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ot Boy - 2

Novelistar 1 2,554
아침부터 걷기 시작해서 해가 질 때쯤 되서야 할로웨이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온종일 구름이 두껍게 가리운 하늘을 보고 소년은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아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할로웨이는 잠시 거친 발걸음으로 차오른 숨을 가다듬었다. 무릎을 짚고 땅바닥을 향해 내뱉은 얕은 기침 속에는 가래가 섞여 있었다. 그러곤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손가락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세 남자가 있는 곳으로부터 시멘트와 콘크리트 덩이가 뭉쳐 만들어진 낮은 언덕 두 개를 사이에 둔 빌딩 하나가 있었다. 빌딩은 허리가 사선으로 잘리운 채 앙상하게 철골을 손가락처럼 하늘을 향해 뻗고 있었다. 소년은 그 앙상하고 뒤틀린 철골의 갯수를 세어보았다. 정확히 열 개였다. 마치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하늘을 향해 뻗은 손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빌딩의 정문은 마치 이빨 빠진 아가리처럼 주변 골조가 뒤틀린 채 세 남자 쪽을 향해 나 있었다. 소년은 눈을 찡그려 희미하게 보이는 안쪽을 들여다보려 했으나, 역시나 잘 보이지 않았다. 제이크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개머리판이 닿는 어깻죽지에 멍이 들 것만 같이 총을 빳빳히 잡고 있었다.

"저 곳이에요?"
소년은 고개를 들어 할로웨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할로웨이의 턱에는 질 낮은 면도칼로 대충 깎은 듯 수염이 들쭉날쭉했다.
"어. 우리 마을이야. 마을이라고 하니까 왠지 시골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할로웨이는 마을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 듯 말 끝에 헛웃음을 지었다. 소년은 빌딩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고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할로웨이가 일러주지 않았다면 그저 폐허인 줄로만 알고 지나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내가 말한 그 위협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거처를 잘 숨겼다는 점에서 아직 이들은 살아 숨 쉴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할로웨이가 소년을 내려다보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소년은 쉬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유약해보여야 할 것만 같아 힘든 척을 하고 있었다. 이마에 맺히지도 않은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이제 움직이자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할로웨이는 발걸음을 옮겼다. 잔해로 이루어진 가파른 내리막이었기에, 세 남자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지 않고 땅에 그시며 나아갔다. 제이크가 어쩌다보니 통조림 깡통을 발 끝으로 찼고, 할로웨이는 제이크에게 눈치를 주었다. 대부분의 빌딩들이 허리가 잘려나갔다고 하더라도 소리는 도시 안에서 골목의 벽을 타고 기어올라 위로 울려 저 멀리까지 닿는다.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조심했다.

예 앞까지 걸어왔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린 것만 같은 긴장감 속에 가까스로 세 남자는 빌딩 앞에 도착했다. 소년은 도대체 그 위협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조심스러운지 호기심마저 일었다. 거처가 코 앞이므로 위치를 들키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 위협이 소리에 민감한 것인지 궁금했다. 제이크와 할로웨이는 정문 앞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흘렀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년이 그 두 남자를 곧장 뒤따라 발걸음을 옮길 때, 할로웨이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소년에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부터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너를 조금 거칠게 다루는 척 할거야. 혹시나 누가 보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에 대해 미리 사과하마. 조금의 연기도 부탁한다."
소년은 할로웨이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로 소년을 해하려 했던 이들이라면 이렇게 말해주지 않았으리란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거처 안에 들어가면 그들은 진실을 이야기 해줄 것이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동시에 제이크가 들고 있던 총이 소년의 눈 앞을 스쳤다. 개머리판 대신 총끈이 머리 위를 살짝 스쳐갔을 뿐이지만, 소년은 놀란 나머지 앞으로 고꾸라졌고, 제이크는 소년의 어깨를 잡은 채 빌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바깥에서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들어갔을 때에서야 제이크는 소년을 놓고 조심스럽게 총끈이 스친 부위가 행여나 슬키진 않았을까. 아까 전 고꾸라질 때 무릎이 까지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뇠다.
"미안해. 바깥에서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더라도 우리가 나쁜 짓을 하고 있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랬어. 다치진 않았니?"
소년은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을 펼쳐 뒤집어 보였다. 생채기조차 없었다. 제이크는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고 세 남자는 그렇게 빌딩 안 쪽으로 나아갔다. 홀을 지나 남자 화장실로 보이는 곳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남자 화장실의 구조를 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소년은 어디에 거처로 향하는 입구가 있을지 호기심이 동했다. 이윽고 제이크가 화장실 안에 깨진 채 걸려있는 커다란 두 개의 거울 중 왼쪽 것의 테두리를 잡더니 벽에서 뜯어냈다. 거울은 뒤에 얇은 콘크리트를 붙인 채 떨어져 나왔고, 뜯어져 나온 곳에는 간신히 쪼그려 앉아 걸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통로가 하나 나 있었다. 할로웨이가 먼저 옷깃을 여미고 총을 등에 맨 채 앞으로 향했고, 소년은 그 뒤를 따랐다. 제이크는 거울 뒷 편에 달린 끈을 잡고 통로 안으로 잡아당겨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틈새를 맞추어 입구를 닫았다.

통로는 좁고 습기가 가득 차 마치 하수구를 연상케 했다. 제이크는 무릎이 안 좋은지 쪼그려 앉아서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신음을 참고 있었다. 소년은 그제서야 아까 전의 행동에 대해 궁금해졌는지 할로웨이에게 물었다.
"근데 그 위협이라는 게 도대체 뭐에요? 핵? 좀비?"
소년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할로웨이는 잠시 벙찐 채 대답하지 못하다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 좀비라. 할아배가 보여주던 그 영화가 생각나는구나. 영화를 아니?"
소년은 왠지 모르게 모른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걷고 있는 할로웨이가 못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른다고 말을 하려다, 할로웨이가 말을 이었다.
"알 턱이 없지. 몇십 년 전 이야기니까. 여튼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핵은 맞단다. 핵이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지. 아니, 만들었다고 들었단다. 나도 직접 보지는 못햇어. 할아배가 말해줬지. 할아배 나잇대의 사람들이나 핵을 큰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할로웨이가 숨이 찼는지 잠깐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방사능은 거의 다 날아 갔단다. 할아배는 신기해 했지. 몇십 년은 더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인데 너무 일찍 날아갔다고. 누군가 인위적으로 걷어낸 것일거라고. 그리고 그 말은 맞았어. 궁핍하게 살고 있는 대부분의 생존자들 앞에 마치 천국에서 떨어진 것만 같이 엄청난 음식. 무기. 전기. 물. 모든 것을 가진 한 사람이 나타나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더구나."
역시나 숨이 찼는지 할로웨이가 말을 멈췄고, 그 틈새를 소년이 비집고 들어가 말했다.
"그러면 그 사람 밑으로 들어가서 풍족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제이크가 소년의 말에 민감한 곳을 건드려진 듯 흠칫 했고, 그런 그에게 할로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랬겠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않았단다. 자, 코 앞이야. 조금만 더 힘내자."

소년은 할로웨이의 말에서 어렴풋한 상실감을 맡을 수 있었다.



20150317 0419
Linkin Park - Robot boy

Author

Lv.1 Novelistar  2
7 (0.7%)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레이의이웃
예전같았으면 바로 알아차렸겠지만 사우전드 선즈 때부터는 잘 안들어서... 린킨파크 곡이 바탕이었군요

보통 이별을 주제로 많이 쓰셨는데 이런 글은 또 색다른 느낌이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93 길 잃은 바이킹 - 2 댓글1 작가의집 01.18 2626
92 길 잃은 바이킹 - 1 작가의집 01.18 2690
91 [Project Union] 여명 댓글1 Badog 01.07 2454
90 Workerholic-Death In Exams(2) 댓글3 Lester 01.01 2548
89 태양이 한 방울의 눈물이 되던 날 댓글2 Novelistar 01.01 2675
88 계약 안샤르베인 12.30 2382
87 Xeperux-ziram 의 페허 안에서 가올바랑 12.29 2491
86 [소설제:STEP] 통합정리글입니다! 댓글9 QueenofBlade 12.22 2729
85 [소설제: STEP] 종료입니다! 댓글2 QueenofBlade 12.22 2392
84 기사의 맹약 댓글1 안샤르베인 12.22 2522
83 [소설제: STEP] 시작합니다! 댓글15 QueenofBlade 12.21 3058
82 Workerholic-Death In Exams(1) 댓글2 Lester 12.17 2404
81 [교내 공모에 낼 소설] 결혼식 (2/2) BadwisheS 12.15 2472
80 [교내 공모에 낼 소설] 결혼식 (1/2) 댓글2 BadwisheS 12.15 2469
79 그와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2. 언리밋 12.12 2480
78 그와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1. 언리밋 12.12 2388
77 블릿츠 크리그 댓글4 작가의집 12.05 2607
76 겨울冬寒 Novelistar 12.04 2421
75 Magica - 3 마미 12.03 2363
74 [img][소설제:엑스컴]드디어 감상글 및 상품 추첨입니다!!!!! 댓글4 가올바랑 12.03 3375
73 경계를 넘어선 만남(完) 댓글2 안샤르베인 12.01 2369
72 [img][소설제:엑스컴]끝났습니다!+상품부여관련 사항 댓글2 가올바랑 12.01 2473
71 외계로부터의 에코 프렌들리 계획 댓글2 잉어킹 12.01 2421
70 [img][소설제:엑스컴]시작합니다~ 댓글4 가올바랑 11.30 2915
69 나는 너의 미래다 - 1 민간인 11.28 2520
68 Cats rhapsody - 4 민간인 11.23 2439
67 Cats rhapsody - 3 민간인 11.23 2466
66 Cats rhapsody - 2 민간인 11.23 2476
65 Cats rhapsody - 1 민간인 11.23 2426
64 HIGH NOON -5 잉어킹 11.21 2434
63 HIGH NOON -4 잉어킹 11.21 2465
62 HIGH NOON -3 잉어킹 11.21 2456
61 HIGH NOON -2 잉어킹 11.21 2560
60 HIGH NOON -1 잉어킹 11.21 2413
59 해바라기 소이소스 11.18 2405
58 Magica -2 마미 11.18 2331
57 바톤터치 댓글1 글한 11.17 2392
56 색깔의 무게 (4), 完 댓글1 글한 11.13 2313
55 색깔의 무게 (3) 글한 11.13 2299
54 색깔의 무게 (2) 글한 11.13 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