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ot Boy - 1

Novelistar 1 2,399
소년은 눈을 떴다. 눈 앞에는 커다란 쥐가 그를 향해 코를 들이밀며 수염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쥐를 보고 놀라지도 않은 채 조용히 일어났다. 소년이 엎드려있던 바닥으로부터 매캐한 먼지가 한가득 피어올랐다. 소년은 눈살을 찌뿌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빛이었다. 구름이 짙게 낀 채 회색빛으로 물들어있는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처럼 보였다. 소년은 비를 피할 그늘을 찾아 걸었다. 콘크리트가 무너진 잔해가 곳곳에 쌓여 있었고, 무엇인가 심하게 부딪혀 골조가 심하게 떨어져 나간 건물들은 마치 덧니처럼 비틀린 흉물스럽게 철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처참한 몰골의 거리에는 으레 쥐들이 드글대며 으슥한 골목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소년은 길을 걸으며 양 옆을 계속해서 번갈아가며 바라보았으나, 쓰레기통조차 없었다. 그저 잔해와 무너진 빌딩 그리고 소음조차 없는 고요함만이 있었다. 소년은 그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굶주림도 느낄 수 없었다. 다친 곳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넓은 곳에서 덩그러니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정말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딱 한 가지 사실이 소년의 머리 속에서 피어올라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순간, 소년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한 여자의 모습이 소년의 머릿속을 스쳤다. 곱게 짠 살구색 스웨터를 입은 채 양 팔을 벌려 빙빙 돌며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몸에 맞으며 마치 샤워를 하는 것만 같이 즐거워하는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 무슨 책인지 물어보자 웃으며 고개를 들고 옆에 앉으라고 하는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머리카락은 찬란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갈색이 살짝 섞여 보고 있자면 가을이 떠오르는 금발이었다. 살며시 웃을 때마다 올라가는 입꼬리의 모양은 고양이를 닮은 듯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소녀가 누군지 몰랐다. 그저 머릿속을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소녀에 대한 생각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어디선가 느껴지는 익숙함의 발원을 찾기 위해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알지 못하는 소녀에 대해 생각이 나는 걸까? 왜 멈출 수 없는 걸까? 어째서 이리도 익숙한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그 생각의 고리가 서서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을 참이었다.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그 총성은 소년을 무력하게 휩쓸리게 하고 있던 소녀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꺼내주었다. 총성은 가까웠고 총성이 있으면 궤적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방금 전 자신의 뺨을 스친 그 궤적의 존재를 알아차리곤 눈을 찌뿌리며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커다란 돌멩이를 오른손에 집어 들었다. 이윽고 정면,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허리가 잘려나가 그리 높지 않은 빌딩 위에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소총으로 무장하고 두껍게 전투복을 껴입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소년은 손에 잡은 돌멩이를 굳게 쥔 채 양 옆을 번갈아 보며 도망갈 곳을 찾았다. 그 때,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향해 화가 난 듯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애를 쏘면 어떡해! 제정신이야? 맞았으면 어쩌려고 했어!"
"아. 아니, 미안해. 이 변두리에서 무언가가 보이길래 그것들인 줄 알았어."
화를 내는 쪽이 잠시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고개를 푹 숙이곤 다시 들었다. 한숨을 쉰 것 같았다.
"나한테 사과를 할 것이 아니지, 이 멍청아. 가자."
소년은 돌멩이를 쥐고 있던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고는 두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았다. 한 남자는 뛰어오고 있었고, 다른 남자는 총구를 휘두르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걸어오고 있었다. 뺨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져 손을 대보니 살짝 스친 듯 생채기가 나 있었다. 소년은 손에 묻은 그 피를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피가 난 것이 보이자 남자가 더 빨리 달려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거의 미끄러질 듯 소년의 앞에 달려와선 땀 흐르는 핼쑥한 뺨을 닦고 숨을 고르며 말했다.

"괜찮니? 많이 다쳤어?"
소년은 괜찮다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이 근방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를 않아서 그 것들인 줄로만 알고, 놀라서 그랬단다. 정말로 미안하다."
"괜찮아요."
소년은 그렇게 말하곤 옷깃으로 뺨을 훔쳤다. 사주경계를 하며 걸어오던 남자가 총을 거두고 등에 매며 마른 남자의 뒤통수를 때렸다.
"누가 현장 경험 없는 거 티 내라고도 안 했는데, 이 놈아."
마지막에 다가온 남자는 소년을 쏜 남자보다 조금 더 살이 붙고 체격이 건장해 무척이나 건강해보였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은박지에 싸인 무언가를 꺼내 소년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과의 표시란다. 마음에 들 만한 것이 이것밖에 없구나. 요즘 통 보급품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말야."
남자가 건넨 것은 초콜릿 조각이었다. 소년은 두터운 장갑을 낀 남자의 손에서 초콜릿을 받아 양 손으로 조심스럽게 까 입 안에 넣었다. 오도독거리는 소리가 부푼 뺨 바깥까지 들려왔다.
"아, 소개를 못 했구나. 여기 이 멍청이는 제이크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이크의 등짝을 세게 쳤다. 소리만 요란했지 그렇게까지 아프게 때린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할로웨이란다."
남자는 소년의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소년은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덥석 잡고는 흔들었다. 두 남자가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할로웨이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제이크에게 눈치를 주었다. 한 명은 반드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제이크는 곧바로 총을 꺼내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을 잃었니? 이런 곳에 돌아다니면 위험해. 용케 그 녀석들한테 잡히지 않고 있었구나."
"그 녀석이요?"
"우리 인간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악마들이란다. 자, 여튼 갈 곳이 없다면 우리를 따라가지 않을래?"
소년은 잠시 할로웨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좋은 말로 꾀어가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건,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건 저울질의 결론은 똑같았다. 소년이 갈 곳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깨어남이었고 갑작스럽게 마주친 세상이었다. 그 전의 기억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한 소녀를 제외하곤.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할로웨이의 손을 다시 잡았고, 그는 이빨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일어서 소년과 나란히 걸었다. 제이크는 계속해서 사주경계를 하고 있었다. 아까 소년을 겨눈 벌을 눈치껏 자기 스스로에게 지운 것 같았다. 할로웨이는 제이크가 경계를 하는 폼이 우스워 보였는지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제이크는 머쓱해하며 따라 웃었다. 소년은 그저 묵묵히 할로웨이의 손을 잡은 채 걸으며 소녀에 대해 생각했다. 스웨터를 입은 소녀. 너무나 익숙한 아이. 생각하고 있자면 따스함과 포근함이 조용히 밀려와 소년을 감싸는 것만 같은 소녀. 도대체 누굴까. 그렇게 세 남자는 발 끝에 채이는 콘크리트 덩어리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그 것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폐허가 된 시가지를 걸어나갔다.




20150314 0209

https://www.youtube.com/watch?v=lmc21V-zB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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