보던 파이로는 벽 한쪽에 무언가가 튀어나온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스위치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스위치가 있는 바로 옆의 벽 속으로 들어갔다.

'어라, 여기 또 복도가 있잖아? '

벽 속의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감옥 같은 공간이 가득 있었다. 적막한 복도를 뒤로 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보니, 안에서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인간인가... '

그 중 하나의 방으로 들어가보니, 여자 하나가 갇혀있었다. 빵과 소금, 그리고 물만을 식사로 넣어준 채 한쪽 발은 족쇄로 묶어두었다. 너덜너덜한 옷을 걸친 채로, 그녀는 삶을 포기한 듯 멍하니 앉아있었다. 원래 머리가 어땠는지 모를 정도로 심하게 헝클어진 머리가 여기에 꽤 오랫동안 갇혀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다.
그녀는 바깥이라곤 구경도 못 했는지, 반츰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런 곳에 인간이...? '
"이봐. "
"히익- 누, 누구세요? 다, 당신도...? 나, 난 아직 때가 아니야! "
"쉿, 진정해. 난 샤테니히츠가 아냐. 후드를 쓰고 있는 건 여기에 의심 없이 들어오기 위해서 그런 것 뿐이야. "
"저, 저, 정말요...? 휴우...... "
"그래. ...이 곳에 인간들이 갇혀있는거야? "
"네... 저 말고도 많이 갇혀있어요... "
"왜?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어? "
"아뇨... 전 정말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냥 길을 가다가 누가 길을 물어보면서 같은 방향이라며 태워주겠다고 해서 차를 얻어탔을 뿐인데... 눈을 떠 보니까 여기였어요... "
"그럼 납치당한건가... "
"집에... 아니,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흐윽... "

그녀는 슬프게 울고 있었다. 여기에 갇혀 지낸 지 꽤 오래 된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는 여기에 납치된 사람을 하나 찾고 있거든... 혹시 츠바이 가로아라고 알아? 위로 오빠가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는데, 파쿠르를 즐겨 하는데... "
"아아... 얘기는 들은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츠바이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하지만 츠바이는 여기 없을거예요. 츠바이는 우리랑 달리 제물이 아니라 '그릇'으로 쓴다고 하던걸요... "
"그릇...? 그게 무슨...? "
"신을 강림시키는 그릇이라던가...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
"그럼 츠바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는 얘기지? "
"네... "
"흐음... "

그릇. 신을 강림시키는 그릇. 그렇다면 츠바이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쪽에서 목소리를 들었다면 분명 이 곳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인데.

"제가 듣기로는, 이주일 후에 신을 강림시키기 위한 의식을 한다고 들었어요. 그 때까지 츠바이는 계속 갇혀있어야 한대요... 그 떄가 되면 저희도 죽을거예요... "
"괜찮아, 내가 널 꼭 구해줄게. "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흐윽...... "

울먹이는 여자를 토닥여준 후, 파이로는 밖으로 나와 다시 복도를 걸었다. 휴대전화 라이트로 비춰보니, 복도 끝 벽에 스위치가 보였다. 그 주변을 자세히 비춰 보니, 바닥에 문이 보였다. 똑똑 두드려 보니, 주변 바닥과 소리가 달랐다.

'여기가 문인가... '

파이로가 스위치를 누르자, 바닥이 열리고 밑으로 가는 계단이 나왔다. 천장을 따라 붉은 등이 달려있고, 등을 따라 가니 커다란 철창이 보였다. 철창 옆은 자물쇠로 단단히 묶여 있었지만, 파이로는 손쉽게 그 안을 관통할 수 있었다.

'!!'

그 안은 아까 만났던 여자의 방과는 달랐다. 상당히 깨끗했고, 방금 먹다 남겼는지 스테이크가 한 접시 놓여있었다. 그 안에 있는 여자의 손발에는 어떠한 것도 채우지 않았고, 머리 역시 깨끗하게 빗겨진 상태였다. 여자는 파이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여, 여기는 어떻게...? "
"쉿. 나는 샤테니히츠가 아니야. 네가 혹시 츠바이 가로아니? "
"네... 제가 츠바이 가로아예요. "
"드디어 찾았군... ...식료품점에 다녀온다는 후로 소식이 없어서, 네 오빠랑 남동생이 걱정하고 있어. 두 사람의 부탁으로 너를 구하러 왔어. "
"정말요...? 오빠... 오빠는 잘 지내고 있어요? 또 끼니 그러는 건 아니죠? 파쿠르만 한다고 늦게 잔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
"응. 잘 지내고 있으니까 안심해. ...그런데 이 스테이크는...? "
"모르겠어요... 매 끼니마다 이게 나와요. 저를 보고 그릇이니 뭐니 하면서, 이걸 먹이곤 그냥 가 버려요. 집으로 가고 싶어요... "
"내가 널 꼭 구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이주일 후에 의식이 있을 거란 얘기는 들었어. "
"그렇군요... 위에 갇힌 사람들도 만나보신거예요? 하지만, 여기를 들키지 않고 들어올 수는 없는데... "
"난 유령이니까. 벽같은 건 얼마든지 통과할 수 있지. "
"아아...... "

츠바이는 파이로에게 작은 로켓을 건넸다.

"이걸 가져가세요... 그리고 오빠에게 제가 무사하다고 전해주세요. "
"응, 알겠어. "

로켓을 건네받은 파이로는 다시 위로 올라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와 보니, 본당을 다 둘러보고 나왔는지 드라이가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츠바이 누나는 찾았어요? "
"응. 이 로켓을 전해달라고 하던데... "
"이건...? "
"...? "
"엄마의 유품이예요... 츠바이 누나가 소중히 가지고 있던 건데...... "
"츠바이는 괜찮다고 전해달래. 그나저나... 애쉬는 뭐 발견 했어? "
"아주 끔찍한 걸 발견했지. "
"...... 일단 돌아가서 얘기하자. "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파이로와 드라이는 검은 후드를 벗어던졌다. 마침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인이 두 사람을 맞았다.

"드라이! "
"니 동생이 너 늦잠 자는 거 아닌지 걱정하데. "
"...츠바이를 만나고 오신 건가요? "
"난 유령이라서. 적당히 시간만 끌어준다면 뭐, 상관 없지. 너 끼니 거르지 말래. "
"츠바이... "
"드라이, 최단 경로는 계산했지? "
"빠져나오는 루트까지 계산했습니다. "
"좋아. "
"그나저나 애쉬 씨, 뭘 보셨길래... "
"그 녀석들이 신이라고 모시는 녀석 말야. "

애쉬는 드라이와 같이 했기 때문에 본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드라이와 함께 그들이 모시는 신을 같이 봤던 것이다.

"괴이였어. "
"뭐? "
"괴이라고. "
"괴이라면... 어떤 종류의......? "
"우소가미. "
"!!"

우소가미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키츠네가 흠칫했다.

"우소가미가 이런 곳까지...! "
"그게 뭔데요? "
"그 녀석은 괴이 중에서도 최악이야. 애쉬만 보면 벌벌 떨 정도로 계급은 낮지만, 이름대로 엄청난 녀석이지... 누구라도 그 녀석을 신으로 떠받들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하지만 이름대로 신은 아니야. 자기가 호위호식하기 위해서 신이 될 뿐... "
"...... 혹시 그 괴이, 채식 싫어하지? "
"딱히 그런 녀석이 아니어도, 우리는 채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 그리고 우소가미는 빛을 싫어하는 녀석이야. "
"그럼 본당이 어두웠던 이유랑 말도 안 되는 규율 중 몇 가지가 왜 생겼는지에 대한 답이 되거든. 왜냐, 우소가미가 채식과 빛을 싫어하기 때문... "
"하지만 우소가미는 퇴치하기가 까다로운데... 빠른 시일 내에 처치하지 않으면, 이런 마을 하나를 신봉자 천지로 만드는 건 일도 아냐. "

우소가미, 이름의 뜻은 거짓의 신.
그것은 어떤 인간이든 자신을 떠받들게 만드는 괴이였다. 그리고 그 녀석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빠른 시일 내에 없애지 못 하면,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우소가미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
"글쎄... "
"흐음...... 아무래도 도펠을 불러야겠는데. "
"알겠어. "

애시가 거울에 노크를 하자, 잠시 후 도펠이 나타났다.

"헬로! 무슨 일로 불렀나? "
"도펠, 우소가미라는 괴이에 대해 알아요? "
"우소가미...? 아하, 그럼. 당연히 알지. 그 녀석은 괴이 중에서도 최악이거든. 어떠한 인간이든 그 녀석을 떠받들게 되는 능력을 가져서 말이야... "
"그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거야? "
"방법이 하나 있긴 해. "
"그게 뭔데? "
"그런데- 특수한 아티팩트가 있어야 실행을 할 수 있는데... "
"아티팩트...? "
"크로노스의 시계. 그게 있으면 가능해. "
"...혹시 이 시계 말하는 거 아냐? "

파이로가 시계를 내밀자, 도펠은 시계를 천천히 뜯어보고 한번 흔들어 봤다. 그리고 완벽하다는 듯 다시 시계를 건넸다.

"좋아! 이 시계만 있으면 돼! "
"아티팩트는 준비됐어. 이제 방법만 알면 돼. 그 방법이라는 게 뭐야? "
"과거로 가서, 우소가미가 막 발생했을 때 공격해야 해. 공격하는 방법은 중급 괴이를 잡는 것과 똑같지만, 시간을 돌리지 못하면 그 녀석의 영향력을 점차 약화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거든. "
"영향력이라... 어쨌든 과거로 가서 죽이는 수 밖에는 없겠네요. "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매우 골치아파져. 녀석의 진짜 약점이 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거든. "
"음... 알겠습니다. "
"그나저나 이번 사건의 범인이 우소가미였단 말이지? 거 참, 특이하군... "

도펠이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녀석의 진짜 약점이 뭘까요...? "
"흠...... 혹시 라플라스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요? "

그리고 현은 라플라스가 건넨 체스말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라플라스가 나타났다. 그녀는 손에 크로스워드 책을 들고 있었다.

"여, 해결은 잘 돼가? "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냈어요. 그런데... "
"??"
"그 범인이 우소가미예요. "
"우소가미? "
"네... 크로노스의 힘으로 과거로 가서 제거하지 않으면, 현재로서는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대요. "

범인이 우소가미라는 얘기를 들은 라플라스 역시 곤란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처리하기 난감한 녀석이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과거로 가서도 완벽히 제거할 수 있는 건 아냐. 과거로 가서 근원부터 약화시켜서, 현재로 돌아온 다음 우소가미의 처리를 쉽게 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지... "
"그럼 완전히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는거군요. "
"그 녀석을 완전히 처치하려면 허수 차원으로 보내버리거나, 존재를 먹어치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 약점도 없고... 녀석의 영향력을 딜레이시키는 방법은 난제뿐이거든. "
"존재를 먹어치운다라... "

존재를 먹어치운다. 그렇다면 애쉬가 있다면 되는걸까. 애쉬는 거울에 비추기만 하면 뭐든지 먹어치울 수 있는 괴이니까.

"애쉬 씨는 거울에 비추기만 하면 뭐든지 먹어치울 수 있나요? "
"그렇긴 한데... "
"그럼 우소가미도 먹어치울 수 있어요? "
"우소가미가 있는 곳은 깜깜해서, 좀 힘들 것 같은데... "
"흐음...... 그렇다면 허수 차원으로 보내버리는게 답인건가... "
"일단은 어떻게든, 우소가미를 애쉬 씨가 먹어치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해요. 허수 차원으로 무언가를 보내는 능력이 없으니까요. "
"좋아. 그럼 일단 과거로 가서 녀석을 약화시켜보자. "

파이로가 시계를 꺼내들자, 시계줄이 빛나는가 싶더니 시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크로노스. 내 시계를 여는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응? 뭐야, 이 시계 말도 하네? "

-...... 이름이나 말해...

"파이로입니다만. "

-좋아, 파이로... 너 최근 명계에 갔었지? 시신이 탄 것 때문에.

"그걸 어떻게 아세요? "

-나는 시간축을 관장하고 있거든. 그리고 모든 역사를 꿰뚫어보고 있지. 그래, 무슨 일로 시계를 쓰려고 하는건지 물어봐도 될까?

"과거로 돌아가서 우소가미를 약화시키려고 합니다만. "

-우소가미... 우소가미라...... 그냥 라플라스가 푸는 퍼즐책 하나만 던져줘도 될텐데? ...그 녀석 거기서 또 사고 치는 모양이지?

"대형사고 하나 쳤습니다. "

-그 녀석, 그럴 줄 알았어... 지금 우소가미가 무슨 대형사고를 쳤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 알겠군. 사이비 종교 하나 만들어서 떠받들려지는 모양이군. 그리고 사람 하나 납치당해서 구해야되지?

크로노스는 지금 파이로가 처한 상황을 귀신같이 알아맞췄다.

"그걸 어떻게...? "

-대형사고 쳤대서 다 보고 왔다. 좋아, 일단 과거로 보내주지. 근데 거기서 아주 없애는 건 좀 힘들거다. 약화만이라도 시키고 돌아와.

"네. "

시계가 빛나는가 싶더니,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이로가 순식간에 시계와 함께 사라졌다.

"파이로 씨...? "
"...과거로 가 버린 모양이군. "
"잠깐만요, 파이로 씨는 괴이를 사냥하는 법 같은 건 모르는데...! "
"안심해. 서로 연락은 할 수 있거든. "

다른 일행들과 떨어져 파이로는 혼자 과거로 왔다. 우소가미가 처음 자리를 잡아 갈 무렵이라 그런지, 교단의 건물이 있던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말라 죽어가는 풀과 돌멩이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진짜 휑하네. ...근데 난 괴이같은 거 잡을 줄 모르는데. "

-안심해, 너는 과거에 있지만 현재 시간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연락은 가능하거든.

"그럼 다행이네요. 자, 그럼 우소가미를 찾아 가 볼까... "

파이로는 가윗날을 꺼내들고 건물이 있던 현장으로 향했다.

온통 황무지인 곳으로 다가가니, 중간중간에 건물의 잔해가 보였다. 군데군데 건물의 잔해 같은 것도 보이고, 철근 같은 것도 보였다.

'건물이 있었던 모양이군. '

이 곳이 후에 괴이를 믿는 종교의 근거지가 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주변을 더 둘러보니 건물 잔해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잔해를 헤집어보니, 근처 바닥에는 카지노 칩과 트럼프 카드 한 벌이 보였다. 트럼프 카드는 포장을 뜯지도 않았는지, 겉면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내용물은 그대로였다.

'카드... 그리고 이 칩... 여기 도박장이었나? '

근처에는 주사위와 룰렛의 부서진 조각, 다트 핀, 다트 판 등... 카지노에서나 볼 법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파이로는, 바닥에 나뒹구는 다트 핀 하나를 주웠다.

'이 정도면 키츠네의 침 정도는 아니어도 무기로 쓸 수 있겠군. '

-너는 이 시점에 여기에 없었으니까 모르겠지만, 여기는 카지노가 있던 곳이었어. 하지만 카지노 운영자가 사기 도박을 치다 걸려서 문을 닫고, 건물은 폐업했지.

"역시, 여기는 도박장이었군... "

-여기서는 포커나 다트, 룰렛 돌리기를 많이 했어. 그리고... 돈을 잃은 사람들이 꽤 있었지. 처음 우소가미를 믿기 시작한 사람들은 도박장에서 돈을 잃고, 그 후에 무언가 보상을 바라면서 우소가미를 믿기 시작했던거지.

"그렇다면 처음에는 뭔가 있었겠군요. 콩고물이라도 떨어져야 홍교를 하지 않겠어요? "

-맞아. 처음에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뭐, 보시다시피 콩고물이 떨어지기 위해 뭔가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어. 인신공양을 하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야. 그리고 네가 찾고 있는 그 여자를 납치한 목적은......

"...... 설마, 몸을 차지하기 위해서...? "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그런거였나.
우소가미는, 츠바이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시켜 그녀를 납치했다. 추종자가 많아진 그 시점에서 노리는 인간을 납치해오는 것쯤은 간단했을테니까. 그런데 어째서, 우소가미는 인간의 몸을 노리는걸까?

"하지만, 그 녀석도 몸이 있지 않나요? 괴이라면 형태가 있을텐데. "

-우소가미는 일정한 형태가 없어. 물렁물렁한 젤리나 슬라임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지. 녀석이 원하는 것은 몸이지만, 그렇기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어.
"...... "

우소가미가 있을만한 곳은 없었다. 단지 여기는 다 헐린 도박장의 잔해만이 있을 뿐이었다.

도박을 해서 다 잃은 자에게 간절한 것은 무엇일까, 파이로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도박을 해서 다 잃는다면 무엇이 가장 간절할까. 시간을 되돌려 사기 도박을 잡아낼 능력도, 어떤 속임수도 간파하는 두뇌도 아니었다. 그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바로 돈이었다.

파이로는 건물의 잔해를 더 치워봤다. 기계의 잔해들 사이로 돈 뭉치가 보였다. 꽤 두툼하게 쌓여 묶여있는 10달러,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가 보였다. 도박장 주인이 미처 챙기지 못 한 돈인지, 누군가가 여기에 숨겨둔 돈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꽤 많은 돈이었다.

"하나, 둘, 셋...... 이건 100달러 100장, 이건 10달러 100장... 총 64,000달러네요. "

-이런 곳에 이렇게 많은 돈이...?

"흠... 그나저나 이 곳에 그 녀석들이 본거지를 세우게 된단말이죠... 그런데, 왜 하필 여기였을까요? 여기는 불법 도박장이 있던 곳인데다가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이상은 올 일도 없는데. "

-그건 좀 미래로 넘어가보면 알겠지. 자, 넘어가보자.

한순간 시계가 빛나더니, 검은 후드를 쓴 사람 몇 명이 보였다. 인기척을 느낀 파이로는 근처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뒤에 숨었다. 곧 검은 후드를 쓴 사람들이 까맣고 말랑한 무언가를 안고 나타났다.

"여기야. 여기에 돈이 있어. "

후드를 쓴 사람이 잔해를 들춰 보자, 파이로가 아까 봤던 돈 뭉치가 나왔다. 사람들이 기뻐하며 돈을 나누고 있었다.

"고마워! 네 덕분에 빚을 해결할 수 있게 됐어! "
"난 아들의 학비를 다시 대 줄 수 있게 됐어! "
"정말 고마워, 집을 팔아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
"이야, 이제 다시 가게를 운영할 수 있겠는데? "
"그것 봐, 내가 돈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이 땅은수맥의 끝이기때문에 돈이 쌓일 수 있는거라고. 자, 내가 돈을 줬으니 약속대로 날 여기에 살게 해줘. "
"좋아! 이 돈이면 빚을 갚고도 남을테니, 네가 여기서 지낼 수 있는 거처를 세워 줄게! "
'수맥...? 물을 싫어하는건가? '

사람들이 무언가를 안고 돌아가자, 파이로가 나무 뒤에서 나왔다.

"방금 저 물컹한 게, 수맥의 끝이라고 했는데요... 우소가미가 물을 싫어할 리는 없고. "

-음양오행에 따르면, 쇠는 수와 상생 관계야. 뭐, 그걸 적당히 끌어서 쓴 모양인데? 수맥의 끝이니까 여기로 쇠가 다 모인다, 이런 의미로.

"수맥의 끝이라 쇠가 다 모인다면... 수맥을 끊어버리면 되겠군요. "

-...그걸 어떻게 끊어?

"완전 절단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막아두면 되겠죠... "

파이로는 가윗날을 꺼내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여기다! "

땅에 가윗날을 푹, 박은 파이로는 지면에 무언가를 새겼다. 그것은 예전에 미기야의 사무실에서 본 적 있는, 토벽의 주술 문양이었다.

-그게 뭐야?

"예전에 동료의 주술 책에서 본 적이 있었죠. 흙의 기운으로 된 배리어를 만들어주는 주술... 동료가 부적술사거든요. "

-오호.

파이로는 문양을 다 그리고, 적당한 위치로 이동한 다음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아인의 집으로 가 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갔고 드라이, 아인, 라우드만 집에 있었다.

"왜 이렇게 늦어? "
"뭐야, 다른 사람들은? "
"큰일났어. 녀석들이 츠바이를 데리고 무슨 의식에 참여한대. "
"뭐? "

큰일이다. 벌써 몸을 차지하기 위한 의식을 시작한 것인가.

"지금 다른 사람들은 놈들의 본거지로 갔고, 난 여기서 너랑 같이 나중에 가기로 했어. "
"...... 젠장... 일단 가지. "
"알겠어. "

-무슨 일이야?

"우소가미가 츠바이의 몸을 뺏기 위한 의식을 시작하려는 모양이예요. "

-이런... 시간이 없군. 일단 수맥을 약화시켰으니 녀석도 이전처럼 강하지는 않을거야. 이제 남은 일은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 밖에 없어.

"알겠어요. "

파이로는 가윗날을 빼 들고, 라우드와 함께 하얀 건물로 향했다.


건물 밖은 벌써 추종자들로 가득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추종자들은 파이로와 라우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으로 돌파한 모양이었다.

"이거 귀찮게 됐군... "
"그러게. "
"너 부적같은 거 쓸 줄 아냐? "
"나는 정보 담당이라 전투는 잘. "
"그럼 전적으로 내 몫인가...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이로는 가윗날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지면에 착지함과 동시에 그녀의 옆으로 덤벼들던 추종자들을 베어 갔다. 추종자들은 가윗날에 베여질때마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인간이 아닌 건가? "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환영같은 건가? "
"다른 건 모르겠고, 돌파하기는 쉬워진 것 같다. "
"그러게. "

파이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추종자 무리를 베어넘기고, 안으로 들어섰다. 라우드를 먼저 들여보낸 파이로는, 끝까지 쫓아오는 추종자들을 마지막으로 베어넘기고 문을 닫았다.

"겨우 들어왔군...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
"모르겠어... "
"젠장, 조명이 이 모양이니... 뭐가 보이냐? "
"보이겠냐... "

파이로와 달리 라우드는 밤눈이 어두워서, 깜깜하면 아무것도 보질 못 했다. 거기다가 손전등도 켤 수 없어, 라우드는 파이로와 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의식이라면 분명 본당 어딘가에서 하고 있을거야. ...그 전에 일행을 찾는 게 먼저겠지만... 핸드폰에 뭐 보이냐? "
"어, 애쉬다. "

라우드의 전화기를 통해 애쉬가 나타났다.

"늦어, 파이로. "
"네녀석...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의식을 시작했다니? "
"말 그대로야. 우소가미가 츠바이의 몸을 차지하기 위한 의식을 시작하려고 해. "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냐? "
"어디 가긴... 잡혔어. "
"...잡혀? "
"드라이랑 아인은 츠바이랑 같이 있고, 나머지는 다른 제물들이랑 같은 곳에 있어. 나는 전화기를 통해 빠져나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
"이런 젠장. "

정말 늦게 온 모양이군, 파이로가 중얼거렸다.

"그럼 이러고 있을 여유가 없지... "
"그나저나... 과거에 가서 손은 좀 쓰고 온 거야? "
"녀석을 약화시키고 왔지. ...그래도 일단 빨리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겠군... 나야 상관 없는데, 이 녀석이 문제야. "
"후훗... 너는 위치를 알고 있는거지? 그럼 거기까지 라우드를 데리고 와. "
"롸져. 어이, 간다. 내 뒤를 잘 따라와. "

파이로는 다시 가윗날을 역수로 잡고, 복도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그리고 라우드는 그 뒤를 따르며 추종자가 덤벼오면 알려주고, 파이로는 라우드가 지시한 방향의 추종자를 베어 넘겼다. 그러면서 파이로는 전에 봐 뒀던 비밀 공간으로 왔다.

"여기가 제물이 갇혀있는 곳이야. "
"여긴가... "

파이로가 버튼을 누르자, 숨겨진 문이 열렸다. 라우드와 함께 한으로 들어온 파이로는 밖에서 알지 못 하도록, 벽 밖으로 손을 꺼내 문을 다시 닫았다. 그리고 복도를 쭉 걸어가던 파이로는 현을 발견했다.

"현! "
"파이로 씨! 라우드 씨도 계셨네요? "
"뭐야,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른 사람들은? "
"모르겠어요... 츠바이 씨를 의식에 쓴다고 해서 구하러 왔는데 잡혀서... 미기야 씨도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텐데...... 잡혀올 때 눈을 가려서 잘 모르겠어요. "
"그건 애쉬가 알 거야. 너희들이 잡힌 것도 애쉬가 알려줬거든... 라우드, 애쉬한테 다른 사람들 위치도 물어 봐. 난 츠바이에게 가 볼게. "
"응. "

현과 라우드를 뒤로 하고 파이로는 츠바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아인과 드라이도 같이 묶여있었다.

"파이로 씨? 여긴 어떻게...? "
"쉿. 일단 조용히 해. "

파이로는 드라이와 아인을 풀어줬다.

"너희들, 혹시 미기야와 키츠네가 어디에 있는 지 알아? "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눈을 가린 채 여기로 데려와서... "
"그런가... 아, 츠바이. 너에게 줄 게 있다. "
"??"

파이로는 트럼프 카드의 포장을 뜯어, 카드를 한 장 꺼냈다. 앞면에는 조커 그림이 있고, 뒷면에는 까만 배경이 있는 평범한 트럼프 카드였지만, 파이로는 주변에 널브러진 펜을 주워들고 카드 뒷면에 무언가를 그렸다.

"자. "
"이건... "
"토벽의 주술. 과거로 가서 수맥을 약하게 만들었으니, 녀석의 힘도 전보다 약해졌을거야. 의식을 시작하려고 녀석들에 너에게 오면, 그걸 몸 안쪽에 지니고 있어. "
"감사합니다... "
"드라이, 아인. 너희들도 여기 있으면 위험할 것 같은데... 일단은 계속 묶여있는 척 하고, 츠바이가 끌려나갈 때 타이밍을 봐서 빠져나와. "
"알겠습니다. "
"알겠어요. "

파이로는 다시 밖으로 나와 철창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미기야와 키츠네를 찾았다.

"파이로 씨! "
"...애쉬한테 다 들었다. "
"우소가미는 어떻게... "
"과거로 가서 녀석의 힘을 약화시키고 왔어. 아마 힘이 좀 약해졌을거야. "

감옥에 갇혀 있던 미기야와 키츠네를 풀어주고, 파이로는 라우드와 현을 찾아갔다. 그리고 다섯은 철창에 갇혀있던 다른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일단은 갇혀있는 쳑 하다가 의식을 시작한다고 하면 틈을 봐서 빠져나가자. 나는 의식을 시작하면 우소가미를 제압할거야. 너희들은 우소가미가 의식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 하게 방해해 줘. "
"네. "
"그리고 키츠네, 너는 의식을 시작하면 이 사람들을 내보내 줘. "
"오케이. "

그 때,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파이로는 인기척을 느끼고 벽 속으로 숨었다. 문이 열리고 잠시 후, 말소리가 들렸다.

"곧 있으면 의식을 시작할테니 슬슬 데려가지. "
"아아, 알겠어. "

파이로는 벽 속에서 이들을 지켜보다가, 이들이 나갈 때 같이 밖으로 따라나갔다. 이들이 츠바이를 데리고 본당으로 가 제단에 눕히자, 츠바이는 손에 트럼프를 꼭 붙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꾸물거리며 우소가미가 나왔다.

"몸이 예전같지 않군... 빨리 진행하지. "
"알겠습니다. "

제단에 올려진 츠바이를 향해 우소가미가 다가갔다. 그리고 그 물컹한 몸을 올리려던 찰나, 토의 배리어가 우소가미를 튕겨냈다.

"!!"

그리고 파이로가 튀어나와 제단 양 옆에 있던 추종자를 베어내고, 우소가미를 향해 가윗날을 들이댔다.

"거기까지다, 거짓된 신. "

파이로는 새파란 가윗날을 들이댔다.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도 가윗날은 빛나고 있었다.

"수맥을 끊어두길 잘 한 것 같군. "
"뭐...뭐라고? 수맥을 끊어? "

우소가미가 당황한 사이, 갇혀있던 척 하던 다른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키츠네가 제물로 잡혀왔던 사람들을 내보내는 사이, 미기야는 애쉬가 들어간 거울을 들고 있었다.

"진실된 신을 믿는 것은 종교라고 하지만, 거짓된 신을 믿는 것은 사도라고 하지. 우소가미, 네 추종자들과 함께 무고한 사람을 납치하고 착취한 죄를 물으러 왔다. "
"크하하하- 네놈들이 나에게 죄를 묻게 하겠다고? 어디 한번 그렇게 해 보시지... "
"드라이, 츠바이를! "
"네! "

드라이가 츠바이를 제단에서 내려오게 하자, 우소가미가 드라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이로가 그 쪽으로 다트 핀을 던지자, 다트 핀은 우소가미의 손을 관통해 벽으로 꽂혔다. 우소가미의 몸통이 마치 거미줄처럼 늘어졌다.

"젠장. 다트핀 몇개 더 주워올걸... "
"다트핀은 어디서 난 겁니까? "
"여기, 과거에 도박장이었거든. 이 녀석, 처음에는 여기가 수맥의 끝이라 쇠가 흘러온다... 이런 드립을 쳤었지. "
"오호. "
"크읏... 이런 걸로 날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
"어딜 그 더러운 손을 뻗어! "

파이로는 트럼프 카드 몇 장을 꺼내 우소가미가 공격할때마다 트럼프 카드를 던져 적중시켰다. 다른 손을 만들어서 뻗으려고 하면 그 손에 카드를 던졌다. 그리고 막 가윗날을 역수로 들고 자르려던 찰나...

"거미줄이 많아지면 복잡하지. "
"잠깐만, 녀석은 그 팔을 잘라내면 재생해! "
"귀찮은 녀석이군. "

네 번째 손을 카드로 맞춰 늘린 다음, 파이로는 한 발 물러섰다. 팔을 네 개밖에 고정을 못 했는데도 움직이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그런데다가 우소가미가 호시탐탐 츠바이를 향해 촉수를 뻗는 통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섯 번째 팔을 뻗을 때, 파이로는 날 등으로 팔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드라이, 아인, 밖으로 나가! 빨리! 여기 있으면 우소가미가 츠바이를 노릴거야! "
"마음대로 안 될걸? "

주변에서 추종자가 나와 드라이와 아인을 잡으려고 뒤쫓았다. 드라이는 츠바이를 뒤에 업고, 아인과 함께 복도를 달렸다. 벽을 타고 점프를 해 가는 두 사람을 추종자가 쫓아가자, 현은 두 사람을 쫓아가는 추종자를 베어넘겼다. 그러는 사이 드라이와 아인은 문 앞까지 다 와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제길, 놓쳤나... "
"굿. 이제 마저 공격해볼까... "

그 뒤로도 우소가미와 파이로의 접전은 계속됐다. 우소가미가 팔을 뻗을때마다 파이로는 트럼프를 던졌고, 마침내 파이로는 카드 한 벌을 다 썼다. 트럼프가 빈 것과 우소가미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음을 확인한 파이로는, 미기야에게 애쉬가 들어있는 거울로 우소가미를 비출 것을 요청했다.

"미기야, 거울을 저 쪽으로 대. "
"네? "
"어서! "
"네. "

미기야가 거울을 우소가미가 있던 곳으로 향하자, 파이로는 핸드폰을 열고 랜턴을 켰다. 그러자 거울에 갑자기 쏟아진 빛에 놀라 움찔하는 우소가미가 비쳤다.

"애쉬, 식사 맛있게 해. "
"어머, 이게 뭐야? 진짜 우소가미야? 오호, 푸딩같은 맛이려나... "
"자, 자, 잠깐! 지, 지금 뭐 하는거야! "
"후훗, 아직 내 이름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나는 존재를 먹어치우는 괴이, 애쉬 리스트로베라... 너같은 악질 괴이를 먹어치우는 걸 좋아하지~ "
"으아아아아- "

애쉬가 거울에 비친 팔을 뜯어먹자, 고정돼있던 팔이 하나 둘 사라져갔다. 우소가미가 애쉬를 어떻게든 저지하려고 했지만, 거울에 상이 비추는 족족 애쉬는 잡아먹었다. 한참동안 우소가미를 뜯어먹고 있는지, 젤리를 먹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우소가미는 사라졌다.

"음~ 간만에 포식했다. 역시, 생각보다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한 게, 연골을 씹는 느낌이야. "
"...덕분에 배터리 없다...... "
"그건 우소가미의 크기 문제지. "

우소가미를 먹어치운 애쉬는 만족한 듯 밖으로 나왔다. 우소가미가 없어진 본당에는, 남아있는 추종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추종자들은 애쉬의 모습을 보자마자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그럼 이걸로 끝인가- 일단 밖으로 나가자. "
"네. "

건물 밖으로 나와보니, 드라이와 아인, 츠바이가 잔당들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잔당들 역시 애쉬의 모습을 보곤 도망쳐버렸다.

"다 된건가요? "
"후훗, 덕분에 포식했어. "
"괜찮아? "
"네. 녀석들이 덤벼들긴 했지만, 이 분을 보고 도망쳤어요. 누나, 괜찮아? "
"응... 이 분 덕분에. "
"다행이네.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

집으로 돌아온 파이로는 라플라스를 불렀다.

"어, 웬일이야? "
"이 시계, 돌려드리려고요. "

파이로는 라플라스에게 크로노스의 시계를 내밀었다.

"어, 벌써 해결한거야? "
"네. 애쉬가 먹어치웠어요. "

라플라스는 애쉬가 먹어치웠다는 말에 놀랐다. 전에는 안이 어두워서 애쉬가 먹어치울 수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먹어치웠어? 안이 어두워서 안된다며. "
"덕분에 핸드폰 배터리가 다 나갔죠... 랜턴빨? "
"대단하구나. 역시 내가 잘 고른 것 같네- "
"앞으로 저기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츠바이는 구했고... 잔당들이 있어봐야, 애쉬가 존재를 먹어치우게 되면 존재가 잊혀지거든요. "
"그럼 사건도 어느 정도는 일단락 되겠군... 좋아, 그 시계는 이번 사건의 보수로 줄게. "

라플라스는 파이로에게 다시 시계를 건넸다. 그리고 오브젝트로 줬던 체스말을 다시 받아갔다.

"그 시계, 평소에는 회중시계로 써. 그리고 나중에 사건을 해결할 때도 유용할거야. 그런데 녀석은 어떻게 약화시킨거야? "
"수맥 드립을 치길래 수맥을 끊었을 뿐이예요. "
"대단하군... 난제신인 나도 처리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풀다니. 아무튼, 이번 일은 해결된 것 같으니 천천히 쉬다가 돌아가도록 해. "
"네. "

라플라스가 돌아가고, 파이로는 시계줄을 바지에 달았다.

"그럼 이번 사건도 끝인거죠? "
"응. 며칠 노닥거리다가 돌아가자. "
"저희 그럴 돈 없거든요... "
"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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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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