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노숙까마귀 0 2,686
949년 2월 28일
빅토리아, 블랙번

  언제부터인가, 세상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었다. 자유공화국해군항공대 찰스 베라일 대령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무기를 덕지덕지 단 4,100톤짜리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무기를 덕지덕지 단 4,100톤짜리 쇳덩어리, FRAS.아크라이트에 앉아있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싶구만."
  의자에 앉은 베라일은 힘없이 말을 내뱉었다. 한 배의 함장이 해도 될 말은 아니었지만 이에 대해 지휘실의 모두가 순응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이들은 바다 건너 블랙번에서 열리는 비행군함 박람회에 와있다. 한가지 문제라면 박람회를 개최한 빅토리아 제국과 그들이 속한 국가인 컬럼비아 자유공화국의 관계는 꽁꽁 얼어붙어서 박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라는거다.
  컬럼비아 정부는 이번 박람회에 최신형 비행군함 세척을 내보냈다. 빅토리아에게 자국에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였겠지만 그 비행군함 승무원들에게는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들은 이번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박람회가 진행되건 안되건, 승무원들은 소총과 권총을 들고 보초를 서야했다. 실제로 한 빅토리아 스파이가 아크라이트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그는 단지 애인을 만나러 왔을 뿐이라고 주장하던 스파이를 생각하며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이제 폐막식입니다. 이것만 끝내고 돌아가면 쉴 수 있습니다."
  얼 바우어 중위(보직은 기억나지 않았다)가 위로랍시고 하는 말을 들으며 베라일은 멍청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긴 항해를 마치고 본국에 돌아와봤자 빅토리아 스파이의 "애인"을 찾으려는 조사단에게 시달릴게 뻔하다. 어째서 바우어 같은 멍청이가 해병대로 빠지지 않은걸까. 함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커피잔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 큰 소리와 함께 배가 흔들렸다. 커피잔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산산조각났다.
"상부 갑판에서 큰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상부 갑판 전체가 날아간거야? 어디가 폭발한건데?"
  상황병의 두리뭉술한 보고가 언짢은 기분을 건드렸기에 베라일은 따지고 물었다. 이에 상황병은 하얘진 얼굴로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상부 탄약고가 폭발한 것 같습니다."
  지휘실의 모두가 사색이 되었다. 내부 무선 담당인 앨리스 헌터 소위가 상부갑판에 황급히 무전을 보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상부갑판의 상황을 보기위해 직접 뛰쳐나간 바우어는 엘리베이터가 완전히 박살나 내려앉았다는 비보를 외치며 돌아왔다. 1등 항해사인 아서 M. 오르테가 대위가 선수가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있다고 말하자 지휘실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한 선원이 탈출용 글라이더를 모두 사용할 수 없다고 보고하는 순간, 드라일 함장의 머릿속은 하얗게 물들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몇 분 전

"……연합의 공중전함 프리드리히가 지나갑니다. 프리드리히는 지난해 크로이츠가 건조한 세계 최대의 비행전함입니다. 비행선 건조 기술의 최고점을 달리는 크로이츠 답습니다. 이번 항해가 최초의 해외 방문입니다."
"네. 네. 그렇군요."
  이브 빌링즈는 중계석에 앉아 알버트 톰슨의 말에 대충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어차피 그들이 중계하고 있는 이 행사에 관심을 가질 사람도 별로 없었다. 있다면 비행군함에 미친 크로이츠의 국왕, 루트비히 2세 정도일거다. 실제로 루트비히 2세는 VIP석에 앉아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빌링즈는 크로이츠 국왕처럼 비행군함에 미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이런 행사는 국제 시체 박람회나 다름 없는 고역이었다. 그녀는 연기를 내뿜는 길쭉한 비행군함을 보며 연기를 내뿜는 길쭉한 시가를 한대 피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지나가는건 컬럼비아자유공화국 해군항공대의 비행전함 이스트베이와 비행순양함 아크라이트, 비행구축함 애너벨 굿맨입니다. 컬럼비아는 이번 박람회에 최신함 세척을 내보냈죠. 세척 모두 비행전함 애호가들에게 대단한 찬사르……."
  어디선가 큰 폭발음이 들렸다. 관중석의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신들이시여, 지금 아크라이트가 폭발했습니다! 비행선이 불타고 있습니다!"
  톰슨의 비명에 놀란 빌링즈는 하늘을 올려다 봤다. 중앙에 있는 비행선이 태양처럼 불타고 있었다.
"아크라이트에 불이 붙었습니다. 불붙은 포탑 두개가 떨어지는게 보입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톰슨을 대신해 그녀는 지금 상황을 말하기 시작했다.
"상부 갑판에서 사람들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비행선들이 폭발을 피해 멀리 떨어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관중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빌링즈는 경호원에 감싸여 VIP석에서 대피하는 루트비히 2세를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불이 하부 갑판으로 옮겨붙기 시작했습니다. 하부 갑판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있습니다. 엔진 하ㄴ……."
"어떻게 이런일이!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엔진 하나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비행선이 점점 위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톰슨이 징징거리는 소리에 묻히지 않게 빌링즈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문득 자기 자신이 제비 새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크라이트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떨어……땅에 부딪혔습니다! 땅에 부딪혀서 폭발했습니다! 블랙번 비행군함 박람회가 대참사로 끝났습니다!"
====
전에 쓴 "마지막 비행"과 같은 세계관입니다.

Author

2,956 (71.3%)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73 Re: 외전 12. After theie life_the black ticket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7.09 482
372 외전 11. After their life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1.11 1475
371 X-4. 잃어버린 인연, 남은 인연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1.02 1475
370 X-3. 꽃길에서 불꽃길로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0.10 1351
369 X-2. 죽음의 전화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9.09 1505
368 외전 10. Karma's child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8.27 1475
367 이세계 경비회사 습작 노숙까마귀 08.12 1535
366 Re: 이세계 경비회사 습작 qwe123 06.13 566
365 X-1. 탈출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7.28 1695
364 Prologue-X. 비웃는 자의 눈물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6.07 1729
363 IX-9. 인어공주의 눈물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3.10 1774
362 외전 9. Fegefeuer Muse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2.11 1721
361 IX-8. Substitute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0.20 1860
360 외전 8. 그림자의 늪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0.10 1885
359 IX-7. Clearing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8.15 1885
358 외전 7. 원숭이 손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7.14 2029
357 IX-6. 생각만 해도 작두타는라이츄 04.29 2012
356 던전 귀쟁이 노숙까마귀 04.16 2225
355 Re: 던전 귀쟁이 ewqas1 07.17 420
354 IX-5. 거울이 모르는 것 작두타는라이츄 04.05 2174
353 외전 6. Haunted mirror 작두타는라이츄 02.18 2065
352 외전 5. 저주받은 거울 작두타는라이츄 02.09 2187
351 IX-4. 잘못된 망집 작두타는라이츄 02.07 2072
350 IX-3. 돌아온 비수 작두타는라이츄 02.06 2206
349 IX-2. 모방범 작두타는라이츄 12.10 2041
348 IX-1. 삼인성호 작두타는라이츄 11.14 2126
347 Prologue-IX. 붉은 눈 작두타는라이츄 10.09 2143
346 無力という罪_Eternal Sanctuary 작두타는라이츄 08.31 2059
345 VIII-9. Hide and seek(하) 작두타는라이츄 08.08 2048
344 VIII-8. Hide and seek(상) 작두타는라이츄 08.08 2163
343 외전 4. 재앙신의 사랑을 받은 남자 작두타는라이츄 06.17 2243
342 VIII-6. The back 작두타는라이츄 05.05 2284
341 VIII-4. 꽃으로 치장된 끝 작두타는라이츄 03.03 2359
340 사신의 서 - (0) 엣날 옛적에 Badog 02.11 2428
339 Re: 사신의 서 - (0) 엣날 옛적에 qwe123 06.13 498
338 무기 리뷰 - 해방선 Zhuderkov 02.09 2275
337 Re: 무기 리뷰 - 해방선 ewqas1 07.17 564
336 VIII-3. 인과응보 작두타는라이츄 02.06 2397
335 VIII-2. Rimen game 작두타는라이츄 01.14 2420
334 Re: VIII-2. Rimen game qwe123 07.09 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