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양철나무꾼 1 2,434
그 <유토피아>아파트 2009호라는 곳이, 흡사 무언가의 둥지를 연상케 하는 것이 있다.
  오래되어 흐릿한 형광등이 깜박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기를 오분여,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기묘할 정도로 어두캄캄한 복도가 방문자를 맞이한다. 50미터 남짓한 복도를 끝까지 걸어야만, 제현은 2009호에 다다를 수 있다.
  창문도 없고, 형광등조차 없는 복도를 걷는 삼 분여의 시간은, 아무리 달변가에 활달한 성격의 인간이라도, 침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2009호에 들어서면, 그 방의 구조 또한 기묘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서면 다시 캄캄한 복도, 그리고 그 중간에 화장실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다. 14평짜리 아파트에는 과분할 만큼 복도를 지나야만, 방문자는 비로소 부엌을 겸하는 거실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거실은 다시 북쪽으로 창문이 난 두 방으로 통한다.
  이상의 설명이면 충분하리라. <유토피아>아파트라는 곳은, 그 이름과 달리 결코 천국 같은 곳은 아니었다.

1

  처와 각방을 쓰게 된 지도 오래 되었다. 우리는 한 집에 살고 있었으나, 이렇게 되어 버린 다음에야 부부가 아닌 타인에 가까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테이블 위에 간소한 식사가 차려져 있다. 직장에 다니는 처는, 내가 일어나기보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 나가는 것이다. 시탁에 식사가 차려져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처라는 '인간이, 마치 그곳에 존재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양 다른 곳들은 발자국 하나, 손자국 하나 없이 깔끔했다.
  각방을 쓰자, 고. 먼저 말을 꺼냈던 것은 나였다. 처는 아무런 군말도 없이 조용히 침실에서 자신의 물건과 이불, 베개, 화장품, 자기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 옆 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는 얼굴도 보지 못했고 대화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 한 마디가, 우리 사이의 마지막 대화-대화라고 할 수 있다면-이 된 셈이었다.
  <유토피아>아파트의 방음은 형편없었다. 가끔은 아래층의 소리까지 들리기도 했고, 조용한 날, 예를 들자면 비가 오는 날이나 밤 동안에는 현관 밖에서 걸어다니는 발소리까지 방문을 닫아도 똑똑히 들릴 정도였다. 결코 쾌적하다고 말할 수 없는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이 점 덕에 안심할 수 있었다. 비록 처의 모습은 볼 수 없었을지언정 옆 방의 소리, 처가 존재하고 있다는 소리만큼은 분명히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처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으나, 나는 항상 처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 날, 처의 음문에서 희부연 것이 흘러내린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눈앞에서 다리를 벌린 채로 천장을 응시하던 처는, 미동조차도-심지어는 숨조차도-하지 않던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나는 정신을 차리고 처의 몸에 나의 몸을 깊숙이 파묻으려 했으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는 처의 몸에서 언뜻언뜻 불쾌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 몸을 뒤로 빼고 말았다. 그것이 결정타였다. 그 날 이후로, 나의 음경이 팽창한 적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 날의 불쾌한 사건은, 모든 감정이 식을 대로 식어 버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음으로써 막을 내렸다.
  뚜벅뚜벅 하는 발소리가 유난히, 그 날은 크게 들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소리는, 남자가 허겁지겁 떠나는 소리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구역질이 났다. 나는 방에서 나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저녁에 먹었던 것들을 모조리 게워 냈다.

2

  그리고 각방을 쓰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 다음 날의 일이었다. 그나마 진정된 머리로 생각해 보니, 과연 내가 보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타인의 정액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피곤 탓에 잠시 환각을 본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면에서 묻기에는, 나는 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 때 이후로 처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극심한 구역질에 시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각방을 쓴 지 꽤 되었는데, 새삼 후회하는 것이 있다. 만약 그 때, 다짜고짜 각방을 쓰자는 말 없이, 일 대 일로 처와 대화를 해 보았다면 처와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미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은 어쩔 도리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와 처는, 십여 일에 이르도록 아무런 대화조차 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덮어쓰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처가 방을 옮긴 후로 안방은 완전히 내 차지였다. 그러나 그 동안 청소도 정리도 하지 않았던 터에, 처가 아직 머무르고 있었을 때에 비해 상당히 지저분해져 있었다.
  나는 원래 집 밖으로는 잘 나가지 않았으나, 그 일 이후로는 그나마 가끔 하던 외출조차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아침이면 처가 차려 놓은 식사를 먹고, 나머지는 소파에 뒹굴며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노트에 글을 끄적이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러나 오늘은 오랜만에 밖에 나가 보고 싶었다. 밖에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런 사정도 설명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방에서 처를 쫓아낸 것이 새삼 후회되어서이기도 했다.
  마음이 정해지자, 몸은 빠르게 따랐다. 옷을 입고, 씻고, 정리를 하고,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가기까지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나는 신발을 신으며, 따뜻한 햇빛을 쬐고 시원한 바람이라도 좀 쐬면 혹시나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3

  원래 기대라는 것이 배신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기대와는 달리, 바깥 하늘은 납빛이었다. 바람조차도 불지 않았다. 우중충한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게다가, 편의점에 진열된 신문을 보니, 오늘은 황사가 연중 최대치를 기록하는 날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도로 안으로 들어가기도 불편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때까지만이라도 바깥을 걷기로 했다.
  그렇게나 붐비던 거리가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묘한 기분이 들게끔 한다. 마치, 나 외의 모든 것이 멈춰선 것 같은 기분. 나는 끔찍할 정도로 이곳에 혼자였다. 아니, ​이곳에서​뿐만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런 교류조차 없어진 <유토피아> 2009호에서도, 결국 나는 혼자가 아니었는가. 결국은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로 타자와는 교류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비어 있다. 텅 비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텅 빈 거리가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내가 타인과 이어지지 못하는 거솨 마찬가지로, 나는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처를 만족시키지 못하듯, 내가 내 욕망 하나조차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듯, 내가 내 좁은 방 하나조차도 채울 수 없을 정도로 무신경하듯, 인간 하나가 텅 빈 거리에는 턱없이 부족하듯. 혼자 먹는 아침식사도, 끊어지고 만 관계도, 텅 빈 거리까지도 나는 언제나 보아 온 것이다.
  왼쪽으로 몸을 꺾으니, 오른편에 자그마한 공터가 하나 있었다. 아마도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로 쓰이는 모양이었다. 딱딱한 땅바닥에 모래가 얇게 깔려 있었고, 가장자리에 있는 철봉과 녹슨 그네 등이 그럭저럭 놀이터 구실은 갖추고 있었다. 제법 오래 걷기도 했고, 황사 때문인지 목과 눈이 어지간히 따끔거리기도 하여, 나는 잠시 스탠드에 걸터앉아서 쉬어 가기로 했다.
  걸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조금 가빠 왔다. 그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탓에,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운동부족이 극에 달한 것 같았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제법 빠르게 뛰던 심장이 점차 느려지다 도로 잠잠해졌다. 눈알도, 점점 뜨거워지다 시원해졌다.
  공터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탁 트인 넓은 곳이었다면, 나는 숨이 막혔으리라. 나에게는 과분한 것이다. 쉬기에는 차라리 이곳이 좋았다.

4

  한 곳에 가만히 머무르며 주위를 관찰하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기 마련이다. 처음 앉았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쓰레기나, 상자 같은 것들이 주위에 드문드문 보였다.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었으나, 개중에서도 상자 하나는 눈길을 끌었다. 그리 크지 않았으나, 이상하게 들썩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가가서 열어 보니, 기묘하게도 고양이 한 마리가 기어들어가 있었다.
  기묘하다고 한 것은, 말 그대로 기묘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버려진 고양이라면 상자 안이더라도 담요에 감싸여 가엾게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상상하기 마련이건마는, 이 고양이는 아주 달랐다. 그런 것들과는.
  먼지로 뒤덮여 희부옇게 보였으나 원래는 검은색이었을 그 고양이의, 눈은 마치 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세로로 쭉 찢어진 눈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그 날카로운 두 눈동자가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은 겁내지 않는 듯했으나 그 당당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은 집고양이의 사근사근함이 아닌 길고양이의 야생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고양이가 닳고닳은 길고양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다름아닌 반으로 잘려 너덜거리는 그 꼬리였다. 틀림없이 차 아래 기어들어가 잠을 청하다 갑자기 차가 움직인 탓에 피하지 못하고 끊어진 것이리라.
  나와 고양이는 서로 오랫동안 마주보고 있었다. 고양이 특유의 그 오만함이 나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것이었다.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순간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친구도 없이, 처와의 관계조차도 파탄나고, 무엇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도 못하던 내가, 마침내 누구나를, 아니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끌어안고, 내 집으로 데려가는 것조차도 고양이는 울음 하나, 싫은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처는 갑자기 집에 처음 보는 고양이가 들어온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에게 뭐라고는 하지 않을까. 그것을 생각하며, 나는 고양이를 안은 채 집으로 걸었다.

5

  그것은 암컷이었다. 씻겨 놓고 보니, 먼저 윤기나는 검은 털이 드러났고, 그 다음으로 가랑이에서 움푹 패인 생식기를 볼 수 있었다. 중성화 수술 같은 것은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낯선 손길이 미적지근한 물과 함께 몸을 쓸고 나가는 와중에도 고양이는 미동 하나 하지 않았다. 사람의 손을 탔던 것 같지 않았으나,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털을 다 말리자, 녀석은 내 품에서 빠져 나가 멋대로 내 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내심 안도햇다. 나의 것이 아니었던 무언가가 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내 물건이 아무리 많더라도, 나는 그것이 결코 내 방을 채우고 있지 않은 느낌이, 예전부터 들었던 것이다. 반면, 처가 쓰는 방-처가 없을 때, 몰래 들어갔던 적이 있다-은, 내 방에 비해 물건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방을 충만케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 고양이만큼은, 내가 데려온 것이었으나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물건조차 아니었고, 나의 것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점이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고양이가 내 방에 자리잡았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던 생활로 돌아왔다. 고양이 하나 왔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고, 여전히 처와는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고 지냈다. 고양이는 길고양이답게 내가 가끔 차려 주는 식사를 하기는 하였으나, 정작 나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데려올 당시에는 조용했던 녀석이었으나, 고양이는 아침만 되면 시끄럽게도 울어 댔다. 한 번 울어대기 시작하면 거의 한 시간 동안은 멈추지 않을 정도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나가는 처는, 고양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법도 했으나, 그녀는 말로도, 글로도 아무런 반응을 보내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왜 나는 아직도 그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지. 처에게는 비밀이 있고, 나도 비밀은 있다. 처가 분명히 나의 비밀을 눈치채고 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아무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처 또한 심각한, 나 이상의 비밀을 나에게 숨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6

  그 날 이후로, 나는 언제나 벽에 귀를 딱 붙이고 지냈다. 혹여 누가 들어오는 소리라도 들리면, 나는 숨을 죽이고, 온몸의 감각을 한껏 귀에 집중했다.
  가끔씩은 말소리가 들렸다. 흥분과 동기를 감추지 못하고 벽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대면, 처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샤워하는 듯한 물소리, 옷을 갈아입는 듯 부스럭대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식사 소리, 희미한 음악 소리 하나조차도 나는 놓칠 수 없었다. 그러나 소리만으로는 ​비밀​이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리를 잡아내기가 힘들엇다. 나에게 얼굴조차 비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레 숨기는 비밀이라면, 어지간해서야 소리도 잘 내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오호, 이 얼마나 영악한 암컷인가. 나는 이토록 추잡한 것과 이미 여러 해나 동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나에게 처가 아니었다. 나의 곁에 웅크리고 있는 이 고양이만도 못한 짐승의 암컷. 애초에, 자신은 아니라고, 자신에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아무 잘못 없다는 말만 했더라도 넘어갔을 문제였다. 그러면 나는 병신 머저리마냥 어색하게 고개나 끄덕이며 미안하다, 내 오해였던 것 같다고 말하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을 리가 있나. 그 암컷, 영악한 년이 사과를 하든 하지 않든 결국은 마찬가지다. 나는 그 날 분명히 생식기 안쪽에서 고여 흐르던 내가 아닌 숫놈의 향기를 맡았고, 희부연, 끈끈한 것이 떨어져 침대 시트를 적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그것이 사과한들 엎드려 빌어 본들 무에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애초에 나에게 사죄했다고 그것이 그 짓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아 주는 밥이나 넙죽넙죽 받아먹던 나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결국 나는 그 암컷에게 허울 좋은 가축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돌이켜 보면, 내가 암컷과 교접했다는 사실조차도 그 처에게는 부정을 숨기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강렬한 배신감과 구토감에 사로잡혔다. 그 소름끼친 혐오감이란. 그것은 내가 그 더러운 가랑이에서 희부연 점액이 흘러내린 것을 보았던 그 때보다도 더한 것이었다.

7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처를 관찰해야만 했던 것이다. 예의 구토감은 사라지지 않은 채 내 목구멍 언저리에서 불쾌하게 꿀렁이고 있었다. 나올 듯 말 듯한 신물이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것 같은, 말 그대로 역겨운 느낌이 오래토록 지속되더니, 급기야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 왔다.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는 것은 물론이요, 두통 탓에 제대로 잠에 들 수도 없었다. 답답한 응어리였다. 다른 생각을 애써 해 보아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마당이었으니 아무것도 손에 잡힐 턱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치밀어오르는 구역질과 배신감과 혐오감을 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그러나 결국 내가 몰두했던 것은 또다시 벽에 귀를 가져다 대고 관음, 아닌 청음(聽淫)을 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나는 항상 숨을 죽이고, 잠도 자지 않고 식사도 거른 채 옆 방에서 나는 소리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되니, 나는 이제 암컷의 방에서 나는 작은 소리 하나마저도 다 듣고, 어떤 소리인지 구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부스럭하는 소리에, 아, 이것은 웃옷을 벗는 소리다. 오호, 이것은 속옷을 갈아입는 소리다 하는 것을 나는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꼴이었으니 다른 생각이 떠오를 겨를도 없었다. 벽에 귀를 기울이는 24시간동안 내 머릿속에 언제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나의 것이었던 암컷을 실컷 탐하고 있을 모모한 수컷에 대한 생각이었다. 대체 어떤 자가, 나의 처의 안에 그토록 지독한 족적을 남긴 것인가.
  발걸음이 차분하나 쿵쿵 울리는 과체중 특유의 발소리가 아닌 것으로 보아, 아마도 키가 크고 마른 남자일까, 아니다, 혹은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일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얼굴은, 그 여자가 빠져들 정도일까. 그렇다면 틀림없이 나보다는 봐 줄 만할 얼굴이리라. 그러나 모르는 일이다. 그 암컷이 오히려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와 교접하는 것으로 나를 의식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멀쩡한 남편을 놔 두고, 자신은 추하게 생겨먹은 병신과 붙어먹고 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남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웃기지도 않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돈은 어떨까. 아니, 그 남자가 어떤 자이건간에 집에서 무의미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보다는 틀림없이 부할 것이다. 아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근본적인 질문. ​그 남자​는 과연 한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한 명이 아니다. 언제나 다른 남자가, 그 암컷의 곁에는 항상 있었던 것이다. 애당초 처는 자신의 직장에 대해 나에게 언급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8

  오호라, 옳다. 이 처는 분명 사창가의 한 방에서 하루하루를 노동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필경은, 이 암컷에게 키가 크고 절륜하고, 잘생기고, 그런 요소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두 시간을 팔아넘기기에 적합하기만 하다면, 그런 돈을 지불할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었으리라. 그리고 그 암컷과 수컷들은, 추하게도 종일 서로를 탐하였을 것이다. 어딘지 모를 사창가의 한 방에서, 모텔에서, 여관에서, 급기야는 거리에서, 아파트의 복도에서, 내 집 현관에서, 거실에서, 나와 그 암컷이 구역질나게도 몸을 포개던 안방에서, 그리고 지금은 바로 벽 건너편에서.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어느새 나는 고양이를 양손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힘을 풀어서 내 품으로부터 놓아 주자, 고양이는 다시 야옹 하고 울더니 부드러운 몸을 내 허벅지에 다소 거칠게 비벼 대며 그르릉거렸다.
  집에 온 지 며칠이 지나자, 녀석은 발정기를 맞이한 모양이었다. 조용했던 처음과는 달리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것은 물론이요, 온 집에 애액을 뿌리고 다녔다. 당연히 그것을 치워야 하는 것은 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옆 방 암컷이 발정났으니 이놈도 같은 암컷이라 그런 게로구나 하며 재미있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쉴새없는 울음소리와 그르릉대는 소리 때문에 최근에는 꽤 고통받고 있었던 터였다. 다행히도 낮에는 그나마 조용해지는 편이었으므로 처가 집에 없는 낮 동안은, 가능한 한 눈을 감고 쉬어 두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묘하게도 이 날만은, 지금만큼은 그 울음소리가 전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듣기 좋을 정도였다. 한숨을 길게 토했다. 정신을 차리자, 아랫배 쪽이, 아니 그보다 더 낮은 곳이 묵직하고 둔하게 욱신거렸다. 눈썹이 찡그려졌다. 오랫동안 느껴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사람을, 아니 남자를 기분좋게 만드는 불쾌감-. 아하, 나는 내가 아닌 남자와 교접하는 처를 생각하며 욕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속이 탁 트인 기분이었다. 그 배신감과 치욕, 혐오감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으나, 그렇게도 나를 괴롭히던 구토감-아니 욕구불만의 응어리가 전보다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기했다. 그토록 채워지지 못하던 나의 욕구가 무언가를 빼앗기는 상상으로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 마치 역설적이고 부조리한 농담처렴 여겨졌던 것이다. 발정난 고양이가 그르릉 하고 울었다. 나는 여러 번이고, 그 부드러운 등과 귀 뒤를 쓸어내려 주었다.

9

  그 날부터, 방의 벽에 귀를 딱 붙이고 있는 것은 더 이상 고통의 시간이 아니었다. 아니, 고통이기는 했다. 분명히 나는 그 소리에 귀기울이며 괴로워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달콤한 쾌감의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몇 천 개나 되는 바늘로 표피를 콕콕 찌르는 듯한, 그러나 혈관까지는 파고들지 못하는 애태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암컷에 방에서 나는 소리 하나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아아, 이것은 브래지어의 후크를 푸는 소리이겠거니, 아아, 이것은 음경을 입에 물고 희롱하는 것이겠거니, 옳다, 이것은 음경이 음문을 밀고들어가는 서슬에, 그 순간적인 쾌감의 폭발에, 암컷이 무심코 몸을 뒤틀며 밭은 신음을 토해내는 소리이겠구나.
  소리 하나하나마다 느껴지는 가공할 배덕감에 나는 전율했다. 비록 벽의 저 너머는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은 소리뿐이었음에도 나는 저 너머의 광경이 눈에 비춘 듯 생생하게 보였다. 그럴 때마다 잊고 있었던 느낌이-오랫동안 설 줄을 몰랐던 나의 음경은 힘차게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고양이는 언제나 나의 곁에 있었다. 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집중할 때면, 그것은 자신도 봐 달라고 애원하듯 달아오른 몸을 내 허벅지에 비벼 댔다. 그러면 나는 한두 차례, 귀 뒤와 등을 긁어 주곤 했다. 그것은 배덕감으로 가득 찬 나날이었다. 혹여 고양이와 동거하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처에게 지적당하지 않을까, 혹은 이렇게 하루 종일 밥도 잘 머지 않고, 잠에 들지도 않고 벽에 귀를 갖다대고 있는 것을 그 암컷이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사소하고도 치명적인 걱정이 한층 더 나를 흥분케 했다. 
  분명히, 발정난 것은 고양이와 암컷뿐만이 아니었다. 틀림없이, 나도 걷잡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짐승처럼, 욕정에 미쳐 헐떡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애를 태우는 괴로움이기도 했다. 분명히 먼 복도로부터 들려오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날 흥분시켰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기실 그것은 절대로 결정적인 쾌감에는 이르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것으로는, 발기에조차도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지쳐서 힘이 다하면 그대로 이불 위에 푹 널브러져 눈을 감고는 했다. 그러면 아직 남아 있던 흥분의 여운이 마치 식어가는 열기처럼 나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그러나 다시 깨어 일어나면-그것은 아주 깔끔히, 아무런 느낌도 없이 사라져 있다. 결국 남은 것이라고는 미칠 듯한 갈망과, 그리고 공허감뿐이었다. 아무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던 나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이 이토록 괴로운 것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벽에 귀를 갖다붙이고....모든 것이, 이것의 반복이었다.

10

  아마도 그것은 고양이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고양이는 매일 밤마다 제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달뜬 소리로 울어댔다. 그리고는 결국 제풀에 지쳐 잠들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 사정이 나와 같음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항상 그것을 안고 지냈다. 태반은 옆 방의 소리를 엿들을 때였다. 내가 거친 숨을 내쉬는 것을 녀석은 좋아했다. 숨이 그 부드러운 털에 닿을 때마다 녀석은 그르릉거리며 눈을 지그시 감고는 했다.
  새벽 한 시도 더 지난, 깊은 밤이었다. 암컷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를 끌어안은 채 언제 암컷이 돌아올까, 오늘은 또 어떤 남자를 데려올까 생각하면서, 헐떡이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벽에 귀를 가져다 대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은 30도를 오갈 정도로 더워서, 나는 이미 긴장했던 탓도 더하여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방 안은 그야말로 사우나였다. 더위 탓이었는지, 벽 너머에서는 어떤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음에도, 어떠한 자극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뜨겁고 히묘한 방 안 분위기와 팽팽한 기대감이 맞물렸는지, 음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딱딱하게, 곳곳하게, 크게 팽창해 있었다.
  이윽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또각, 하는 소리는 암컷의 하이힐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했다. 뚜벅, 하는 둔탁하지만 차분한 발소리는, 필경 처를 뒤따르는 수컷의 소리이리라. 또각, 하는 발소리가, 내 안의, 어떤 심을, 현을 건드리는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전율했다.
  아아, 음란한 암컷이다. 바깥에서 점점 가까워지며 커지는 발소리가, 그리고, 민감한 나의 귀를 자극했다. 나는 고양이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답답할 만도 하였겠거늘, 고양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야옹, 하고 울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아, 마침내 현관문이 열리는 철컥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큰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드디어 왔구나, 이 연놈들이 둥지에서 교미를 하겠구나. 곧.
  발소리의 감각이 더 가까워지고, 이내 내 방문 앞에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들려 왔다. 으레 그러했듯이, 나는 방문을 벌컥 열어버리고 싶은 욕구에 강하게 사로잡혔다. 지금 나간다면 어떨까. 나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과연 그 수컷은 이 음란한 암컷에게 과연 남편이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그러나 나갈 수는 없었다. 아니-문을 벌컥 열어버리고 싶은 욕구와는 별개로-나는 나가기 싫었던 것이다.

11

  그리고-----처의 방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귀를 갖다붙였다.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예의 귀를 간질이는, 죄책감에 넘치는 달콤한 소리가 들렸다. 그래, 빨리 시작해라.
  무언가로 강하게 때리는 소리, 탕탕 하는, 벽을 치는 날카로운 소리, 유난히 큰 숨소리, 벽 너머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신음 같은 소리까지도 그 날은 들렸다. 흥분해 있었다. 지금껏, 살면서 이토록 무언가에 집중해 본 적이 없었고, 이토록 흥분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그 암컷과의 섹스에서도 이 정도로 강렬한 흥분감과 긴장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분출구가 없었다. 그러니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이 흥분은 폭발하지 못하는 채로, 답답하고 허전하게 식어가겠지. 그러나 오늘만은 난 그렇게 놔 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 바로 옆 방에서는 나의 처였던 암컷이, 누군지도 모를 수컷과 난잡하게 교미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지켜보지도 못하고, 그저 엿들으면서 상상이나 하고 있는 꼴이라니.
  문득 생각이 수음에 미쳤다. 나는 차라리 스스로 위로라도 하여 분출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나는 생각을 접었다. 물론, 불륜하는, 내 처였던 암컷을 상상하며 자위행위에 몰두하는 것은 배덕감을 느끼기에는 참으로 매력적인 일임에는 틀림없을 터였으나, 그러나 나는 내가 욕구를 분출시켜야 한다면, 그것은 보기좋게 그 암컷을, 말하자면 한 방 먹일 수 있는, 일종의 설욕이 되어야 했다. 그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접한다면, 오냐, 나도 다른 여자와 얼마든 섹스해 보이겠다. 그 때가 되어야 너는 나에게 잘못했다고 울며불며 매달릴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저 추잡한 암컷처럼 아무나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와 동침하기에 합당할 여자는, 고귀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하고, 동시에 그에 걸맞은 자존심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처럼 결여된 인간에게 걸맞은 결점 또한 있어야 한다. 나는 벽에 귀를 갖다댄 채, 터질 듯한 박동을 느끼며 생각했다.
  야옹, 하고 고양이가 다시 울었다. 갑자기 의식이 고양이에게 쏠렸다. 쓰다듬자, 고양이는 눈을 감고 그르릉거렸다. 나 만만치 않을 정도로, 고양이의 몸 또한 뜨거웠다. 이것 또한 흥분한 모양이었다. 귀 뒤를 쓰다듬던 손을 고양이의 가랑이로 무심코 가져갔다. 한 차례 쓸어내리자 고양이는 움찔했으나, 그러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12

  그리고 야옹, 하는 울음소리는, 울음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손가락으로 꼬집듯 비비자, 고양이는 온 몸의 털을 꼿꼿이 세운 채 부르르 떨었다.
  바로 그 순간에,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진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참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옷을 모조리 벗어던졌다. 그리고 드러난 내 음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단단하게 서 있었다.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까닭인지 귀를 바짝 갖다대지 않아도 옆 방의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고조시키는 소리. 그동안 이것을 들으며 괴로워해 왔다. 그러나 오늘은 내 차례였다.
  여자의 몸을 붙잡고, 나는 음경을 거칠게 쑤셔넣었다. 애무니, 키스니, 귀찮은 말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녀는 높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아마 놀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엉덩이를 양 손으로 받치고, 거세게 나는 팔과 다리를 흔들었다. 그 몸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그녀는, 여자는 날카로운 신음을 간헐적으로 토해냈다.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처 이외의 여성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처보다, 아니 그 더러운 암컷보다도 나았다. 분명한 온기를 나는 느꼈던 것이다. 분명했다. 처의 것은, 싸늘했다. 결코 달아오르는 법이 없었다. 섹스 뒤에 남는 것이라고는 언제나 차갑고 끈적한 불쾌함뿐이었다. 그러나 이 여성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열기였다. 삽입한 그 순간부터 나는 녹아내릴 것만 같은 쾌감에 헛숨을 들이켰다. 그 암컷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적극적으로 반응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이 여자는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전율과 신음으로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도 가까이에 있었으면서도 알지 못했다니. 우리는 처음부터 이러했어야 했다. 고귀하고, 도도하고, 야성적인, 그러나 반쪽짜리인 나의 여인.
  좋아하는 게로구나, 그럼 여기는 어떨까, 이 음란한 여자 같으니. 야옹. 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여성의 달아오는 육체를 탐했다. 허리를 흔드는 것은 거칠었고, 움켜잡은 손도 억셌다. 그녀는 거의 한 시간 동안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리고 옆 방에서는, 여자가 애원하는 소리, 남자가 웃는 소리, 신음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 쿵덕거리는 소리, 여자가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모든 것이 고조되고 있었다. 가빠지는 숨소리와, 높아지는 여자의 비명으로, 나는 절정이 바로 눈앞임을 알았다.

13
  
  내가 모든 욕구와 불안과 억울함과 배덕감과 부도덕함과 패륜과 흥분과 여운까지를 쏟아내는 것과,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한 차례 크게 떨고 축 늘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나의 방문이 갑자기 벌컥 하고 열린 것도 그와 동시였다.
  문 바깥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처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저 건너편 방에서는 여전히 신음소리와 쾌락에 울부짖는 암컷의 비명이 들려오는데도,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틀림없는 내 처가 분명했다.
  처가 본 것은, 옷을 홀딱 벗고, 죽어버린 고양이의 시체를 끌어안고 교미를 시도하는 남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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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pie
허억 수위가..스티븐 킹과 보르헤스가 생각나는 반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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