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rs Oi My lo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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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그랬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이는 캡슐을 터트리고 불을 붙이려는 찰나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게 다시 말을 꺼냈다. 주제를 이어가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라이터를 꺼내 불을 당기고 그대로 바라보았다. 불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곧게 타오르다가 담배 끄트머리를 감싸 태웠다. 한 모금 빨아 올리자 왼쪽 날개뼈 부근이 쑤셨다. 사람마다 평생 태울 수 있는 담배의 갯수가 정해져 있다던데, 내 것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어차피 젊은 시절에 생각해뒀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 있었기 때문에 미련은 없었다. 한 번 더 빨아올리고서 아이를 피해 연기를 위로 뿜은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스승님이 돌아가셔서 차를 몰고 생전 사시던 집에 찾아갔지.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곱디 고운 아가씨를 만났단다. 스승님의 제자라고 하더구나.”
아이는 호기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예뻤어요?”
나는 싱그렇게 웃으며 연기를 뱉아내곤 답했다.
“그렇게 예쁜 여자는 그 아이 이후로 본 적이 없단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스승님 집에서 책을 정리하고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나왔지. 슬퍼하는 그 아이 어깨를 끌어 안고서 눈밭을 걸었단다. 아직도 눈 앞에 선명하구나. 그녀는 내게 기대어 울었었지. 나는 말 없이 그저 어깨를 빌려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곧 결혼해 아들 하나를 가졌단다.”
입을 벌린 채 소리 없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고선 절반 쯤 남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에서 그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아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곧 간다네.
“아빠, 그럼 엄마는 어디 있어요?”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아이를 바라보며 웃고선 담배를 땅에 버리고 구둣발로 비벼 껐다. 웃음 바깥으로 말할 수 없는 한 마디가 담배와 같이 버려져 재 속에 사라지길 바라면서.



환자분?
환자분, 대답해보세요. 이시헌 환자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고 서서히 눈이 떠졌다. 아직 초점이 잡히지 않아 침침했다. 몸은 누군가 저 높은 하늘에 떠있는 내 몸을 잡고 지구를 몇 바퀴 쏘다닌 것처럼 어지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내 몸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아직 안 죽어, 이 아가씨야. 나는 살며시 웃으며 헛기침을 했다.

내가 잠시 정신을 잃었었나보이.
걱정했잖아요. 돌아가시는 줄 알고.
아직 안 간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나저나 당신 이 내 늙은 몸뚱이 이끌고 당신 곁으로 가면 나 부축하느라고 불편해서 어찌 살꼬?
그게 뭐 대수라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눈 덮인 그 시간 그 장소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기 위해 결혼헀던 것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마치……그 사람과 똑 닮은 미소였다.

또 그 사람 생각했죠?
이 번엔 헛기침이 아니라 정말로 기침이 솟아나왔다.
괜찮아요? 거봐요. 적어도 내가 보고 있을 땐 그 사람 생각은 하지 말고 나만 봐달라니깐.
미안허이. 갈 때가 되니까 별의별 사람들이 생각나는구만.
젊었을 때 범생이였다면서요, 나한텐. 알고 보니 완전 놀 줄 아는 제비였던 거 아니에요?
그런 일 없으니 안심하게나. 피곤하네. 눈 좀 붙여야 할 것 같어.
그래요. 주무셔요. 옆에 있을게요.



“아들아.”
“네, 아버지.”
나는 또 다시 중절모에 정장을 입은 채 쪼그려 앉을 만한 높이의 바위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고 내 옆엔 내가 아들이라 부른 훤칠한 청년이 서 있었다.
“어렸을 적, 네 어머니가 어디 갔는지를 물어보지 않았니?”
“네. 물어봤었죠, 아버지.”
나는 입에 문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옮겨 끼우려다 흠칫 했다. 이번엔 담배가 아닌 잘 말린 두툼한 시가가 있었다. 오랫동안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서로 한 치의 후회도 없이 산다 해도 떠나간 빈 자리에는…”
분명 내가 썼던 글의 마지막 글귀인데 뒷 부분이 기억이 나지 않고 혀 끝에서 맴돌았다.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지니. 아버지가 쓴 글이잖아요.”
아들이 내 말을 이었다. 대견함에 웃음을 지었다. 시가를 입에 물고 빨아들였다. 꽤나 맛이 독특했다. 손가락으로 옮겨 잡은 순간 시가는 절반 뿐이 남아있지 않았다. 신이시여, 이러깁니까.

“아버지?”
“어, 어. 잠시 생각할 것이 있었다. 한 마디만 하마, 아들아.”
“네, 아버지.”
“살아가면서 네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질 사람이 있을 것이며 진정으로 사랑할 사람이 있을 것이고 때와 장소가 미묘하게 엇갈려 떠나 보낼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 모금이 남은 시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빨며 말했다.
“인생은 말을 타고 달리는 게지. 네가 손을 내미는 사람마다 누군가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가려 할 것이며 누군가는 같이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서 달리던 노을진 들판은 언젠가 지나가고 추운 겨울이 올 때 서로의 체온을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때가 올게야. 또 누군가는 이미 다른 사람의 말 위에 올라타 저 앞에서 달리며 서로의 시선만이 마주치다 지평선 저 너머로 달려가버리는 사람도 있겠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까 폈던 담배가 제게 허락된 마지막이었던 겁니까. 하늘을 바라보았다. 순풍에 흘러가는 보슬구름이 원망스러웠다.
“언젠가 말에서 내려 너 혼자만 남았을 때는 앞으로 굳이 나아가려 하지 않아도 된단다. 왔던 길을 돌아오며 누군가 흘렸던 손수건이나 찍혀 있는 말 편자의 자국을 손으로 훑어보거라. 그러면 아, 나는 참으로 복된 사람이구나. 혼자 달려오지 않았으니까.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니까.”

“네, 아버지. 편히 쉬세요.”
아들이 내 옆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 그 옆으로 누군가 나타나 곁에 앉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살짝 사이즈가 큰 음표가 그려진 하이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 나지도 않는, 희미하면서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그리 웃었다. 누군가 또 저만치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작은 단행본을 쥐고 있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것이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계단을 돌아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나로부터 조금 떨어져 선 채 나를 바라보며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웃었다. 조금 울고 있는 것 같았지만 뭐 어떠랴. 못 본 척 웃어주었다. 그녀 옆으로 또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사강을 바라보더니 서로 살며시 웃고는 내게 걸어와 바로 옆에 앉았다. 내 손에는 철필이 쥐여져 있었다. 그녀가 내 옆에 앉은 순간 나는 옛날 그 때로 돌아가 젊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안녕.
안녕.
잘 지냈어?
응. 항상 네 안에 있었으니까. 포근하고 따뜻하거든.
그렇구나.
담배, 결국 안 끊었구나. 어쩔 수 없지, 뭐. 자.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선 부숴질 듯 굳게 힘을 주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자, 같이 가자.

아들은 일어서서 저 먼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 쪽을 한번 흘깃 고개를 돌려 바라보더니 점점 멀어져 사라졌다. 나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고선 그녀들의 손을 잡고 걸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잎이 마치 시체처럼 쌓여 있던 봄날의 가로수길. 땅은 흙이 아닌 눈으로 되어 있다는 듯이 하이얗고도 이상함 없이 쌓인 설원. 그 한 가운데의 통나무집에서 장작을 지피며 사진첩을 꺼내보다 울었던 날들. 박물관으로 향하던 나를 기어코 말에 태우지 못하고 저 앞에 떠나 보냈던 그녀의 눈물이 떨어진, 깜깜한 방 안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던 휴대폰 액정. 그리고 함께 펜과 붓을 잡고서 각각 캔버스와 원고지 안 하늘과 바다 이 세상 온갖 곳을 누볐던 날들.


지나고 보니 나는 참 복된 사람이었구나.






이시헌 씨!

안녕. 축제날인데도 비가 와. 와서 한번쯤은 눈을 맞춰줘. 나에게 텔레파시를 쏘는거야. 넌 잘 지내니. 난 잘 지내. 라고 말이야. 한번만 해봐. 될지도 모르잖아?

“이거, 사강이잖아요. 글 쓴다는 사람이 사강을 못 알아보다니?”

"한 마디만 해도 돼…?"
나는 그렇게 펜을 그녀의 가슴 팍에 겨눴다. 그녀의 숨결이 내 이마에 닿았다. 따스하고도, 따스했다.
"                    ."

저를 죽일 수 있는 건 펜 밖에 없어요.



네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가자고.
그래.
또 시바스 리걸이냐. 돈도 많어.
남이사 내가 번 돈 내가 술 마시는 데 쓴다는데 무슨 상관이여.
그래. 하하.

삐-


END
2015 08 22
[N]
Enril송현지 Ariel이혜인 이리 이상향 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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